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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가 짚을 질근질근 먹고 있다. 겨울 햇살이 따사롭다.
황소가 짚을 질근질근 먹고 있다. 겨울 햇살이 따사롭다. ⓒ 박철
트랙터가 저녁나절에 논을 갈고 있다. 상기 아저씨 배 고프겠다.
트랙터가 저녁나절에 논을 갈고 있다. 상기 아저씨 배 고프겠다. ⓒ 박철
요즘 시골풍경은 곧 시작될 모내기를 앞두고 논갈이로 분주합니다. 트랙터에 보쟁기를 달아 논을 깊이 갈고 물을 댄 다음 흙을 잘게 부숩니다. 이걸 써레질이라고 합니다. 써레질은 두 번 합니다.

요즘은 논이나 밭일을 거의 트랙터로 합니다. 그것도 엔진 마력수가 높은 대형 트랙터를 선호합니다. 그만큼 일이 수월하고 진척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편리한 대신 돈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 대 당 가격이 3-4천만원을 호가하는 걸, 편리하다고 무턱대고 사들이다보니 전부 빚이 되었습니다. ‘농사를 왜 짓는가?’ 가만 생각해보니 기계 외상값 갚으려고 농사 짓는 것 같습니다.

농촌의 농가부채라는 게 거의 기계 외상값입니다. 농사는 힘들어서 못 짓겠고, 일손은 부족하고 어쩔 수 없이 기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어 결국 빚만 잔뜩 떠안게 된 셈입니다.

옛날에는 논이나 밭을 소로 갈았습니다. 일 잘하는 소는 그 집안의 상전과 같았습니다. 한겨울에는 여물 끓이는 게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헛간에 갈무리 해두었던 여물을 가마솥에 넣고 끓입니다.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구수한 냄새가 집안 전체에 풍깁니다. 한 김 죽여 뜻뜻한 여물을 구유에 부어주면 소가 잘 먹습니다. 요즘은 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소 외양간
소 외양간 ⓒ 박철
봄이고 여름이고 꼴 베는 게 일이었습니다. 학교 갔다 와서 지게지고 들에 나가 꼴을 한 짐 지고 옵니다. 그때는 소사료가 거의 없었습니다. 소가 초식동물이라 산이나 들에서 풀을 베어다가 작두에 잘게 썰어 줍니다. 소잔등이 윤기가 나고 코끝이 반질반질하면 그 소는 건강한 소입니다. 그러면 소 주인은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어째 소가 털이 꼬질꼬질하고 눈꼽이 심하게 끼고 먹는 게 신통치 않으면 소 주인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소는 그 집안의 재산 1호였습니다. 소가 건강해야 일을 잘하기 때문에 소를 잘 먹여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소 먹이려고 꼴 한 짐 해오라고 시켰는데 안하고 딴짓 하다가 지게 작대기로 얻어 맞은 사람이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작두로 꼴을 썰다가 손가락 잘린 사람도 많았습니다. 70년대 말까지도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고, 농촌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었습니다.

내가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하던 80년대 중반의 얘기입니다. 그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경운기가 딱 한 대 있었고, 나머지 집들은 다 소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강원도 산간 오지라 논은 없고 밭만 있는데 밭도 네모반듯한 것은 별로 없고 다 누더기 같이 조각조각 나누어진 밭뙈기를 소에 쟁기를 달아 갈았습니다. 집 마당에 나와 있으면 사람들이 소로 밭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워어어! 이리야! 워워!”

그 소리가 얼마나 정답고 훈훈한지 모릅니다. 또 어떤 아저씨들은 정선 아라리 노래자락을 불러 가며 밭을 가는데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신윤복 그림
신윤복 그림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 며는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 삼월이 아니라 며는 두견새는 왜 우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사람들이 소로 밭을 가는 걸 보니 무척 재미있겠다 싶어 나도 몇 번 해보았습니다. 성질이 고약한 소 말고 일 잘하고 말 잘 듣는 순한 소를 택했습니다. 남들이 하는 걸 유심히 보아두었겠다, 미리 배운 지식을 총동원하여 똑같이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더군요. 일단 쟁기 잡는 게 익숙하지 않았고, 고삐를 탁 쳐주면서 쟁기를 돌려 방향전환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그러니 아무리 일 잘하고 순한 소라도 임자를 알아본다는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밭고랑을 고르게 잘 갈아야 하는데 삐뚤삐뚤 엉망입니다. 일해주고도 욕먹습니다. 밭은 소가 가는데, 얼마나 손에 힘을 주었든지 나중에는 손을 쥐지 못할 정도로 아팠습니다.

어느 날 안장순 권사님이라는 분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셨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셔서 헉헉거리며 하시는 말씀이
“전도사님예, 큰일 났어요. 우리 소가 아무래도 죽는가 봐요?”

70이 다 된 할머니가 안절부절하며 마당에 서계셨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며칠 전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소가 새끼 낳느라 힘도 들었을 테고, 또 고마워서 보리밥을 한 가마솥 삶아 주었는데 소가 보리밥을 꾸역꾸역 다 먹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너무 많이 먹었던 모양이지요. 소가 초식동물이기 때문에 꺼칠꺼칠한 섬유질하고 섞어 주어야 되는데 맨 보리밥만 주었으니 속에서 얹힌 모양입니다.

‘소가 체하면 약도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소가 눈을 껌벅이며 꼼짝 안하고 누워있었습니다. 송아지는 어미 소가 젖이 안나오니 계속 울어댑니다. 수의사가 몇 번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외양간에 들어가서 소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습니다. 안수기도를 한 것이죠. 그 소는 그 집안의 전 재산과 같은 일소였습니다. 그때 내가 뭐라고 기도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지만, 여하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같이 따라와서 그걸 구경하던 아내가 내가 소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와서 혼났다고 합니다. ‘소가 죽는냐 사는냐?’ 하는 판에 철없는 아내가 키득키득 웃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우습네요. 다행히 그 다음날 소가 일어났습니다. 안장순 권사님이 또 달려 오셨습니다.
“전도사님예, 이제 우리 소가 살았나 봐요! 일어나서 밥도 먹어요. 전도사님이 기도해 주신 덕분으로 소가 살아난 거래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글쎄요. 신출내기 전도사가 안수기도해서 소가 나았을까요? 그냥 저절로 나은 것은 아닐까요? 아무튼 큰 걱정을 덜게 되어서 좋아했었지요.

기원이 아빠가 모판상자를 나르기 위해 트랙터에 오르고 있다. 가랭이 찢어지겠다.
기원이 아빠가 모판상자를 나르기 위해 트랙터에 오르고 있다. 가랭이 찢어지겠다. ⓒ 박철
<트랙터와 소>는 참으로 묘한 대비를 이룹니다. 일의 효율이야 당연히 트랙터이지만, 고향의 향수와 옛 시절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단연 소입니다.

우리 집 병아리 은빈이가 다섯 살 때 저녁밥을 먹다가 뚱딴지같은 질문을 내게 던졌습니다.

“아빠, 트랙터하고 소가 논 갈고 밭 가는 것 맞지?”
“그래!”
“그럼 트랙터하고 소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
“응, 아직까지 트랙터하고 소하고 사이가 좋아서 한번도 안 싸워 봤어! 그러니 싸울 필요도 없고, 또 누가 이길지 아빠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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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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