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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막식전 개선문 앞.
ⓒ 임미정

4월 10일 목요일

오늘은 축전 개막식 날이다. 대부분의 예술단이 도착한 듯 보인다. 신문에도 속속 어느 예술단이 도착했다고 보도되는데, 나라명의 표기 방식이 다르다.

예를 들자면, 러시아-로씨야, 불가리아-벌가리아, 벨기에-벨지끄, 체코-체스꼬, 폴란드-뽈스까, 베트남-웰남, 독일-도이췰란드, 캄보디아-캄보쟈, 스웨덴-스웨리 등으로 표기된다. 그 나라에서 발음되는대로 써주는 것 같다.

오후 3시부터 개막식 행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각 예술단은 내일 첫 공연을 앞두고 오늘 아침 마지막 리허설을 하게 됐다.

아침에 우리와 같은 조에 있는 인도네시아 민속 무용단이 무대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의상은 화려하다. 마치 그네들 나라의 꽃이나 열매, 기후처럼 말이다. 옷이나 관의 금박장식을 자세히 보니 금속이 아니라 다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요란한 장식을 몸에 걸쳐도 무게가 그리 나가지 않나 보다.

나는 인도네시아팀이 무대 리허설을 하고 있는 시간에 백 스테이지 구석으로 밀어 놓은 피아노에서 살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 방 피아노는 다른 팀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팀의 북소리 때문에 내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지만 내일 공연까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근육을 풀어야 할 것 같아 그렇게라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팀의 단장이 와서 신경질을 낸다. 왜 그렇게 시끄럽게 하느냐고. 나도 예민해 있던 터라 갑자기 짜증이 났다. 그 사람 얼굴도 경직되어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연습시간과 장소가 부족한 것이다. 일단 내 연습을 멈추었다.

▲ 개막식 퍼레이드.
ⓒ 임미정

I’m from South Korea, not North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와 인도네시아 단장과의 일을 모르는 그 쪽 단원 하나가 나더러 Korean이냐고 묻는다. 미국에서 온 코리안이라고 했더니 니네 나라 와서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좋다고 하였지만 이럴때는 아직도 놀라서 ‘no, no, I’m from South Korea, not North( 아니, 아니, 난 북이 아니라 남한에서 왔어요)’라고 하려는 무의식적인 충동이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은 우리나라가 분단된 국가라는 것은 알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서 심리적 분단의 깊이는 헤아리지 못한다….

이 사람은 자기는 따뜻한 나라에서 왔기에 너무 춥다고 하면서 우리 인사말등을 물었다. 이 사람과의 짧은 대화로 인해서, 갑자기 아까 단장에게 신경질적인 표정을 보인 것에 대해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들로서는 너희 나라에 와서 공연을 잘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이렇게 불친절한가라는 인상을 가졌을 것 같아서였다.

▲ 버스로 이동중인 인도네시아 팀.
ⓒ 임미정

흠…. 할 수 없이 차 뒤쪽에 앉아있던 단장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연습을 방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 워낙 북소리가 커서 내 소리가 안 들릴 줄 알았다는 것, 우리나라(?)이긴 하지만 나도 여행으로 왔기 때문에 연습실이 없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의 풀어질 것 같지 않았던 굳은 얼굴이 금방 부드러워졌다. 괜찮다고 하면서 자기도 미안하단다. 단장으로서 나와 같은 공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랬다고….

단원하나가 신기하게 생긴 빵과 과자를 나누어준다. 고맙다고 하며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고 물었더니 자기 어머니가 재 평양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대사관은 국가 대표로 온 그들을 각별히 환영하고 보살피느라 매일 인도네시안 간식을 보내주고 있단다.

재외동포 예술인을 제외한 다른나라의 예술단은 자기나라의 문화를 전하러 온 사절이기에 이렇게 자국의 대사관으로부터 보호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인도네시아팀은 그 후로 공연시에는 대사의 가족 전체가 와서 그들을 축하해 주곤 했다.

조총련 교포 아가씨에 '추파' 보내는 평양 남학생들

오후 3시. 모든 예술단은(이번 해는 약 650명) 개선문 앞에 자기나라의 민속 의상을 입고 집합했다. 거기서부터 2Km를 행진해 개막식이 열리는 4.25문화회관까지 가게 된다. 연도변엔 우리가 가끔 TV에서 보듯이 정말 수도 헤아릴 수 없는 평양시민들이 나와 있었다.

