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62년 나의 어머니. 화천제일교회에서 김구철 목사님과 함께.
1962년 나의 어머니. 화천제일교회에서 김구철 목사님과 함께. ⓒ 박철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다.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생활이라는 것이 어찌 어버이 날이나, 어버이 주일에만 국한할 수 있겠는가? 현대인들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편의주의에 빠져서 모든 것을 간단하게 허투로 생각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른다.

나는 어버이날이나 어버이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집안의 가장이요, 장남으로서 제대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벌써 25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홀로 되신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못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으로서 말씀을 받들어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취지로 어버이주일 설교를 할 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르곤 한다.

우리가 부모님의 속내를 잘 살펴서 지금 부모님이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는지,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서 행동하는 지극한 정성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느 해인가 현충일에 TV 카메라가 아들의 묘비를 쓰다듬고 있는 노모의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 일이 있었다. 팔순이 넘은 그 노모는 눈물을 숨김없이 줄줄 흘리면서 차가운 묘비를 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어미가 죽고 나면 누가 와서 너를 다듬어 줄 것이냐?”
이렇게 울먹이며 흙에 묻혀 흙이 되어 버린 자식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통곡하는 그 노모가, 효란 무엇인가를 눈으로 보게 한 적이 있다.

아이의 손등에 상처가 나면 그 아이의 어머니 가슴에 못이 하나 박힌다는 말이 있다. 부모님을 둔 자식들은 이를 모르고 제 몸을 함부로 다루어 부모의 가슴을 치게 만든다. 이것이 불효이다.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이나 값비싼 옷, 흑은 패물을 사드린다고 효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를 살펴서 몸가짐을 조신(操身)해야 효는 시작된다.

전선에 나가 전사를 한 탓으로 국군묘지에 묻힌 자식의 묘비를 어루만지면서 통곡하는 팔순 노모의 가슴에 아무리 나라가 거창한 훈장을 달아 주어도 아들의 죽음이 박아 준 못을 뽑아낼 수 없다.

예부터 손톱 하나 머리털 하나도 귀중히 여기라고 하였다. 몸이야 말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무엇보다도 몸조심을 하여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하라는 말이다. 효라는 것은 부모를 생각하고 행동하게 한다.

부모가 기뻐할 행동이면 서슴없이 할 것이며 부모가 슬퍼할 행동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 효의 출발이다. 어느 부모가 제 자식 못되기를 바랄 것인가? 아무도 없다. 어느 부모나 자식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빈다. 그러니 효를 실천하는 마음은 이 세상을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터전이 되게 해 줄 근거가 된다.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나쁘면 세상은 어둡고 막막해 진다. 이러한 꼴은 못된 인간 탓으로 빚어지는 인간의 아픔들이다. 이러한 아픔들은 사람이 선해져야 없어지는 병들이다. 효는 이러한 병을 근본부터 고칠 수 있는 약을 인간의 마음으로 조제한다. 그러한 약을 우리는 섬김이라고 한다.

공자의 제자 중에 증자는 효행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증자가 병들어 임종이 임박하게 되었음을 알고 제자들을 모이게 하였다. 모든 제자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슬픈 표정을 짓고 주변에 앉았다.

그러자 증자는 이불 밑에 들어 있는 자신의 손을 먼저 펴 보이게 하고 손이 온전한가를 보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 발을 들어내 펴보이게 한 다음 발이 온전한가를 보게 하였다. 자신의 손발이 온전한 것을 확인하게 한 다음 증자는 다음처럼 말을 하였다.

“깊은 못가에 서 있듯이 얇은 얼음을 밟듯이 몸을 조심하였는데 이제부터는 걱정을 면하게 되었나?”

이러한 증자의 독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효행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것을 손발을 들어 보인 다음 말로 한 것이 아닌가?

초기작품. 어머니
초기작품. 어머니 ⓒ 문순
내 몸이라고 해서 나만의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이니 함부로 하지 말고 귀하게 여는 것이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첫걸음인 것을 증자는 보여 주었던 셈입니다.
(曾子有病 召門弟子曰 啓預足 啓預手 詩元 戰戰就就 如臨探刻 如履薄永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한 아들이 나이 많은 아버지를 산에 갔다 버리고 돌아오는데, 함께 따라 갔던 아들놈이 버린 지게를 메고 온다. 그래서 아버지가 “왜 그것을 가지고 오느냐?”고 꾸짖자, “나도 아버지가 죽으면 이것으로 갖다 버리려고 한다”고 대답해서 그만 마음에 충격을 받고, 자기의 늙은 아버지를 다시 모시고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 청년이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상대가 된 처녀는 아름답기는 해도 아주 표독스럽고 잔인한 취미가 있었다. 처녀는 청년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그 증거로 당신 어머니의 심장을 가져다 달라고 말다.

사랑에 눈 먼 청년은 망설이기는 했지만, 결국 어머니에게서 심장을 빼앗았다. 그는 심장을 가지고 자기가 사랑하는 처녀를 만나기 위해 달려갔다.

달려가다가 그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심장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와 데굴데굴 굴러 갔다. 그렇게 굴러가면서 어머니의 심장이 말했다. “애야, 어디 다치지는 않았느냐?”

지금부터 10년 전, 날씨가 더위로 푹푹 찌는 여름날이었다. 얼마나 더운지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내가 목회하던 동네에서 팔순이 넘은 조00 할머니라는 분이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썩은 짚 풀 더미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계셨다. 가만히 지켜보았더니 굼벵이를 잡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 그걸 무엇에 쓰려고 열심히 잡아요?”
“우리 아들이 병에 걸렸는데 굼벵이가 좋다고 그래서요. 그래서 지금 굼벵이를 잡고 있어요.”


당신의 큰 아들이 암인가 하는 중병에 걸렸는데, 다른 약도 소용이 없고 굼벵이가 좋다는 얘길 누군가로부터 들었다고 하시면서 벌써 많이 잡았다며 좋아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죄송한 얘기지만 어머니의 속을 무던히도 썩힌 아들이었다.

팔십이 넘은 고령의 할머니께서 육십이 지난 아들의 병에 쓰려고 굼벵이를 잡으시는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실 우리는 황금만능의 절대적인 황금률을 섬기면서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가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다. 이 말은 사소한 일상에 천착해야 한다는 그런 말이 아니다.

나는 동양의 효라는 개념을 예수의 사랑의 정신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으로 “서로 사랑 하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사랑은 삶이요, 삶은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이란, 또 진정한 삶이란 올바른 관계에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철 뙤약볕에서, 굼벵이를 잡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하느님이 맺어주신 신성한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 나가시려는 삶의 기도요, 어찌 보면 부모만이 알 수 있는 사랑의 비밀이 아닐는지.

가정이 평화롭고 화목하기 위해선 부모된 이들은 부모의 책임을 다해야 마땅할 것이며, 또 자식 된 이들은 자식 된 도리를 다하므로 써 가능할 것이다.

그대들은 시방 부모님에 대해 어떤 감회를 느끼시는가?


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 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새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묻고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있는 강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이해인.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1995년. 문순. 미소. 95.5×75. 한지에 수묵
1995년. 문순. 미소. 95.5×75. 한지에 수묵 ⓒ 문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