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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산업구조개혁이 수포로 돌아간 가운데 오는 2004년 4월 개통예정인 고속철도의 운영권을 놓고 철도청과 고속철도공단이 첨예한 대립양상으로 치닫고 있어 향후 고속철도 운영권을 누가 쥐게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92년 6월 착공이후 내년 4월 전구간 1단계 개통예정인 경부선 고속철도사업은 14년간의 공사 기간동안 총 18조4358억이라는 천문학적인 공사비가 투입된 우리나라 최대의 국책사업으로 공사가 완료되면 서울-부산간을 1시간 56분이면 주파가 가능한 차세대 교통수단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 내년 4월 개통을 앞두고 있는 고속철도가 운영권자 선정을 두고 마찰이 일고 있어 정부의 확고한 입장표명이 요구되고 있다. 사진은 고속철도 시운전 장면.
그러나 이러한 국책사업이 철도노조의 강경 총파업 움직임으로 인해 정부의 철도산업구조개편과 함께 순항이 어렵게 되었다는 관련 전문가들의 전망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속철도 사업은 개통을 불과 1년여 앞두고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정부는 철도산업을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안으로 지난 2001년 12월 철도청을 철도시설공단과 철도운영회사로 나눠 민영화하겠다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1년 넘게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철도민영화는 철도노조의 강력한 총파업 강행으로 지난달 결국 철회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지난달 20일 철도청은 철도노조와의 마지막 협상에서 노조의 기관사 1인 승무제 미시행, 해고자 45명 신규 특채, 철도산업 발전에 공동 노력, 철도 민영화는 노사 공동의 구조개혁 대안 마련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한다는 등의 내용에 대해 노사양측이 합의함으로써 철도 민영화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일고 있다.

물론 이같은 합의로 인해 총파업이라는 최대의 위기는 넘겼다 하더라도 수습과정에서 정부나 철도청이 지나치게 끌려간 것이라는 지적이 강하게 일고 있어 참여정부가 개혁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심심치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건교부는 민영화는 철회해도 철도부분 개혁은 계속 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미 원칙은 무너졌고 앞으로의 처리는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것은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한국을 평가절하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 이래저래 이번 일로 정부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상황이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철도청과 고속철도공단은 자신들만이 고속철도를 운영하는데 최적임자라고 자부하고 있어 그 이면에는 고속철도를 운영함으로써 챙길 수 있는 막대한 수익구조측면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철도산업구조개편이 정상적으로 진행돼 내년 4월 고속철도가 정상 운행에 들어가게 되면 총 46편성의 차량편성으로 하루 52만여 명의 여객을 수송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예상하고 있다.

한국고속철도공단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개통직후부터 단년흑자를 기대하고 있고, 늦어도 2015년이면 누적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분석이고 볼 때 현재 3조3580억 원의 누적적자를 안고 있는 철도청으로서는 고속철도사업 운영이 그동안 누적됐던 적자부분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서의 매력있는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지난 3월 건설교통부가 밝힌 최근 5년간 철도청의 영업실적 분석결과를 보면 98년부터 2002년까지의 누적영업적자가 모두 3조358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철도청의 누적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적자만큼 정부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것은 철도청의 고비용 구조가 근본원인이라는 것이 건교부의 분석이다.

실제로 철도청의 수입은 연평균 1.8% 증가한 반면 비용은 연4.8%의 증가율을 기록해 비용증가율이 수입증가율의 2.7배에 달하고 있다. 또한 서비스 차별화, 적극적 마케팅 등을 통한 새로운 수요창출 노력보다는 요금인상에 의존하는 수입구조는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비단 문제는 수익구조뿐만이 아니다. 철도청은 방만한 경영에다 회계관행마저 불투명해 심각한 경영상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철도청에 지원해준 3조3392억 원 가운데 영업손실 보전부분인 1조7000억 원을 수익에 포함시켜 지난 5년간 영업적자는 1조5825억 원에 불과하다고 크게 축소해 발표했다.

▲ 시험운행중인 한국형고속철도.
즉 적자노선운영과 노인, 장애인에 대한 사회보장 차원의 요금감면 등 공익서비스에 대한 보상차원의 정부보조금이어서 영업손익계산에 반영한 것이라고 철도청은 설명하고 있으나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 관련연구기관의 철도청 공익서비스 분석결과는 한마디로 과다하게 부풀려져 계상된 것으로 평가돼 있다.

