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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가 보이십니까? 또 먹고 자와요.
우렁이가 보이십니까? 또 먹고 자와요. ⓒ 김규환

우후죽순(雨後竹筍), 남도는 죽순 마지막 철

반드시 2년 생 대나무에서 나오는 대나무 순 죽순(竹筍)은 모내기하느라 바빠 미처 찾지 못하여 비 온 다음날 가보면 이미 늦다. 오죽하면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 했겠는가? 한 자(尺)도 아니고 한 길은 충분히 되고도 남아 하루 사이 사람 키만큼 자라 이놈하고는 도저히 키 재기를 할 수 없다.

그러니 오뉴월 죽순 한번 먹어 보려면 여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철이라 죽순을 따로 꺾으러 갈 형편이 못 되므로 밭에 잠깐 지심 메러 갈 때나 다른 논에 들러 돌아올 때 또는 이른 아침 못자리 물꼬를 보러 갈 때나 잠깐 들러 발로 차듯 손으로 툭 밀어서‘게눈 감추듯’ 열댓 개 꺾어 오는 게 정상적인 방법이다.

죽순은 굳이 하루 이틀 지나도 못 먹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세상구경 나온 지 채 이틀이 안된 갓 나온 짧고 뭉퉁하며 야들야들 보드라운 순을 최고로 친다. 굳이 길이를 잰다면 한 뼘 남짓 한다. 그런데 어디 사람 생각대로 되던가? 날이 따뜻해지면 쏙쏙 기어 나오려 발버둥을 치고 밤새 이슬 먹고도 쑥쑥 자라 얼굴을 내민다. 비라도 한번 왔다하면 감당하기 어렵게 커버려 애간장 녹이는 못된 심성을 가진 어린놈이다.

죽순(竹筍). 모내기 철에 많습니다.
죽순(竹筍). 모내기 철에 많습니다. ⓒ 김규환
그런 죽순을 꺾어오신 아버지께서 정지 문 앞에 툭 던져 내려놓으시면 어머니는 가마솥에 물을 적당히 붓고 껍질 째 삶으셨다. 김 한 번 나서 조금 물러 터지겠다 싶으면 바로 꺼내 아린 독을 빼려고 찬물에 담근다. 이 때 껍질을 벗기면 가장 잘 벗겨졌다. 하지만 아무리 찬물에 담가도 남은 열(熱) 때문에 손이 뜨겁기는 마찬가지다.

찬물을 옆에 떠놓고 손을 적셔가며 껍질 두어 개를 벌려 한 손에 잡고 다른 손으로는 죽순 알맹이를 잡고 “쭈욱” 훑어 벗기는 그 감촉은 잊기 힘들게 부드러워 손을 애무(愛撫)하는 듯 하다. 껍질은 퇴비자리로 가고 노오란 알갱이만 물에 담가 오래 우려서 독을 빼낸다. 여덟 시간에서 한나절을 담가놓아 건지기 전에 한번 찢고 또 한 번 갈라 먹을만한 크기로 해서 물기를 조금만 빼내면 된다.

대통밥 만들기 어렵지 않습니다. 대만 구해다가 한 번 해서 드셔보시지요.
대통밥 만들기 어렵지 않습니다. 대만 구해다가 한 번 해서 드셔보시지요. ⓒ 김규환

죽순으로 요리조리 만들어 볼까나

죽순은 대나무 많은 곳에 가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곳이 어딘가는 알만한 사람은 안다. 냉장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때는 염장법(?藏法)을 이용 소금물에 절여놨다가 먹었는데 요즘은 통조림으로 제조되어 깡통에 든 채 팔리기도 하고 아예 냉동하여 뒀다가 꺼내 해동(解凍)시켜서 먹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먹으니 세상 참 좋아졌다.

농번기 모밥에 빠지지 않았던 죽순 요리. 20년 전까지만 해도 죽순은 들깨 국물 갈아넣어 걸쭉하게 끓인 죽순나물을 주로 해 먹었다. 고춧가루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죽순나물은 숟가락으로 떠먹게 만들었는데 허리 한 번 못 펴고 다리 한 번 편히 쉬지 못한 농부에게 좋은 음식이었다.

