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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국정원 기조실 김모씨 소환에 맞춰 국정원 직원들이 '바람잡이'에 나섰다. 이날 국정원 소환자(왼쪽 사진)와 수행원 역할을 한 국정원 기조실 직원들.
8일 오전 국정원 기조실 김모씨 소환에 맞춰 국정원 직원들이 '바람잡이'에 나섰다. 이날 국정원 소환자(왼쪽 사진)와 수행원 역할을 한 국정원 기조실 직원들.
"선수들끼리 왜 그러냐, 우리도 직업상 어쩔 수 없다."

국정원 직원들은 소위 '바람잡이'를 동원해 특검의 실질적인 소환자인 기조실 간부 김모씨 빼돌리기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기자들에게 들이민 말이다.

국가정보원 기조실 직원들은 8일 '대북송금' 의혹사건을 수사중인 송두환 특검팀에 소환되는 1명의 간부를 보호(?)하기 위해 소위 '바람잡이'로 둔갑해 신출귀몰하면서 '국정원 소환자 빼돌리기' 작전을 수행했다.

이날 오전 9시 50분경.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해암빌딩(17층 건물)에 위치한 특검사무실 1층 로비에는 국정원 소환자와 관련된 인물로 보이는 남자가 승강기 주변을 맴돌았다. 그는 곧바로 밖으로 나가 다른 한명과 함께 들어와 특검사무실로 곧바로 통하는 2번 승강기 앞에 섰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명은 '소환자', 30대 후반 정도인 다른 한 명은 '수행원'인 듯해 보였다.

이에 기자들이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기자: "어떻게 오셨습니까." "국정원에서 오셨습니까."
소환자: "왜 왔는지 아시잖습니까."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잠시 후 2번 승강기 문이 열리자 이들은 승강이에 타고 특검이 입주한 15층 버튼을 누른채 기자들과 함께 올라갔다. 이들은 마치 국정원 소환자와 수행원인 것처럼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고,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특검사무실로 들어갔다.

기자들의 시선이 이들 두명에게 쏠려있는 틈을 이용해 다른 국정원 직원 4명(실질적 소환자 포함)이 1번 승강기를 탄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특검사무실이 위치한 14, 15층 버튼이 눌러지지 않은 1번 승강기를 타고 17층으로 올라갔다. 1번 승강기는 특검사무실과 직접 통하지 않기 때문에 기자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17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국일보> 기자의 눈에 띄었고, 승강기에서 내린 4명의 남자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비상계단으로 향하자 기자가 다가갔지만 4명 중 한 명이 이를 제지했고 나머지 3명은 재빨리 계단을 통해 15층 특검사무실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종료 "작전을 잘 수행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실제 소환자인 양 대답을 해줬다.
국정원 직원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실제 소환자인 양 대답을 해줬다.
오전 10시경. 15층 특검사무실로 검정색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채 '소환자' 역할을 하고 들어간 바람잡이는 안에서 체크 콤비를 입고 안경을 벗은 얼굴로 나왔다. 마치 특검에 볼 일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밖에 있던 한 기자에 의해 특검사무실로 들어갔던 '가짜 소환자'라는 사실이 발각됐다.

이 기자에 따르면 왜 특검 사무실에 들어갔다 나오냐고 다그치자 모른척 했고, 이에 좀전에 찍은 디지털카메라를 들이밀자 "선수끼리 왜 그러냐"면서 "우리도 직업상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국정원 직원과 기자들과의 숨바꼭질과 실랑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번 승강기를 이용해 17층으로 올라간 국정원 직원의 경우 맞닥뜨린 기자를 거세게 밀어붙이며 다른 직원들을 쫓아가는 것을 막았다. 이들은 서로 실랑이를 벌이면서 15층으로 내려왔고, 문이 열리자 대기하고 있던 사진기자의 후레시가 연속 터졌다.

이에 국정원 직원은 사진기자의 렌즈를 누르며 촬영을 거칠게 막았다. 15층에 있던 5∼6명의 기자들이 국정원 직원의 행동에 대해 항의했고, 옥신각신 말다툼이 오갔다.

"민간인을 왜 찍냐" "당신이 뭔데 그러냐" "너 몇살이냐" "1층으로 내려가 이야기하자" 등의 험악한 말이 터져나왔다. 결국 특검팀 방호원의 중재로 현장은 정리됐다.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간 국정원 직원은 다른 나머지 직원들과 합류해 특검사무실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날 실질적으로 소환된 국정원 기조실 김모씨는 기자들에게 취재를 받지 않고 무사히(?) 특검팀으로 들어갔고, 상황이 종료된 후에야 이들은 기자들에게 '국정원 기조실 직원'임을 밝혔다.

이중 한 명은 "당사자 사진을 못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작전을 잘 수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늘 (소위 바람잡이 국정원 직원들을) 찍은 사진들은 모자이크 안하고 그냥 내보내도 된다"면서 "동료를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고 밝혔다.

"국정원 직원은 역시 다르단 말인가"

'바람잡이' 특급 소환작전을 펼친 국정원 직원들은 "선수끼리 왜 그러냐"면서 "우리도 직업상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바람잡이' 특급 소환작전을 펼친 국정원 직원들은 "선수끼리 왜 그러냐"면서 "우리도 직업상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 본인들 입으로 '작전'이라고 말했듯 이같은 국정원 직원들의 특검 소환 특급작전에 대해 기자들은 황당해했다.

김종훈 특검보는 국정원 직원들의 '바람잡이' 동원 소환 소동에 대해 기자들이 항의하자 "국정원 직원 자신들이 스스로 연출한 것으로 특검팀과는 무관하다"면서 "특검팀은 국정원 직원들이 그렇게 연출한 것에 전혀 협력한 바 없고 몰랐다"고 해명했다.

지난 6일에도 이와 비슷한 해프닝이 벌어졌었다. 특검팀에 소한된 국정원 간부급 직원 1명을 육탄방어하기 위해 4명의 직원이 따라붙어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 것이다. 결국 이날 국정원측은 소환된 관계자의 얼굴이 찍힌 것에 대해 "모자이크 처리해 달라" "뒷모습만을 내보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특검팀에 소환된 사람들은 떳떳이 자신을 밝히거나 정상적인 통로를 이용해 특검사무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국정원은 '구린 구석'이 많은 것일까. 특검에서의 소환 사실을 숨기기 위해 휴일날을 택했고, 이도 모자라 5-6명의 직원을 동원해 눈속임에 나선 국정원 직원들을 일반 시민들이 어떤 시선으로 쳐다볼 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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