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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0일부터 일주일동안 평양에서는 국제친선음악제가 개최됐다. 피아니스트이며 울산대 음대 교수인 임미정씨(홈페이지 www.mijungim.com)는 재미예술단의 일원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가 지난 19일 귀국했다.

임 교수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연주활동을 하며 세번의 방북연주 등을 통해 남북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고, 작년 그의 순회독주회시 북한의 피아노곡을 우리나라에서 초연했다.

이번 행사에서 방북했던 임 교수가 <오마이뉴스>에 '평양 방문기'를 보내왔다. 이번이 그 두 번째 기사이다....<편집자주>


▲ 평양 순안공항.
ⓒ 임미정

4월 8일 아침
오늘 우리는 오후 1시 비행기로 평양에 갈 것이다. 지난 2주 동안 방북 준비 및 학교강의 등으로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했는데, 1시간의 시차도 한 몫하여 모처럼 느긋하게 아침 나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짐을 싸고 나니 벌써 피곤해진다. 나는 이번에 큰 가방 2개를 가져 왔는데, 연주 드레스 3벌과 한복, 거기에 각각 맞는 구두 등, 항상 연미복 하나면 만사 해결되는 남자들에 비해 여자 연주자는 얼마나 많은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지 모른다.

호텔에서 다같이 아침식사를 하였다. LA에서 오신 두영균 선생님은 이번에 내가 처음으로 만나는 성악가이시다. 테너이시고 LA에서 20년을 사셨다고 한다. 지휘자인 이준무 선생님은 재미예술단의 단장이시고, 그동안 미국에서 많은 북한 곡을 연주하셨다.

90년부터 이 축전에 참가하셨다. 첼로의 이동우 선생님은 필자와 함께 울산대학교에 재직하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셔서 영어가 훨씬 편한 분이다. 지난해 작고하신 우리나라의 원로 음악인 전봉초 선생님의 사위이다.

그리고 어제 밤 우리를 안내해준 Mr.원은 조상이 청나라 때 중국에 이주한 심양 출신의 교포이다. 현재는 북경에서 여행사를 운영한다. Mr.원을 제외한 우리 네명이 예술단으로, 그리고 LA에서 오신 옥순경 할머님과 뉴욕에서 오신 전군준 박사님이 후원단으로 같이 여행하신다.

오전 10시쯤 북경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단체로 입국하는 인도네시아, 몽골 예술단원들과 함께 체크인을 하게 되었는데, 그분들의 악기 및 의상들 때문에 무척 혼잡하였다. 또 내 가방에서 무엇인가 X-ray에 걸린다고 가방을 다 풀어보여야 했다. 헤어스프레이가 범인이었다.

이렇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내리고 하는 일은 연주여행을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일 중의 하나이다. 팔의 근육이 피곤해지고 예민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연주는 개막식 이후가 될 테니까 적어도 이틀은 쉴 수 있겠지….

고려항공에 탑승했는데 남자 승무원이 같이 가신 후원단의 어르신들을 부른다. 앞의 비즈니스석 두 자리가 비었으니 편히 그쪽에 앉으시란다. 전박사님과 옥여사님이 그쪽에 자리잡으셨다.

지금 우리가 탄 비행기는 JS2151 고려항공이다. 예전엔 조선 민항이라 불렀다고 한다. 비행기안의 여승무원들은 동그란 얼굴의 미인들이다. 차가운 세련미가 아니라 느낌이 따뜻한…. 살짝 사진을 찍었는데 더 이상은 하지 말라고 웃으면서 주의를 준다. 신문과 잡지를 나누어주고…. 로동신문이다.

대충 훑어보니 항상 나오는 김정일 위원장의 동정 이외에 전쟁 이야기, 유엔 이야기, 전염병에 대한 뉴스, 발암 물질을 줄이는 튀기법(튀김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또 축전 준비가 막바지에 이른다는 기사도 있다. 각국 대표단이 도착하는 대로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 로동신문에 나올 것이다.

기내에서는 사탕도 나누어 준다. 나는 이 사탕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먹던 사탕맛이 나기 때문이다. 매번 갈 때 마다 많이 사와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점심은 기내식으로 하였다. 딸기 사이다, 룡성 맥주 등이 대접되었고 주요리는 치킨 카레밥이다. 또 샐러드와 계란부침, 소시지도 있고 빵과 케이크도 있다. 한가지 깨달은 것은 북한의 음식은 먹어보아야 안다는 것이다. 색깔이 화려하지 않아 언뜻 보기엔 맛이 없을 것 같은데 먹어보면 꽤나 맛스럽다. 특히 고려 호텔의 음식은 두고두고 기억이 나는 음식들이었는데 벌써부터 기대된다.

