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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3년 4월 한기봉 할아버지 댁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을 슬쩍 잡으신다.
2003년 4월 한기봉 할아버지 댁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을 슬쩍 잡으신다. ⓒ 박철
지난주 토요일 결혼을 한 한영훈(29. 기독병원) 정인선(27. 백조유치원) 부부가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할아버지 댁엘 찾아왔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두 사람이 이바지 떡을 한보따리 들고 시할머니와 우리 집엘 왔습니다.

신랑은 체구도 크고 듬직해 보였고, 신부는 유치원 선생님답게 밝고 상냥해 보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5년 전에 만났다고 합니다. 한영훈군이 5년 전, 교회 정화조를 설치하는 봉사를 하러 나갔다 유치원 교사를 하던 정인선양을 만나 한눈에 감전이 되었고, 만난지 한 달 만에 두 사람은 결혼해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난지 두 달 만에 프로포즈를 했답니다.

5년동안 연애를 하면서 두 사람은 부모님한테 손 벌리지 말고 결혼하기 전에 생활기반을 닦자는 합의하에 열심히 벌고 저축을 해서 내 집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결혼 풍속도는 집은 물론이거니와 결혼에 따른 모든 비용까지 부모님께 떠맡겨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데 이 두 사람은 참으로 귀감이 될 만 합니다.

2003년 4월 신랑 아버지 한대현씨와 함께. 좀 웃어요?
2003년 4월 신랑 아버지 한대현씨와 함께. 좀 웃어요? ⓒ 박철
오늘 아침 아내와 나는, 신랑 신부가 묵고 있는 시할아버지(한기봉·84) 시할어머니(강한옥·79) 댁을 방문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며느리가 싹싹하고 마음에 든다며 연신 싱글벙글이시고, 신부는 꽃처럼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시할머니 되시는 강한옥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아, 글쎄 오늘 아침 손주며느리와 손주가 한복을 이쁘게 차려입고는 할아버지 할머니 절 받으세요? 하길래 그래 내가 절을 무슨 절이냐? 그만둬라 그랬더니 그런 게 아니라고 하면서 곱게 절을 하드라구요! 기특하기도 하지!”

나는 이 대목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손주며느리가 시집와서 시할머니 시할아버지에게 절을 올리는 거야 당연한 일일 테지만, 나는 이 두 어르신의 속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강한옥 할머니는 고향이 황해도 신계라는 데서 결혼해서 그곳에서 살다가 6.25전쟁 때 피난을 왔다가 교동 섬에 눌러 앉게 되었습니다. 자기 집도 없이 땅도 없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작은 지석리에서 9번을 이사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베풀기를 잘 하시고 자식들을 모두 신앙으로 키웠습니다.

2003년 4월 신부 정인선 양의 애교가 살살 녹는다.
2003년 4월 신부 정인선 양의 애교가 살살 녹는다. ⓒ 박철
“목사님, 내는 정말이지 나이 팔십 먹도록 자식들한테 물려준 게 뭐 있겠시꺄? 아무 것도 없시다. 그저 새벽마다 나가 기도했지요. 새벽 예배당에 가면 깜깜한데서 남포불 12개를 성냥불로 내가 다 켯시다. 그리고 날이 환하도록 기도를 하고 그랬는데 자손들이 다 복을 받아서 그전에는 우리가 젤로 못살았지만, 시방은 다 자기 집을 가지고 잘 사는 걸 보면 내가 복을 정말 많이 받았시다.”

신랑신부는 할머니의 구수한 말씀에 매료되어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도 편하고 좋습니다. 내가 할머니께 손주 내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없냐고 묻자 대뜸 그러십니다.

2003년 4월 신부가 할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표정이 진지하다.
2003년 4월 신부가 할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표정이 진지하다. ⓒ 박철
“당부할 게 뭐 특별한 게 있겠시꺄? 그저 하나님 잘 믿고 부모공경 잘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이웃들에게 없는 거 나눠 먹을 줄 알고 살면 그게 젤로 사람답게 사는 모범 아니겠시까?”

나는 이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지난 5년동안 한푼이라도 아껴서 내 집을 장만하고 IMF사태로 실직해서 집에 내려와 계신 아버지께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자기들끼리 벌어 결혼까지 올린, 이 두 사람이 참으로 대견하고 장해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줄을 하나 더 보탠다면, 나는 이 두 사람의 앞날을 늘 주목하며 지켜볼 것입니다. 이들이 지난 5년 동안 정성껏 쌓아올린 사랑의 공든 탑이 더 견고해 지기를 바랍니다.

4월 막바지, 이제 막 올라온 순무 싹이 파랗게 올라왔습니다. 모처럼 하늘도 말갛고, 한참 동안 손을 흔드는 신랑 신부도 참 예쁩니다. 이제 막 봄이 지나가는 듯 합니다.

방석 이야기

나의 진짜 주인은 누구신가요? 나는 다음달에 결혼을 앞둔 처녀가 나를 예쁜 천에 수를 놓아 만들었지요. 나는 시집가는 처녀와 함께 살게 되었기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새로운 나의 보금자리인 신혼집의 모습을 상상하며 신랑신부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나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제일 먼저 간 곳은 신부의 시아버지와 시할머니가 살고 계신 교동이라는 섬이었습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섬이라니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신부의 시할머니는 나를 처음 보더니 활짝 웃으시면서

“참 예쁘게도 지었구나? 우리 손주며느리 만큼이나 예쁘구나!”

하면서 나를 기쁘게 맞아 주었습니다.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무슨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장롱 안에 넣었습니다. 다행히 춥지는 않았는데 깜깜하기만 하고 바깥 구경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햇볕이라곤 한줌도 안 들어오니 날짜 가는 걸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나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름이 박모라고 하더라? 사람들이 그 분을 목사님이라고 부르대요. 키도 크고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속마음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박 목사가 할머니 집에 왔는데 할머니가

“목사님 선물 하나 드릴게요!”

하더니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나를 장롱에서 꺼내 냉큼 건내주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세 번째 주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간 곳은 예배당이었습니다. 박 목사는 나를 예배당 의자에 놓았습니다. 바로 옆에 예쁘게 생긴 작은 창문이 있는데 창문으로 맑은 공기와 햇볕이 들어와서 참 좋습니다.

또 심심하지 않게 새들의 노래 소리도 들을 수 있고요. 창문으로 바깥 풍경을 볼 수도 있고 이따금 사람 구경도 할 수 있고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기가 진짜 내 집이려니 세 번째 주인이 진짜 내 주인이려니 하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가만히 계셔보세요. 사람들의 찬송소리가 들리는 군요?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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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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