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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인권이 좋아도 하늘의 별을 따올 수는 없다."(교육부 정보 부서 중견 간부)
"인권위 결정, 사법적 강제력 없다."(동아일보 등 일부언론)
"기술적인 일을 비기술자가 판단하는 것은 월권이다."(교육부 교육행정정보화위원회 3차 회의록)


지난 17일 교육부에 날아온 A4 용지 35쪽 분량의 처방전을 놓고 이처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 처방전은 바로 국가 공인 의사 격인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 보낸 결정문.

교육부에 날아온 35쪽 분량의 처방전

▲ 박경서 상임위원.
ⓒ 안옥수
'인권불감증'이란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세 달에 걸쳐 현장방문을 하고, 청문회를 열고, 세 차례나 전원위원회를 갖는 등 진단검사를 한 뒤 만들어 보낸 이 처방전을 놓고 교육부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이 20일 국무회의에서 "NEIS 시스템을 폐기해야 한다는 단정적인 권고는 과한 것 아닌가"라고 인권위를 비판하고 나섰을 정도가 됐다.

이 같은 사태에 대해 한쪽 당사자인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한 조사 책임을 맡아온 박경서 상임위원(제1소위 위원장. 64)은 21일 "인권위 결정문에서 다룬 인권침해 문제를 제쳐두고 이를 '갈등증폭'이니 '편가르기'니 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판단"이라면서 최근의 교육부와 언론의 태도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박 위원은 NEIS에 대해 "세계 어느 나라도 NEIS처럼 부모의 이혼, 재산, 소년가장과 같은 수많은 학생신상정보를 한 곳에 모으는 곳이 있냐"고 반문하면서 "NEIS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인권침해 시스템"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우리나라 초대 인권대사이기도 한 박 위원의 사무실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13층에 있었다. 다음은 그와 만나 나눈 일문일답.

"NEIS는 세계 유례 없는 시스템"

- NEIS 문제에 대해 소위원장으로서 몇 달 동안 책임을 맡아 조사했는데, NEIS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먼저 말해달라.
"세계 어느 나라에 NEIS처럼 부모의 이혼, 재산, 소년가장과 같은 수많은 학생신상정보를 학교 담 밖에서 한 곳에 모으는 곳이 있나. NEIS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시스템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18년 동안 아이들을 키웠지만 학생 정보는 담임만 알고 딴 사람한테는 절대 공개하지 않더라. 이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인권철학의 부족이었다."

- NEIS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12일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우선시한 판단의 잣대는 무엇이었나.
"크게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다. 우선은 사생활비밀보호라는 인권의 관점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자기정보결정권은 누구에게나 있는 권리이다. 두 번째는 NEIS 추진에 법적으로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사생활 보호라는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률적인 근거가 필요한데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등에는 NEIS와 같은 방식으로 학생신상정보를 수집한다는 명시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초·중등교육법 25조에는 '학교생활기록부의 작성, 관리는 학교장의 권한'으로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NEIS 상에서는 학생신상정보가 학교가 아니라 시도교육청 서버에 집적되어 있으며 그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도 시도교육감한테 주어져 있어, 아무 법적 근거 없이 학교장의 권한을 침탈한 것이다."

"법적 근거 없이 학교장 권한 침탈한 것"

▲ 박경서 상임위원.
ⓒ 안옥수
- NEIS에 대해 어떤 조사과정을 거쳐 결정했는가.
"지난 2월 전교조, 참여연대 등 17개 단체로부터 진정이 접수되어 일을 시작했다. 그 뒤 서울창덕여중, 용산고, 서울시교육청 등을 직접 나와 위원들이 나가 조사했고, 4월 8일에는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서 청문회를 열었다. 그 다음 인권위 소위원회를 거쳐 세 차례 전원위를 가져 심사숙고 끝에 결정문을 내게 된 것이다."

17일 교육부에 전달된 인권위 결정문은 첫째 장 '주문'란에 다음처럼 적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추진하는 NEIS의 운영에 관하여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게
1.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27개 개발영역 가운데 (가)사생활의 비밀침해 등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교무/학사, 입(진)학 및 보건 영역은 입력 대상에서 제외하고, (나)교원인사 기록 중 별지목록 기재 항목은 사생활의 비밀침해 등 인권 침해 소지가 있으므로 입력항목에서 제외되도록 '교육공무원인사기록및인사사무처리규칙'을 개정하고
2. 개인정보의 누출로 사생활 비밀침해 등 인권침해가 없도록 학교중앙정보시스템(CS)에 대한 보안체계 강화 조치를 강구할 것을 각 권고한다."


- 인권위 결정이 난 다음 '전교조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는데….
"이 말은 정말 곤란한 소리다. 우린 법에 의해 판단할 뿐이다. 싸움 속에서 누구 편을 들어주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란 인식은 곤란하다. 언론보도를 통해 교육부 인사들의 발언을 듣고는 있지만 국가기관간에서 공식 입장이 온 것이 아니라 뭐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인권위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장관의 말을 아직도 믿고 있다."

"전교조 손 들어준 것 아니다"

- 인권위 결정을 놓고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결정이라 유감'이라는 말을 교육부 간부가 공식석상에서도 몇 번씩 했다. 이 말대로 현실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나.
"현실성이란 잣대만을 갖고 원칙을 저버릴 수는 없다. 우리의 판단은 인권이라는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한 것도 아니다. 인권위 결정이 나오기까지 3개월이 걸렸던 것도 경제적인 문제라든지, 대학 입시 일정 등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느라 그랬다. 우리는 NEIS의 27개 영역 가운데 3개 영역만 빼라고 권고했을 뿐이다. 개인신상정보와 관련이 적은 나머지 영역은 그냥 해도 된다. 권고안이 현실을 망각한 것은 아니다."