▲ 호텔 건너편 식당가 풍경.
ⓒ 임미정

순안공항에 도착하여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고 기념 사진도 찍었다. 밴드도 나와 우리가 환영나온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지나갈 때 연주를 해주었다. 항상 이렇게 도열해 있는 분들 앞과 보도진을 지날 땐 쑥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공항에서 30분 정도 밴을 타고 시내로 들어 와 고려호텔에 왔다. 대개 예술단은 고려, 양각도, 보통강 호텔 등 3개의 호텔에 지정되는데 우리는 시내 한가운데 있는 고려호텔에 묵게 되었다. 제일 먼저 지어져 다른 두 호텔에 비해 산뜻함이 덜 하지만 위치 때문에 편리한 면이 있다.

내 방은 1동 21층 2호. 이번엔 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 동쪽을 향해 있고 시내도 좀 보인다. 고려 호텔은 45층짜리 쌍둥이 빌딩이다. 전면에서 보아 오른쪽이 1동이고 왼쪽이 2동이다.

▲ 고려호텔의 저녁 부페.
ⓒ 임미정
일단 짐을 푼 후 호텔내에 있는 2층 책 방에서 화보집, 악보 등을 샀다. 잠깐 악보에 대해 언급하자면 북의 음악은 악보를 구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내가 미리 준비해가는 북의 음악은 주로 축전위원회에서 미국에 팩스로 전달하고, 그것을 다시 내게 팩스하기 때문에 악보 상태가 깨끗치 않아 곡을 읽는게 어려울 뿐더러 그냥 주어지는대로 받기 때문에 곡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작년 나의 순회 독주회때 연주했던 ‘내고향의 정든 집’이나 ‘아리랑’의 악보는 그나마 깨끗한 편이어서 심지어 내 악보의 복사본조차도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내가 이번에 연주하려 했던 ‘백두산의 눈보라’ 같은 곡들은 나에게까지 도착했을 땐 읽을 수가 없는 상태여서 포기하고 말았다(그 곡은 지난 추석 남북 합동 공연 때 북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했던 곡이다. 당시 KBS에서 방송되었다).

물론 이곳에서 직접 원본을 구하면 좋겠는데 피아노 곡으로 출판된 것은 초판 이후 재판이 없어 그 악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지 않는 이상 원본을 가질 수가 없는 것 같다. 오늘 산 조선음악 대 전집은 피아노와 거의 음역이 비슷한 옥류금을 위한 악보인데 어쩌면 쉽게 편곡할 수 있을지 몰라 구입해 본 것이다. 아무튼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피아노 악보를 구하리라 다짐해보지만 잘 모르겠다….

7시 저녁식사

부페식으로 차려진 고려호텔의 음식은 정말 맛있다. 짜지도 않고, 마치 어렸을 때 나물의 독특한 맛을 처음 맛보았을 때 같은 향취를 가지고 있다. 재료가 자연산이라 그런가 보다. 겉보기엔 색깔이 칙칙해서 맛이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고사리, 도라지, 감자채, 김치 등 평범한 음식이 정말 잘 요리되었다.

부모님이 이북분이라는 이동우 선생님은 바로 이것이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이라고 하신다. 모두들 배가 고파 여러 번 가져다 먹었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2주동안 몸무게를 늘려 갈 수가 있다.

▲ 평양 고려호텔에서 필자가 고른 첫 식단.
ⓒ 임미정
작년인가 가수 김연자씨가 공연중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자기가 원래 스타일이 좋은데 여기 와서 음식 때문에 허리가 굵어져 드레스가 잘 안 맞게 되었다고 말해 청중들이 한바탕 웃었단다.

아무튼, 반찬 수는 10개정도, 국과 상치(여기선 부루라고 한다)는 항상 있고, 모든 음식이 조미료 맛도 없이 깔끔한 것이 일품이어서 이렇게 음식 칭찬을 다시 늘어놓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무척 피곤했다. 하루종일 공항에서 정장차림으로 서서 돌아다녔기에(입국시의 행사 때문에 미리 그렇게 입고 온다) 다들 지쳐 있었다. 그런데도 그냥 자기는 뭐해서 나는 다른 두분에게는 벌써 여러 번 참석했던 고참(?)이므로 호텔내의 여러 곳을 자기 전까지 구경시켜 드렸다. 아직 모든 대표단이 다 도착하지는 않았는지 호텔은 비교적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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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정 기자는 피아니스트로서 현재 울산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이다. 귀국전 14년간 뉴욕에 거주, 평양에서의 연주 및 뉴욕에서의 북한 음악 연주등을 통해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다. 2002년 그의 피아노 독주회시 아리랑과 내고향의 정든 집 등 북한의 피아노곡을 국내 초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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