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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벤치는 쓸슬하다
산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벤치는 쓸슬하다 ⓒ 박철
교동 섬 12교회 목사들이 부활절을 잘 지내고 그 다음날 1박2일로 봄나들이 길에 나섰습니다. 하루 전만 해도 비가 질금질금 내렸는데 비도 그치고 하늘도 말끔하고 화창했습니다.

오랜만에 외출이라 조금 설레기도 하고 모두 말이 많아졌습니다. 그중 세 사람이 조금 나이가 많고 나머지는 거의 비슷하니 목사들끼리 모두 친구 같은 사이입니다.

봄나들이 일정은 일단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 후 마니산 등산을 하고 내려와 어디 적당한데 가서 점심밥을 먹고, 오후에는 목회자간에 우의를 다지는 족구를 하고, 목욕탕에 가서 단체목욕을 하고 하룻밤 푹 쉬다가 그 다음날 돌아오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목사 일행은 마니산 입구에 도착해서 단군로로 우회하여 능선을 타고 정상을 향해 올랐습니다. 아직 4월인데 산야는 이미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산골짜기마다 왕성한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무마다 물이 오르고 연두색의 푸른 이파리가 햇빛에 반사되어 싱그러움을 더해주고 탁 트인 시야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하잘 데 없는 것인가를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마니산 정상 바로 밑. 뒤로 첨성단이 보인다
마니산 정상 바로 밑. 뒤로 첨성단이 보인다 ⓒ 박철
산에서 머무른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모두 배가 고파 아우성이었습니다. 일행 중 누가 보리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보리밥을 잘 하는 집을 찾아가 각종 야채와 산나물에 비벼 보리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점심밥을 먹고 나서 이번에는 강화에 있는 화이트하우스 기도원에 가서 족구를 했습니다. 교동 목회자들은 이따금 모여 족구를 하는데 실력이 엇비슷해서 우열을 가리기가 힘이 듭니다.

날씨는 초여름 날씨였습니다. 뜨거운 뙤약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족구를 하는데 오랜만에 등산을 해서 종아리 근육이 뭉쳐져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목사들도 족구를 하다보면 평소 성격이 다 드러납니다. 볼이 금에 닿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할 경우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일단은 서로 자기편이 유리한 쪽으로 우깁니다. 그러다 해결이 안 되면 ‘노플레이’가 됩니다. 그렇게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면 나중에는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 운동을 통해 일체감을 갖습니다.

마니산 중턱 마루 위에서. 서해안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마니산 중턱 마루 위에서. 서해안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 박철
족구경기를 마치고 김포에 있는 대형 목욕탕까지 차를 몰고 가서 단체 목욕을 했습니다. 목사들도 발가벗겨 놓으면 다 거기가 거깁니다. 뜨거운 욕조에 들어가서 거북이처럼 목만 쏙 내밀고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면 몸만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따뜻해집니다.

언젠가 강화 터미널 근처에 있는 목욕탕으로 목욕을 간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조용하던 목욕탕이 요란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목욕탕에 스님들이 열대여섯 분이 들어왔는데 서로 짓궂게 장난을 하고 농을 하고 떠드는데 하나도 성가시지 않고 재미있었습니다. 스님들도 발가벗으니 여느 사람이나 똑 같았습니다. 스님 중에는 연세가 든 스님도 있었고, 이제 막 입문한 듯한 젊은 스님도 있었는데 서로 번갈아가며 등을 밀어주는 모습을 보고 감동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자기가 교동에서 족구를 제일로 잘 하는줄 아는 현목사
자기가 교동에서 족구를 제일로 잘 하는줄 아는 현목사 ⓒ 박철
열두 명의 목회자가 목욕탕 옥돌바닥에서 목침을 베고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잤습니다. 하루 전 부활절 행사를 치르느라 피곤도 했을 터이고, 오랜만에 등산에다 장시간 족구까지 했으니 눕자마자 잠이 쏟아졌습니다.

저녁밥은 김포 어느 식당에 가서 얼큰한 동태내장탕을 먹었습니다. 허기졌다가 먹으니 단숨에 먹어 치웠습니다. 모두 식당 문을 나오면서 잘 먹었다고 한 마디씩 합니다. 잠은 김포 어느 모처(?) 여관에서 잤습니다. 밤늦게까지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친밀감을 갖게 하는 정다운 대화가 계속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서로 코를 크게 골아서 잠을 못 잤다고 우기는데, 자기가 코 골은 생각은 안하고 남보고 코를 골았다고 하니 우기는 것도 일반 사람과 다름없습니다.

맨날 점심내기 족구하자고 선동하는 이목사
맨날 점심내기 족구하자고 선동하는 이목사 ⓒ 박철
목사도 똑 같은 인간입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데가 많습니다. 다만 이 가뭇한 시대 하느님이 부르셔서 당신의 종으로 삼아주셨으니 젊음도 마다하고 모든 부귀영화도 생각하지 않고 그 부름의 뜻을 따라 정진하며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날 12명의 목회자 중, 한 사람이 빠졌는데 올해 목사안수를 받은 김모 목사입니다. 교동에서는 유일한 총각 목사인데, 어느 목사님의 중매로 선을 보러 서울에 가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날, 다시 배를 타고 교동을 들어오는데 어제 그렇게 좋았던 날씨가 무슨 조화인지 한 방울 두 방울 비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애들이 보고 싶고 아내가 보고 싶습니다. 목사들의 즐거운 하루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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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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