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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0일부터 일주일 동안 평양에서는 국제친선음악제가 개최됐다. 피아니스트이며 울산대 음대 교수인 임미정씨(홈페이지 www.mijungim.com)는 재미예술단의 일원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가 지난 19일 귀국했다.

임 교수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연주활동을 하며 세 번의 방북연주 등을 통해 남북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고, 작년 그의 순회독주회시 북한의 피아노곡을 우리나라에서 초연했다. 이번 행사에서 방북했던 임 교수가 <오마이뉴스>에 '평양 방문기'를 보내왔다. 이번이 여섯 번째 기사이다. 아래는 지난해 10월 12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있었던 임미정의 순회독주회 실황연주이다....편집자주)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c#단조, Op.3 No.2

리면상(북한곡) 내 고향의 정든 집

▲ 고속도로에서 본 교통경찰.
ⓒ 임미정

4월 14일 월요일

아침 일찍 오늘 공연스케줄이 없는 예술단들은 버스5대에 나눠 타고 묘향산으로 출발했다. 버스로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고 평안 북도에 있으니까 북쪽으로 올라갔다.

떠나기 전 아침에 로비에서 단장 이준무 선생을 보니 새 양복을 입고 있었다. 며칠 전 여기 양복가게에서 맞춘 것이란다. 천은 미국서 가져왔고 여기의 인민복같이 생긴 옷인데 목의 칼라부분을 변형해 예전의 남학생 교복처럼 디자인했다. 색깔만 하얀색이라면 마치 디자이너 앙드레 김선생이 입고 다니는 옷 같다고 칭찬해 드렸더니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버스에 탔는데 갑자기 버스가 환해질 정도의 미인들이 들어왔다. 어디서 온 그룹인지 속으로 계속 맞추어 보고 있었는데 곧이어 TV카메라 기사와 연출가가 들어왔다. 텔레비전 영화 창작사에 속한 배우들이란다. 오늘 묘향산에서 촬영이 있기에 우리버스에 동승하여 간다고 한다. 그 중 한명, 나는 그런 미인을 옆에서 본적이 없다.

상아같은 피부의 미인 배우 이순주

▲ 인도네시안으로 분장한 여배우와 이순주
ⓒ 임미정

가끔 시인들이 표현하는 상아같은 피부라든가, 수정 같은 눈매 등은 바로 이런 미인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화장도 별로 하지 않고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딴세계에서 온 듯한 미인이다. 물론 평양에 미인이 많다고 예전부터 알려져 왔지만 말이다. 모두들 궁금해지고 해서 관심을 표현하는데(특별히 남자들이) 연출가가 그녀가 불편할 것을 아는지 앞자리로 불러 사람들의 관심을 차단해버렸다.

그들은 전쟁 때 헤어진 자매(한명은 재일교포, 또 한명은 인도네시아예술단원)가 축전에 참가했다가 만난다는 내용의 영화를 찍는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묘향산에서의 일정이 잡혀있는 우리 7조와 같이 돌아다니며 촬영한다는 것이다.

이순주라는 이름의 이 미인은 조총련 예술단 역할이었고, 다른 배우 한명은 인도네시아 예술단원 역할, 또 다른 한명은 안내원 역할이었다. 안내원 역할의 배우는 원래 음악대학에서 기타를 전공했는데 그렇게 뛰어난 실력은 아니라 고민하던 중 영화창작사에서 배우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응시했다가 합격했다고 한다.

아침 일찍 떠나느라 분장할 시간이 없었던지, 가는 차 안에서 40대의 여자 분장사가 그들의 메이크업을 해주었다. 인도네시아 역할을 맡은 배우는 어두운 피부를 표현하기 위해 진한색 파운데이션을 발랐는데 화장을 끝내고 보니 거의 인도네시아 사람같이 보여 차에 타고 있던 인도네시아 예술단원들이 사진을 찍자고 성화다.

▲ 영화촬영중인 이순주.
ⓒ 임미정
인도네시아팀에선 미리 연락이 되었는지 그녀를 위해 단복 하나를 더 가져왔다. 이순주라는 제일 예쁜 배우는 총련 역할이란다. 이곳에선 재일교포를 총련이라 부른다. 북에서 총련은 해외교포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총련예술단도 축전에선 제일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데, 서울에 와서 공연한 적도 있는 금강산 가극단의 경우 2월부터 와서 이곳 무용 선생님들로부터 레슨을 받기도 한다.

