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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마니산. 숲은 언제나 넉넉하다. 산은 사람을 부른다.
2003년 4월 마니산. 숲은 언제나 넉넉하다. 산은 사람을 부른다. ⓒ 박철
지난 토요일, 나는 밀린 원고를 한꺼번에 다 쓰고 아내와 두 애들을 앞세우고 산으로 취나물을 뜯으러 갔다. 처음에는 우리 동네 초입(初入)에 있는 야산을 뒤지며 취나물을 뜯었는데, 취나물이 너무 여린 게 아무래도 좀 자란 다음에 뜯어야 할 것 같아 한 30분가량 뜯다가, 이번에는 자리를 옮겨 황산 비탈 쪽 야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법 잎사귀가 벌어진 게 쌈을 싸먹으면 안성맞춤일 정도로 자랐다. 이제 재밌게 나물을 뜯을 참인데, 호빈이가 비명을 질러대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달려가 보았더니 머리가 아카시아나무에 찔려 정수리 부분이 1㎝가량이 찢어졌다.

다행히 병원에 가서 꿰맬 정도로 깊이 찢어진 것은 아니어서 마음이 놓였다. 빨리 집에 가자고 툴툴거리는 놈에게 엄살 부리지 말고 가만있어라 해놓고 소롯길을 따라 올라갔다. 기대한대로 손바닥만한 취나물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한참 나무숲을 뒤지며 나물을 뜯었는데, 갑자기 온몸이 송충이가 스물스물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셔츠 속으로 몸을 뒤져보았지만 벌레나 송충이는 없었다. 그리고 나서 온몸이 가려워 도저히 나물이고 뭐고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사람을 부르고 차를 타고 서둘러 집으로 달려왔다.

찬물로 대충 몸을 씻고 이불을 펴고 누웠는데, 육두문자를 빌려 쓴다면 정말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온몸이 가려웠다. 누가 모기약을 바르면 괜찮다는 말을 해서 작년에 쓰던 모기약을 덕지덕지 발라도 소용이 없었다.

옻나무를 만져 옻이 오른 건지, 풀쐐기에 쐐인 것인지 목덜미로부터 겨드랑이, 허벅지, 심지어 사타구니까지 두드러기 모양 부풀어 오르고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이었다. 아내한테 “왜 나물을 뜯으러 가자고 해서 이런 고초를 겪게 했는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어찌 할 바를 몰라 발만 구르고 있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보건진료소로 차를 타고 달려갔다.

도착하자마자 엉덩이에 주사를 한방 맞았다. 보건소 소장 말에 의하면, 무슨 피부 알러지인 것 같다고 하면서 며칠간 고생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약봉지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 왔는데, 좀 전보다 확실히 가려운 증세가 줄어들었다. 웬만큼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주사를 한 대 더 맞았고 약도 며칠 분을 타 가지고 와서 먹는 중인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두드러기 증상이 수그러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온몸으로 퍼져 가는 중이다. 아마 온몸을 한바퀴 돈 다음에 그칠 모양이다.

며칠동안 잠도 푹 자지 못하고 고생하는 중인데, 그 가려움의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이다. 긁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말같이 쉬운 일인가? 수세미로 박박 긁어대도 시원치가 않을 정도인데, 그 두드러기가 내 몸에서 사라질 때까지 순전히 나와의 전쟁, 내 몸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 치통으로 며칠간 고생을 한 적이 있었지만. 거기에 못지않을 정도로 가려움증이 갖다 주는 고통이란 견디기가 어렵다.

아무튼 두드러기를 이길 재간은 없다. 결국은 내 몸에서 일어난 지각변동이니,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견딜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예기치 못한 소모전은 인간에게 가장 적나라한 자기발견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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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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