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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육체적 피로가 아닌 사람 사이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였다.
군대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육체적 피로가 아닌 사람 사이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였다. ⓒ 권기봉
그러나 어디 군대 생활이 싶겠는가. 힘든 일은 주로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들로부터 생겼는데 특히 심한 갈등을 느꼈던 것은 사람간의 문제, 결국‘너와 나의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이나 학번 등에서 오는 강압적인 분위기에도 불편해 하던 차에 군대에서는 당연시되는 계급에 따른 명령과 복종이라는 질서에 편입하자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차라리 숙영 훈련을 몇 달 더 하면 더했지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의 스트레스.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못난 인간쯤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으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군에 갔다 온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풍경이 아닐까.

“이거 완전 내 얘긴데!”

부대 특성상 장기 훈련이 대부분이었는데 훈련을 나갈 때면 으레 책 몇 권을 가지고 나갔다. 지난여름에도 역시 군장 속에 책 대여섯 권을 넣었다. 뛰고 기고 걷고 구르고 쏘고 하는 훈련 중간 중간 짤막하나마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그 책들을 펼쳐들곤 했다.

그런데 그냥 편한 마음으로 심심풀이로 볼까 하고 가져왔던 책 한 권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거 완전 내 얘긴데!”였고 그저 단순한 ‘심심풀이용 책 한 권’이 아니라 ‘귀중한 책 한 권’으로 선택되는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화성 금성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존 그레이(John Gray). 남녀 사이에 마찰이 생길 경우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으나, 그 속에는 동성 간의 갈등을 풀 힌트도 숨어있다.
미국에서 ‘화성 금성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존 그레이(John Gray). 남녀 사이에 마찰이 생길 경우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으나, 그 속에는 동성 간의 갈등을 풀 힌트도 숨어있다.
존 그레이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이하 화남금녀)가 바로 그랬다. 태평양 건너에 사는 사람이 분명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놀람’은 비단 한 군인의 일만은 아니었던지 이미 한국에서만 27쇄를 찍어내고 있던 참이었다.

물론 이 책은 자신들도 밝히고 있든‘남녀관계를 위한 바이블’쯤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이 책을 장마로 습하기만 한 훈련장으로 가져온 이유도 채 얼마 남지 않은 전역 이후를 한번 대비해 보겠다는 음흉한(?)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존 그레이는 이 책에서 남녀관계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글자들의 나열 속에는 인간관계를 위한 지침이 숨어 있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남녀관계의 바이블 속에서 인간관계의 바이블을 보다

존 그레이는 남녀 사이의 언어 차이와 논쟁시의 대처 방법, 자기 의사를 서로에게 전하는 법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이는 이성이 아니라 동성을 이해하는 데에도 적잖은 도움을 준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이성은커녕 동성을 이해하는 일 역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예컨대 항상 유쾌한 모습을 보이던 친구 녀석이 갑자기 우울해 하거나 이유 없이 힘들어 할 때면 “조금이나마 해결의 실마리를 줄 수는 없을까”하고 나섰다가 오히려 당황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힘들어했던 기억. 괜히 어떠한 문제를 두고 논쟁을 하다가 상대방이 갑작스럽게 보여주었던 그 표정들.

후배를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호의를 보였지만 그것을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인지 그가 보였던 거부의 손 저음. 칭찬에는 인색한 반면 잘못된 것이 있거나 개선할 것이 있으면 빼놓지 않고 지적해 기분을 언짢게 했던 경험. 결국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그의 동굴로 기어 들어가려 했던 것이다, 보무도 당당하게. 그러나 이와 같은 ‘무단침입’은 존 그레이가 그토록 만류했던 것 아니던가.

존 그레이 /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 친구미디어 / 2002 / 9,000원 (원제 :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
존 그레이 /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 친구미디어 / 2002 / 9,000원 (원제 :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 ⓒ 권기봉
그러나 <화남금녀>를 접하며 그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얻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던 고민들이 비로소 본인만의 경우는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이고, 거기서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남녀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동성간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러나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인간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 특히 동성간에도 어떠한 방식을 거쳐 오해와 갈등이 싹트는지를 알게 된 지금, 중요한 것은 실천일 것이다. 그가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려 할 경우 진득하게 나오기를 기다려 주는 자세는 키워야 하고, 별 일 아닌 일로 그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등의 철없음은 이제 고칠 때다.

모르고 하는 악행보다 더 나쁜 것은 알면서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지식은 있으나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와 열정이 없다면 이미 끝난 얘기겠지만, 이제는 문제가 있으면 <화남금녀>를 먼저 떠올릴 일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 개정판

존 그레이 지음, 김경숙 옮김,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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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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