또 어떤 학생은 아예 일년이나 이년 정도 평양에 유학을 와서 공부한다. 3년전 나와 같이 축전에 왔던 해금의 김희련의 경우 평양에서 1년을 유학했고, 나중에 뉴욕의 매네스 음대에서 작곡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때 평양에 오자 마자 자기 선생님을 만나 레슨받는다고 해서 신기했었다.

그 후 간호사가 직업인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 살며 보스톤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결혼해서 미국여권을 갖기 전 북한 국적의 일본 여행여권을 갖고 다녔다. 일본에 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키에 딱 붙는 가죽바지를 잘 입고 다니는 그녀를 생각하면 참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가 계속 다른데로 흐르지만, 총련에 대해 더 설명하려 한다. 북에서 총련은 이런 행사 기간중에 한복에 관한 총련패션도 형성했다. 총련 아가씨들은, 원색이나 진한 색깔의 빌로드로 된 한복을 즐겨입는 북의 여성과 달리 파스텔톤의 한복을 입는다. 무릎 밑 정강이까지 오는 길이의 한복이고, 추울땐 요즈음 많이들 하는 파쉬미나 머플러를 자연스럽게 목에 감는다. 역시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파스텔톤이다.

총련 교포들의 현대적 치마저고리 패션

▲ 교복과 한복 차림의 시민들.
북에서나 총련 교포들의 중 고등학교 교복은(북에 가까운 총련사람들은 남쪽정부와 가까운 민단사람과 달리, 일본 정부가 세운 것이 아닌 자체적으로 설립한 민족 학교들에 많이 다닌다.), 하얀 저고리(겨울엔 검은색)에 검정색 주름치마이다. 언젠가 잡지에서 총련 학생들이 이 치마 저고리 교복에 일본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양말과 신발을 신은 것을 본적이 있는데 흑백의 치마저고리가 옛 시대를 상기시키면서도, 아래에 매치된 신발덕분에 대단히 현대적 감각이라고 느낀적이 있다.

요즈음 우리에게도 개량한복이 많이 일반화되어가고 있는데, 더불어 북에서의 한복 그리고 총련의 교복이나 화려한 파스텔톤의 한복 같은 것들은 조선시대와의 시대적 간극없이, 생활속에 자리잡은 우리 옷의 변천을 보게 해주는 것 같다.

참, 북쪽 공연 사회자들이 입는 의상에 대해서도 언급하자면, 그들의 한복은 치마의 뒤가 트여 있지 않다. 서양 드레스처럼 통으로 되어 있고, 그래서 입을 때 머리로부터 내려 입는다. 그리고 몇 겹의 페치코트를 입는지 굉장히 넓게 퍼진다. 하지만 여지껏 내가 보았던 가장 넓게 퍼져서 드라마틱(?) 했던 한복은 가수 김연자씨의 옷이었다. 2000년도의 축전 개막식에서였는데 그녀 주위로 10명은 족히 설 수 있는 넓이의 치마여서 한복도 저럴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압권이었었다!

미국의 재미교포 사회에선 남쪽의 한복경향대로 가는 반면, 재중교포나 고통련은 한복에 있어서 특별히 정리된 경향을 보지 못했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분들은 개인적으로 알게 된 이곳 저곳의 스타일을 입으시는 것 같았다. 고통련의 경우 평양에서 80여벌의 무용단 의상을 맞추어 가는 관계로 인해 북 의상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남쪽과 우즈베키스탄 교포사이의 교류로 인해 남쪽의 영향도 받는 것 같다.

한민족 한복 패션의 집합소

이번엔 몇몇 젊은 안내원 중에 총련스타일처럼(주로 색깔이나 무늬에서) 입은 것을 보았는데, 총련의 한복 또한 남쪽과의 상호영향을 볼 수 있는 만큼, 내가 짧은 방문들로 경향이 어디서 어떻게 영향받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지만, 각 지역에 퍼져 있어 막힌 듯 하면서 이렇게 서로 영향받는 것 또한 같은 옷을 입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평양에서 열리는 이런 행사들은 각 곳에서 사는 우리 민족의 한복패션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이번에 나는 분홍색 치마와 금빛 수가 놓여진 화려한 당의를 가져 갔었는데 이것이 특이했는지 젊은 여성 안내원들과 교포 아가씨들이 유심히 살피고, 와서 이것 저것 물어 보았었다. 천이라든가 어디서 했는가에 대해. 나는 서울에서 한 것이며, 그밖에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는데, 어쩌면 내년 축전에 가면 누군가 당의를 가져올지도 모르겠다!

