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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강성관
그 결과 지난해 4월과 12월 무연고 분묘에 매장된 11구의 DNA를 행불자 가족 93명에게서 채혈한 샘플과 비교분석한 결과 6구가 일치했다. 그 동안 '무명열사'로 불리어왔던 채수길(당시 22세·식당종업원)씨, 김준동(당시 17세·목공)씨, 김남식(당시 19세·직업훈련원생)씨 등 6명이 연고자가 확인됐다. 하지만 나머지 64명의 주검을 찾는 일은 난항을 겪고 있다.

암매장지로 신고된 47 곳 중 89년 광주특위에 의해 사체 9구가 발굴된 바 있는 황룡강 제방 주변, 소촌동, 9구가 매장됐다고 신고된 삼도동 등 5곳에 대한 지하탐사를 했지만 아직 신원이 확인된 이는 한 명도 없다. 특히 삼도동 암매장 제보지에서는 유골 8구를 발굴했지만 유골의 부패 정도가 심하고 손실도가 심해 DNA 확보가 어려운 상태다.

광주시는 이들에 대해 1차 감식을 진행 중에 있으나 유골 부패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시간이 갈수록 유골의 부패 정도가 심해져 행불자의 주검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행불자 문제는 당시 진압군들의 암매장과 무관하지 않아 어쩌면 '요원'한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시 군 관계자들의 양심선언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행불자 가족 중 한 명인 손모씨는 "아들이 고등학생이었는데 5월 20일인가 친구들과 함께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뭐라 말할 것이 있겠느냐"면서도 "할 수 있다면 유골이라도 찾고 싶다"고 말했다.

88년 국회 광주청문회 당시 정호용(80년 당시 특전사령관) 등은 "양민학살과 암매장은 없었다"고 했지만, 진압군이었던 40대 남자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양심고백을 해 암매장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는 "특전사 7공수특전여단 부대원으로 노대동 남저수지 부근에서 동료 부대원 3명과 함께 민간인 4명에 대해 조준사격을 해 그 중 한 명을 사살했다"고 의문사진상규명위에 고백했다. 이후 목격자들의 증언 등으로 피해자는 박병현(당시 25세)씨로 밝혀졌다. 또 소촌동에서도 신원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제보와 같은 교련복 등이 발견된 것은 암매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5·18기념재단의 한 관계자는 "행불자 문제는 분명 우리에게 과제로 남겨진 문제다"면서 "그러나 이는 암매장과 관련성이 높기 때문에 당시 학살 가담자들의 증언이나 양심선언 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행불자, 암매장 문제는 곧 광주학살에 대한 실체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오월학살 문제 해결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암매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다. 현재 광주시는 국비를 들여 암매장 조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좀더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암매장과 관련한 사실조사와 유골작업을 벌여야 할 것이다.

한편 광주시는 5월 중순부터 서구 상록회관 옆(광신전업 앞) 근처를 발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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