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미견 선발대회 로고
ⓒ FOX TV
지난 8일 저녁, 미국의 주요 방송가운데 하나인 팍스 채널(FOX TV)에서는 상당히 독특한 대회가 1시간동안 생중계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제1회 미견(美犬) 선발대회 (The First Annual Miss Dog Beauty Pageant)

이 행사가 다른 애완동물 관련 프로그램과 달리 파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그 진행방식이었습니다. 주관사인 방송국 스스로 이 행사를 소개하듯, '미스 아메리카(Miss America)' 혹은 '미스 유니버스(Miss Universe)'와 같은 미의 대회의 전통에 준해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50개 주와 컬럼비아 특별구(the District of Columbia)를 대표하는 51마리의 암컷 개들이 각각의 주를 대표해서 참가한 이번 대회는 전형적인 미인대회와 거의 같았습니다. 행사가 열린 화려한 무대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다를 바 없었고 사회 역시 남녀 연예인의 공동진행이었습니다.

각각의 출신 주에 따라 미스 텍사스 혹은 미스 뉴욕 등으로 불렸던 점이나, 마지막에 선발된 최고의 미견에게 왕관과 더불어 만불(한화로 대략 천삼백만원)의 상금을 수여한 것을 보면 재미삼아 한 장난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네 명의 심사위원과 함께 소개된 심사기준에 미(beauty), 재능(talent), 자세(poise)와 더불어 야회복(evening gown) 심사까지 있었으니 말입니다.

굳이 미인대회와 다른 부분을 따지자면 개들 주인이 모든 순서에 함께 참여했다는 정도일까요. 저는 앞부분 방송만 보고 말았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다음날 신문을 보니 일리노이 출신의 3년 반된 '스위트 피(Sweet Pea)'라는 개에게 "미스 독(Miss Dog)" 영예의 왕관이 돌아갔다고 하는군요.

좀 지나치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미국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꼭 이해 못할 일만도 아닌 듯 싶습니다. 애완동물용품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점들이 전국적인 체인으로 운영되고 있고 숱하게 많은 관련 상점이나 동물병원들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 미국인들의 삶에는 애완동물이 밀접하게 접근해 있습니다.

심지어는 월마트(Wal-Mart)를 비롯한 일반매장에서도 반드시 애완동물용품을 취급하고 있으며, 시(市)나 주(州)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연례적으로 애완동물 관련 행사들이 늘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행사 역시 그 형식이 좀 파격적이고 규모가 클 뿐 별 다른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FOX TV
어쩌면 별 다른 생각 없이 시청률 확보를 위해 고안된 행사이겠지만, 그 진행과정은 이른바 '미의 행사(Beauty Pageant)'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의 계량화와 상품화! 나름대로 고안한 외적인 기준을 가지고 점수를 매겨 상을 준다는 것 자체가 그 어떤 다른 미의 행사와도 일치하는 동일한 구조 아니겠습니까?

앞에서 소개한대로 얼마나 예쁜지, 무슨 재능이 있는지, 자세는 어떤지, 야회복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고 그 기준대로 몇 명의 심사위원들이 준 점수를 합산해서 그 총점으로 최고의 미견을 뽑는 방식. 이쯤 되면 단지 그 명칭뿐만 아니라 그 내용 면에 있어서도 정확히 미인대회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스코리아 대회 찬반논쟁을 보면서, 이번 미견 선발대회를 '안티-미스 아메리카'대회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주최측에서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최고의 미녀를 뽑는다는 방식이 개를 뽑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다는 조롱으로 읽혀질 수 있다면 말입니다.

외람되고 난폭한 상상인지 모르겠지만,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정작 불쾌해할 사람들이 미인대회 참가자들인지 아니면 애완견 주인들인지도 헷갈려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