죽순에 홍어 넣고 무친 것은 처음 먹어봤습니다. 제가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카페 방장이라는 것 아십니까?
죽순에 홍어 넣고 무친 것은 처음 먹어봤습니다. 제가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카페 방장이라는 것 아십니까? ⓒ 김규환
어디 이 뿐이던가. 죽순은 가장 간단하게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되고, 무침을 해서 회로 먹어도 그만이다. 회로 먹을 때는 대개 야생 논우렁이를 물에 담가 놋숟가락을 넣어두면‘흐레’를 다 토(吐)해내 말끔해진다.

한 번 삶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둔 죽순을 주재료로 하고 미나리, 당근, 절여서 물기 뺀 오이채를 보조재료로 하여 마늘, 양파, 파, 생강, 고추장으로 버무리고 고춧가루로 매콤한 맛을 더하고 매실(梅實) 액으로 북돋우고 식초를 가미하여 시큼하게 무치고 마지막으로 참깨 들들 뿌려 입에서 씹히게 하면 그 맛 따라올 자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적당히 삭힌 홍어나 가오리를 우렁이 대신 쓰는데 이 맛도 감히 흉내내기 힘든 남도 음식이다. 낙지를 넣어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된장국에 넣어 끓이기도 하고 육개장처럼 만들어 먹어도 어느 음식에 비견하여 손색이 없다. 나아가 조기찌개를 할 때 덤덤하고 쓴맛만 나는 하절기 무 대용으로 최고라 할 수 있다. 찌개에 들어가는 것은 약간 뻐센 것도 이용할 수 있으니 시기 놓쳤다고 한탄만 할 일은 아니다.

어떻게 요리를 했든 간에 여린 매듭이 “설컹설컹”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죽순으로, 대뿌리로, 대잎으로, 대꽃으로 담근 술. 대잎술과 진죽주(眞竹酎)은 상품화하여 시중에서 팔리고 있답니다.
죽순으로, 대뿌리로, 대잎으로, 대꽃으로 담근 술. 대잎술과 진죽주(眞竹酎)은 상품화하여 시중에서 팔리고 있답니다. ⓒ 김규환

대통밥으로 채우고 대통술로 여독을 풀면

이왕 죽순요리를 먹는 김에 대나무로 하는 요리를 두루 섭렵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멥쌀에 끈기가 있게 찹쌀을 조금 섞고 흑미(黑米)로 눈을 즐겁게 하고 은행, 대추, 밤을 곁들여 물에 불렸다가 40분 정도 푹푹 찌면 대통밥이 완성된다.

대통에서 우러나오는 그윽한 죽향(竹香)은 먹어보지 않은 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비 갠 이른 아침 대나무 숲길 걸어 피톤치드 맘껏 들이키고 나서 이 밥을 먹으면 한 그릇으로 모자란다. 죽초액(竹草液)이 별 건가?

하룻밤 묵을 계획이라면 ‘대통술’이나 ‘대잎술’ 한 잔 걸쳐 고인 찌꺼기를 말끔히 걸러내 여독을 풀어주면 몸이 다시 깨어나리라. 습하고 더운 날이 지속되면 대나무침대에 대자리 깔고 죽부인 껴안고 한 숨 자고 나면 이태백이 부러울 까닭이 없을 것이니 감히 대나무 앞에서 향을 논하지 말라.

대나무로 만든 침대에 누워 자면 병 날 일 없겠네요. 귀농하면 한 번 만들어 볼 참입니다.
대나무로 만든 침대에 누워 자면 병 날 일 없겠네요. 귀농하면 한 번 만들어 볼 참입니다. ⓒ 김규환
죽순모듬. 이 정도면 한 가족이 먹기에 딱 좋습니다. 재래시장에 가면 팔 겁니다. 서두르세요.
죽순모듬. 이 정도면 한 가족이 먹기에 딱 좋습니다. 재래시장에 가면 팔 겁니다. 서두르세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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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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