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넝쿨이가 설거지 하는 모습. 폼 한번 좋다. 처녀들이 줄을 서겠다.
넝쿨이가 설거지 하는 모습. 폼 한번 좋다. 처녀들이 줄을 서겠다. ⓒ 느릿느릿 박철
우리 집에는 애들이 셋입니다. 아들 둘, 딸 하나, 큰 아들 아딧줄은 중학교 3학년, 작은 아들 넝쿨이는 중학교 1학년, 딸 은빈이는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트라이앵글입니다. 아내는 사내 녀석 둘에게 오래전부터 설거지를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중학교 1학년인 넝쿨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형 아딧줄과 번갈아가며 설거지를 시켰습니다.

처음부터 아이들이 고분고분하게 엄마 말을 따라주어 설거지한다고 툴툴거리거나, 엄마 속을 썩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내의 지론은 사내 녀석들도 어려서부터 설거지라든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는 것이 정서에도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저녁 설거지는 두 아들에게 맡길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설거지 할 때 귀찮다고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합니다. 큰 아들 아딧줄은 한동안 주부습진에 걸린 적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설거지를 하는 폼이 엉성하고 세제를 많이 쓴다든지 수돗물을 틀어놓고 설거지를 한다든지 어딘지 어색했었는데, 지금은 매우 숙련되어서 깔끔하게 설거지를 합니다.

집 앞 풀밭에서. 넝쿨이와 은빈이 넝쿨이 머리는 내가 깍은 첫 작품이다. 근사하다.
집 앞 풀밭에서. 넝쿨이와 은빈이 넝쿨이 머리는 내가 깍은 첫 작품이다. 근사하다. ⓒ 느릿느릿 박철
먼저 작은 것부터하고 솥 냄비 같은 큰 그릇은 나중에 하고, 세제도 조금만 사용합니다. 설거지하는 요령을 터득해서 익숙하게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애들이 설거지 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때는 아내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지만, 과히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한 녀석이 설거지를 하면 한 녀석은 방청소를 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 교대로 저녁 설거지를 합니다. 큰 아들 아딧줄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압력솥으로 밥을 짓는 일,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끓이는 방법을 엄마한테 배워 이따금 엄마대신 밥도 짓고 찌개도 끓입니다. 아내는 저녁에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전화해서 큰 아들에게 밥해놓으라고 시킵니다. 그러면 싫다는 소리 없이 잘합니다.

어느 때는 아내가 며칠동안 출타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건 보통 방학 때인데, 아들 녀석이 밥이랑, 찌개를 밥상을 차려놓고 “아빠 진지잡수세요”하고 나를 부릅니다. 아들이 차린 밥상을 대하면 기분이 참 묘합니다.

고구리 저수지에서. 아딧줄 넝쿨 은빈 3남매. 황혼보다 아이들이 더 아름답다.
고구리 저수지에서. 아딧줄 넝쿨 은빈 3남매. 황혼보다 아이들이 더 아름답다. ⓒ 느릿느릿 박철
큰 아들 아딧줄이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선생님이 “밥 지을 줄 아는 사람 손들어봐” 해서 아딧줄이 손을 들었는데, 저 혼자 손을 들었다는 겁니다. 여학생들도 밥을 지어본 경험이 없어 손을 못 들었는데, 선생님이 이번에는 “설거지를 해본 사람 손 들어봐!”해서 아딧줄이 또 손을 들었더니, 선생님이 거짓으로 손을 든 줄 알고 자꾸만 “너 정말이야”하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나는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밥 짓고 설거지 하는 일은 잘 하는가 궁금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김치를 잘 담급니다. 총각김치, 배추김치, 동치미 등 김치는 저 혼자 잘 담급니다. 김치 담그는 법을 제대로 배워서 아내가 오히려 나한테 배웠습니다.