▲ 농가풍경.
ⓒ 임미정
참, 이상하게도 북에서 남자들은 한복을 안 입는다.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 그러길 그것이 옛날에 지주들이 많이 입었기 때문에 그런다나? 작년에 UCLA의 음악과 교수로 계시는 김동석 선생이 개량 한복을 입었었는데 안내원들이 "허, 거 참 신기하구만요"하고 말더란다.

다시 아까의 배우이야기로 가서, 재일교포 역할을 맡은 이순주라는 배우는 완벽한 총련 스타일의 한복을 입고 화장도 그들처럼 파스텔 톤으로 엷게 했다. 그리고 이들이 묘향산에 도착해서 국제 친선 전람관을 우리와 같이 구경다닐 때, 카메라맨이 계속 쫓아다니며 영화를 찍었다. 텔레비전 영화라 그런지 비교적 단촐한 팀이 왔는데, 연출가와 카메라 맨, 그리고 조명기사와 분장사가 여배우 세명과 온 것이었다.

대사는 나중에 더빙을 한다고 한다. 전문 성우가 할 때도 있고 여배우들이 할 때도 있단다. 그날의 배우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지금 영화 학교를 다니고 있는 배우 초년생이라 아직도 수줍어 하고 앳띤 모습이었다. 축전 기간중엔 이렇게 우리와 함께 돌아다니는 모습을 찍고 나중에 스튜디오에서 나머지 촬영- 내부작업(그쪽 단어)을 한다고 한다.

나는 그날 카메라를 도망다니느라 제대로 구경을 못했는데 언뜻 언뜻 엑스트라로 나오는 것이 좀 챙피해서였다. 그러나 결국 며칠 뒤 우리가 만경대 소년궁전을 구경다닐 때 연출가가 내게 와서 같이 앞에서 구경하는 것을 찍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출연료를 주면 하지요 하고 그날은 계속 얼굴을 빌려 주었다.(?) 하지만 결국 이 연출가를 만나지 못해 출연료를 받지는 못했다. 어찌 되었든 평양에서의 내 영화데뷔가 된 작품일텐데 잘 찍혔는지….

묘한 향내 가득한 묘향산

▲ 묘향산 가는 길의 풍경.
ⓒ 임미정

묘향산은 향나무가 많은 산이기에 향산이다. 거기에 향나무 때문에 묘한 냄새가 난다 하여 묘향산이란다. 실제로 특이한 나무 냄새가 아주 좋다. 공기도 맑고.

이번엔 아쉽게도 정작 산행은 못하고 입구까지만 갔다가 내려왔으나, 3년전에 처음 갔을 때는 묘향산 계곡가에 않아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었다. 물이 얼마나 맑던지… 그때 같이 갔던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설치작가 강익중씨와 함께 묘향산 계곡에서 세수도 하고 했었다. 그때 우리는, 정말 우리가 묘향산 계곡가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구나라는 사실에 흥분되어 있었다.

▲ 묘향산 안내도.
ⓒ 임미정
그 당시, 경제 봉쇄와 자연재해로 인해, 묘향산에 갈 때 보았던 주위산들엔 (아마도 땔감 때문에) 나무가 거의 없어서 충격이었다. 그래도 묘향산만은 보호 구역이었는지 빽빽한 나무들을 유지하고 있어서 다행이었음에도 굉장히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때보다는 생활 전반적으로 경제상황이 좀 나아진 것 같으나, 순환기간이 긴 자연, 특히 나무가 없는 민둥산에 새 나무가 자라 원래의 모습을 가지려면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 것 같다. 재작년인가 서울에서 TV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어떤 단체인지 북쪽의 나무심기와 자연환경유지를 위해 후원 및 공동작업을 하는 내용이어서 묘향산을 떠올리며 참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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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정 기자는 피아니스트로서 현재 울산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이다. 귀국전 14년간 뉴욕에 거주, 평양에서의 연주 및 뉴욕에서의 북한 음악 연주등을 통해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다. 2002년 그의 피아노 독주회시 아리랑과 내고향의 정든 집 등 북한의 피아노곡을 국내 초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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