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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씨의 어머니 김복순 여사(85세)
이석기씨의 어머니 김복순 여사(85세) ⓒ 박정훈
비온 후 화창하게 개인 하늘, 따뜻한 봄 날씨도 서울구치소 정문을 통과하면 춥고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4월 26일 오후 3시 40분 서울구치소 면회실 4번. 훤칠한 키에 해맑게 웃는 서울구치소 8번 이석기씨가 들어왔다. 이석기씨는 작년 6월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2심에서 2년 6월로 형이 확정된 기결수다.

"1심에서 무죄였던 부분이 2심에서 유죄로 된 것을 비롯하여 대법원에서 다퉈볼 부분이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쪽에서 기결수는 확실히 사면할 의지가 있다고 해서 상고를 취하했지요. 끝까지 법정투쟁을 하려고 했던 제 입장에서는 아주 어려운 결정이었지요. 자궁암말기인 것도 모르시면서 저에게 따뜻한 밥 한 번 먹이고 싶다는 어머니 소원을 풀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독재정권 시절에도 대통령 취임 특별 사면 때는 미결수까지 공소취하를 해서 내보냈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은 당연히 모든 양심수를 석방할 것으로 보았지요.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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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세계 최장기수 하영옥씨를 비롯하여 기결 양심수 전원이 석방된다고 알려진 가운데 단 한 사람의 기결수 이석기씨가 제외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이석기씨 가족과 민가협, 후배들은 23일부터 법무부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과천종합청사에서 농성을 했고, 26일 오후에는 청와대 앞 길에서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걱정이에요. 벌써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드셨어요. 노인네들이 곡기를 끊으면 세상과 이별할 때가 된 거라는데 혹시 석기 얼굴 한 번 만져보지 못하고 가시는 것 아닌지 겁이 납니다."

병원에 실려간 어머니 병간호도 뒤로 하고 집회에 참석한 이석기씨 누나 이경진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 박정훈
이석기씨 어머니 김복순 여사는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작은 체구에 이석기씨 구속 이후 자궁경부암 3기로 수술을 받고 건강이 급격히 약화되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난 겨울 내내 감옥에 간 아들을 생각하며 방 안에 불도 넣지 않고 잠을 청했고, 85세의 노구를 이끌고 서울구치소 면회실을 수도 없이 다녔다. 이석기씨는 어머니가 면회오면 꼭 큰 절을 한다고 한다.

누나 이경진씨의 말에 따르면 막내로 자란 이석기씨는 어렸을 때부터 정이 많고 효심이 아주 강해서 결혼 후에도 어머니를 오랜 기간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김복순 여사와 함께 이석기씨 면회를 했던 하영옥씨의 부인 김소중씨는 어머니와 아들의 사이가 저렇게 각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자간의 사랑은 극진하다고 한다.

집회장에서도 여기 저기 연락을 하느라 분주한 한용진씨(이석기씨의 대학 동아리 후배)는 이석기씨가 상고를 포기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석기형은 아주 대범한 성격이에요. 영하 20도 가까운 추위에도 감옥 생활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딱 두 번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봤어요. 어머니가 암 말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하고, 이번 사면에서 제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죠. 어머니 가시는 마지막 길조차 지키지 못할까봐 안타까와했습니다. 석기형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기대를 했는데 실망스럽습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소위 개혁인사 중에도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죄인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형량의 1/2이 안 되었다느니, 어떤 사건 관련자들은 사면하기 곤란하다느니 하는 수구세력들의 발목잡기에 당당히 나가지 못하는 겁니다."

이석기씨 변호를 맡았던 민변 소속 심재환 변호사도 이번에 당연히 이석기씨가 석방될 줄 알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국가보안법은 유엔인권위에서도 개정을 권고받은 악법 중의 악법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자는 범죄인이 아니라 정치적 탄압을 받은 양심수이다.

국가보안법에 대해 선별사면을 부르짖는 것은 끝까지 개혁적 법무부장관에 맞서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공안검찰이 노무현 정부에 흠집을 내고자 발버둥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무릇 법과 정치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한다. 대통령 취임식 이전에 기결수가 되었는가 안 되었는가 하는 사소한 문제로 암말기 어머니와 막내 아들 사이에 얼마 남지 않은 사랑과 효심의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참여정부 첫 번째 사면이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생색내기식이었다는 비판을 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수구세력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영구 변호사를 국정원장으로, 정연주씨를 KBS 사장으로 임명한 그 기개를 왜 양심수 석방에서는 지키지 못하는가. 노무현 정권의 실력자들은 기득권 세력에게 진 빚이 없다고 국민 앞에 공언하지 않았던가.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일반사면도 아니고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특별사면조차 수구공안세력의 장난에 휘둘린다면 향후 노무현 정권의 앞날이 어떠할까. 특별사면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바보 노무현'의 마지막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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