- 14일 언론보도를 보면 '인권위 결정이 사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식으로 부각됐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일부의 보도를 등에 업고 교육부가 'NEIS 강행'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이렇게 '사법적 강제력'을 따진다면 유엔권고안이나 국제인권위원회 권고도 구속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엔권고안 같은 경우는 무궁무진한 힘이 있는 것이다. 이 인권에 관한 권고안은 법적 가치를 떠나 인권과 도덕성에 관한 고차원적인 얘기다. 법적 강제력은 2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제3세계 독재국가에서는 유엔인권규정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지만 선진국들은 (사법적 강제력에 상관없이) 모두 받아들이고 있는 점을 보라. NEIS 권고를 교육부가 받느냐 받지 않느냐 하는 것은 그 기관의 인권에 대한 인식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법적인 구속력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언론은 지엽문제로 주객전도 말라"

- "비 기술자들이 정보기술인 NEIS에 대한 판단을 한 것은 월권"이라고 교육부 행정정보화위원회에서 원성이 컸다. 이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
"(한숨을 쉬며) 인권문제를 갖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인권위에서 청문회를 할 때 세계적인 기술자들도 2명이나 왔다. 또 3달 동안 기술자들을 만나 수차례 진단을 받았다."

- 최근 인권위의 결정을 놓고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쪽도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NEIS에 대한 신랄한 논의는 실시 검토 단계에서 있어야 하지 않았는가. 이는 결국 교육부가 그 동안 공청회나 간담회 등을 통해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을 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인권위 결정문에서 제기한 본질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이를 '갈등 증폭'이니 '편 가르기'니 하면서 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최근 일부 언론은 지엽적인 것으로 본질을 가리고 있다. 주객전도하지 말라."

"인권위는 독립성이 생명인데…"

- 이제 20일 국무회의에서 논란이 된 부분을 묻겠다. 윤 부총리가 대통령께 '전원위원회 결정이 반반으로 났다'고 말했는데, 맞는 얘긴가.
"무슨 소리인가. 전원위원회 결정은 반대, 찬성식 결정이 아니다. 충분한 과정을 통해 합의를 내오는 것이다. 결정문을 봐도 10명 전체 위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나. 물론 의견개진 과정에서 반대의견을 내신 위원이 세 명인가 네 명인가 있었다. 반반이란 말은 틀리다. 장관께서 대통령께 잘못 전달한 것이다."

- 이날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인권위에 대해서 한 말을 알고 있나.
"나는 모르겠다."

- 노 대통령이 "NEIS에 대해 인권위가 인권침해 가능성을 지적할 수는 있으나 시스템을 폐기해야 한다는 단정적인 권고는 과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또 '이번 결정에 대해 교육부가 인권위를 설득하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
"(한숨을 쉬며) 나는 대통령의 뜻을 알겠다. 전교조의 집단행동에 대한 우려라고 본다. 전교조와 교육부가 대치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 교육이 망가지면 어떻게 하겠나. 하지만 우리가 시스템을 폐기하라고 권고한 것은 아니다. 27개 영역 가운데 인권침해 가능성이 큰 3개 영역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가라는 것이었다. 대통령께 잘못된 보고가 올라간 것 같다. 교육부와 인권위가 협조할 수는 있지만 어느 쪽이 한쪽을 설득할 수는 없다. 인권위는 독립성이 있어야 한다. 독립성이 생명이다."

그는 이에 대한 물음을 다시 던졌지만 더 이상 자세한 답변을 피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잘못된 보고가 올라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교육부·전교조, 새 기구 만들어 대화하라"

▲ 지난 4월 전교조 분회장 결의대회 모습.
ⓒ 안옥수
- 이번 일을 계기로 교육부와 전교조, 그리고 일반 교사들한테 할말이 많으실 것 같다. 끝으로 인권의식과 인권교육의 차원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
"교육의 동사형 'educe'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잠재해 있는 능력을 끌어내다'라는 뜻이 있다. 교육이란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력을 존중해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잠재력이 많은 초·중등 학생들에 대한 개별 기록을 고착된 정보로 만들어 국가가 관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반 인권적인 것이다.

교육부한테 할 말은 현재 없다. 공식 입장이 나와야 국가기관으로서 이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교육부나 전교조가 똑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학습권도 아이들에 대한 인권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학습권을 침해하는 일을 전교조가 하는 것은 잘못이다. 양쪽 다 인권을 지키기 위한 데 초점을 모으고 위원회 같은 것을 새로 만들어서 대화해야 한다. 이래야 교육이 희망이 있다. 대화를 통해 NEIS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게 내 소원이다."

교육부는 약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인권불감증'이란 병에 대한 처방전을 받아 든 교육부는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교육부는 오는 26일 "공식입장을 밝힐 것"이라면서도 벌써부터 'NEIS를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

아무리 좋은 처방전이라도 약을 먹지 않는 환자 앞에서는 휴지조각일 뿐이다. 인권위 결정문이 올바른 것이든 그른 것이든, 이 처방전이 무용지물이 될 것인지 의미 있는 진단이 될 것인지는 교육부의 판단에 달려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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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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