회계상식에도 어긋나는 불투명한 회계처리관행과 정부지원에만 의존하는 경영상황 등 철도청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철도청이 고속철도 운영권을 주장하고 있는 이유는 지난 1995년 제정된 국유철도운영특례법에 따른 것으로 고속철이 개통되면 고속철 운영부분이 철도청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적자를 안고 있는 철도청이 고속철도 운영을 맡게 될 경우 2020년까지 11조원 규모의 고속철도 건설부채상환을 포함해 모두 28조원의 부채가 쌓이게 되고 정부는 22조원의 운영자금 지원 등 50조원에 이르는 재정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어 결국 국민들의 세금부담만 가중될 것이라는 것이 고속철도공단의 주장이다.

철도청은 상황이 이런데도 자신들의 운영권 선점을 위해 지난달 23일 중앙 일간지에 일제히 광고를 게재하고 본격적인 고속철도 운영권 접수를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광고에서 철도청은 철도청과 철도노조는 국민이 원하는 철도로 거듭날 수 있도록 ‘철도구조개혁’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철도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철도공사화’방안을 구체화 할 것임을 약속하고 나섰다.

또 최첨단 기술의 총아인 고속철도의 성공적인 개통과 운영을 위해 3만여 철도직원들은 성공적인 고속철도 개통을 위해 각종공사를 차질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응해 고속철도공단도 철도청의 광고가 나간 다음날 공단직원의 성금으로 제작된 반박광고를 내고 시속300km로 운행되는 첨단기술의 집합체인 고속철도를 사람의 지각으로 달리는 일반열차의 운행기술로는 도저히 운영이 불가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동안 설계, 시공, 차량제작, 시험, 운행기술 등 장기간에 걸쳐 쌓은 운영노하우가 있는 고속철도공단이 운영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폈다.

또한 첨단경영체제 구축을 위하여 철도선진국인 영국, 독일 등 세계 40여 개 철도회사들의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에 대한 벤치마킹을 이미 완료하는 등 국내외 민간기업 이상의 첨단경영체제를 구축하여 건설부채 11조원의 조기상환으로 한국철도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가는 선구자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 고속철 내부전경
이와 함께 2001년 12월부터 건교부, 고속철도공단, 철도청간 통합운영조직을 공단주도하에 설치하여 개통을 준비해 왔으며 건설기관의 고속철도 운영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임을 강조했다.

지난달 9일 고속철도공단 노조는 이러한 준비과정을 거쳐왔는데도 불구하고 현 건교부 장관이 이에 앞선 4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고속철도공단은 운영노하우가 없기 때문에 고속철도를 운영할 수 없다”고 못 박은 부분에 대해 성명서를 내는 등 건교부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노조는 성명서에서 “고속철도공단은 지난 92년부터 개통, 운영준비를 완벽히 해왔을 뿐만 아니라 차량의 시운전을 통해 고속철도 영업운행경험을 축적해온 국내 유일의 전문기관이며 지난 2월말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 백서에서도 고속철도와 일반철도의 운영을 분리, 이원화하기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건교부 장관은 정부정책을 전면 부정하면서 고속철도운영을 철도청에 맡기려 하고 있다며 건교부장관의 처사는 반역사적, 반 개혁적 처사로 총파업도 불사할 것임을 밝히는 등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나섰다.

고속철도공단 관계자는 “철도청의 주장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대안제시도 없이 철도산업은 무조건 자신들이 운영해야 한다며 이는 어불성설이자 젯밥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고속철도공단의 10년 노하우를 하루아침에 부정하면서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다”고 말하고 “건교부와 철도청은 하루빨리 입장 조율을 통해 고속철도공단이 고속철 운영권을 가지는데 대해 인정하고 국회는 현재 계류중인 구조개혁 관련 3개 법안을 늦어도 오는 6월까지는 처리해 마무리함으로써 고속철이 내년 4월 개통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의 노련미 없는 정책수립 및 시행에 관련기관끼리의 상호 마찰로 인해 타격을 받는 쪽은 결국 국민들일 것이다.

국민들은 내년 고속철도 개통만 학수고대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이들 관련기관들의 계속되는 마찰과 분쟁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할 수 있는 상황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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