그분들은 정말 열심히,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셨다. 나는 물론 그분들이 100% 자발적으로 나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당연히 동원지시를 받았을 것이지만, 어쩌면 동원 명령 없이도, 전세계에서 모인 화려한 옷을 입은 예술단을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숫자의 사람이 모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진하는 우리 못지 않게 연도변의 사람들은 단조로운 일상사에서 볼 수 없는 축제에 흥분하는 듯이 보였고, 어린 아이들에게 각 예술단의 의상들을 설명하는 부모들, 예쁜 조총련 교포아가씨에게 추파(?)를 보내고 있는 젊은 남학생들의 표정은, 비록 동원되었다 했을지라도 능동적으로 이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개막식장엔 자주, 평화, 친선이라는 축전구호가 걸려 있고 여섯명의 각국 의상을 입은 대표들이 커다란 축전 휘장을 들고 나와 무대 위에 게양한다. 축사 등으로 이루어진 개막식이 끝나고 개막 공연이 있었는데 이것은 국내 예술단이 손님을 환영하는 의미로 벌이는 공연이었다.

그동안의 남북 합동 공연 때나 북의 서울 방문 공연 때 보여주었던 것처럼, 화려한 북의 공연 문화는 앞으로 우리가 통일이 되어서도 서로 독립적으로 지켜주고 발전 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쪽과는 사뭇 다르게 발달된 독특한 양식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 무용이나 민속 음악에 있어서 현대적인 과감한 기법 전환 등이 이루어졌고, 몸의 움직임이나 음악적 선율이 정적인 남쪽에 비해 역동적이다. 북에서는 1970년대에 민속악기의 대대적인 개량화가 이루어져 해금만 해도 소해금, 중해금, 대해금 등으로 오케스트라에서 낼 수 있는 현악기 소리를 모두 대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격적인 비교와 성격에 대해서는 후에 기회가 닿으면 소개하도록 하겠다.

▲ 개막축하공연에서 옥류금을 연주하는 김길화.
ⓒ 임미정

김길화 선생의 옥류금 '명연주'

여러가지의 좋은 공연들 가운데서, 그날 공연의 백미는 인민예술가 김길화 선생의 옥류금 연주였다. 옥류금은 역시 양금을 개량한 것으로서 음폭과 표현능력이 하프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가야금이나 피아노에서와 같이 단음에서도 표현의 밀도가 높은 소리를 낼 수 있다.

김길화 선생이 연주한 곡은 북에서 가장 유명한 곡중의 하나인 ‘어디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인데, 그분의 음악적 선율 처리 능력은, 소리 에너지가 인간의 귀에 전달할 수 있는 많은 감미로운 표현기법에 달관했음을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이해해야 할 것은 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곡들은 대부분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과 관계된 제목이 붙어 있고, 또한 그들에게 헌정된 곡이다. 그러나 가사가 없는 기악곡들의 경우, 작품에 녹아 있는 감성적 이미지는 거부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우리 정서를 나타내는데 있어 훌륭하다.

그 곡의 제목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나 이념적 내용 때문에 연주할 수 없었던 점은 연주자인 나로서는 참 유감스러웠다. 이 곡은 약간 신파적(?) 멜로디를 가지고 있으나, 북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인만큼 언젠가 제목이 문제가 안 된다면 내 피아노 독주회에서도 소개하고 싶다.

그날 밤, 그 분의 연주는 세계 각국의 예술단원들로부터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는데, 섬세하게 표현된 의미와 그것이 만들어지기 위해 흘린 땀과 고뇌를, 나라와 문화는 다르지만 같은 길을 가는 예술인들로서 가장 잘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 임미정과 인도네시아단원들.
ⓒ 임미정
▲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인도네시아팀.
ⓒ 임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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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정 기자는 피아니스트로서 현재 울산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이다. 귀국전 14년간 뉴욕에 거주, 평양에서의 연주 및 뉴욕에서의 북한 음악 연주등을 통해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다. 2002년 그의 피아노 독주회시 아리랑과 내고향의 정든 집 등 북한의 피아노곡을 국내 초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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