음식도 잘 만듭니다. 두부찌개, 김치찌개, 된장찌개, 찌개 전문입니다. 그밖에 감자탕, 부대찌개, 매운탕도 잘 끓입니다. 아이들이 엄마가 한 것보다 내가 한 것이 더 맛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전보다 횟수는 많이 줄었지만, 가끔 밥도 하고 찌개도 끓입니다.

그러나 제일하기 싫은 게 설거지입니다. 설거지는 마지 못해 할 때도 있지만 잘 안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아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는 남편도 못 됩니다.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가장에 불과합니다. 오늘 낮에 이 글을 쓰기 전에 넌지시 우리집 둘째 넝쿨이에게 “너, 설거지할 때 기분이 어떻더냐?”하고 물었더니,

“아빠, 솔직하게 말해도 되요?”
“그래!”
“정말 귀찮아요. 귀찮지만 엄마를 도와드리는 일이니까 하는 거예요"
하면서 웃습니다.

우리 집 막내 딸 은빈이도 보조의자를 놓고 올라가 엄마 설거지를 돕습니다. 아내는 두 아들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설거지를 시켰는데 딸 은빈이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설거지를 시킬 작정이라고 합니다. 아내가 잘하는 일인지, 아이들이 속에는 부글부글 화를 끓이며 마지못해 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이 나의 가정을 더 단단하게 지켜내고, 가족간에 깊은 연대감을 갖게 하는 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교회 앞에서. 삼남매. 큰오빠가 은빈이가 좋아 죽겠단다. 은빈이는 큰오빠가 싫은 모양이다.
교회 앞에서. 삼남매. 큰오빠가 은빈이가 좋아 죽겠단다. 은빈이는 큰오빠가 싫은 모양이다. ⓒ 느릿느릿 박철
사내 녀석이 설거지 하면 고추 떨어지는가?”

나는 우리 집 두 아들 녀석이 설거지를 할 줄 앎으로 더 매력 있고, 여자를 배려하고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어느 처녀가 이 다음에 우리 집에 며느리로 들어올지 모르지만 참으로 수지맞는 일 아닙니까?

설거지를 하면서 느낀 소감, "남자도 설거지를 해야 한다"

▲ 박아딧줄 중2때 모습
나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설거지를 시작하였다. 설거지 경력 6년째이다. 처음에는 엄마가 억지로 시키셨기 때문에 마지못해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설거지를 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엄마가 잘 시키셨다고 생각한다. 4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나는 매일 저녁설거지를 동생과 번갈아가면서 하였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주부습진이라는 것을 걸렸었다. 손이 간질간질한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때 엄마 설거지를 도와드리는 것이 학교에 소문이 나서 한동안 자랑스럽게 다니곤 하였지만, 속마음은 설거지를 할 때마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나? 엄마 일을 내가 왜 해야 하나?”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학교에서 자율학습 때문에 늦게 와서 많이 못하지만 설거지는 계속 할 것이다.

이번에 양성평등 글짓기를 하면서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집안일은 누가 하라고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이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설거지로 가족끼리는 더 가까워 질수 있고, 서로의 고통과 힘겨움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저녁을 먹고 난 후 의빈이, 엄마, 내가 모여서 설거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중학생이 되었으니, 전보다는 많이 못 도와드리고 일주일에 하루씩 저녁 설거지를 돌아가면서 하기로 하였다. 설거지가 보기에 쉬워보여서 별로 힘들지 않겠지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나는 설거지 경력 6년째로 이제는 설거지 노하우(?)를 터득하게 되었다. 남자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여자만 설거지 하라는 법은 없다.

엄마는 매일 하시는 거지만 내가 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인데 설거지는 생각보다는 어렵다. 어렵고 힘든 것만큼 또 보람된 일이다. 가족끼리 화목하지 못하고, 서로의 고통을 많이 못 나누는 가족에게 나는 설거지를 자신 있게 추천해 주고 싶다. / 박아딧줄(교동중학교 3학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