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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흘동안 내리던 비는 그쳤고
높아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습니다.
꿈같은 만남들이 꼭 어울릴 이런 날에
저는 이별입니다.

조양호씨를 태운 이삿짐센타 트럭을
막 보내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조양호씨랑 꼬옥 껴안았던 포옹도
함께 싣던 이삿짐도
널려있던 쓰레기마저도
이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두 다 전남 곡성으로 가버렸습니다.

이제야 갑자기 이별이구나 싶습니다.

조양호.
제가 쓰는 귀농일기를 보고 서울에서 식솔들을 몽땅 데리고
우리 마을로 덜렁 이사 온 30대 초반의 젊은 친구입니다.

벌써 2년 전의 일입니다.
내가 일궈 먹던 밭을 100여 평 넘겨줬는데
작년에는 고구마를 심어서 제법 잘 키웠습니다.
오늘 이사짐 속에 제일 귀한 짐은 지난달에 두 부부가 직접 담은
간장입니다.
아직 제대로 뜨지도 않은 된장독 뚜껑을 열고는
나더러 찍어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귀농학교를 나온 그의 아내는 스스로
촌아줌마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별입니다.
이별을 무마 할 여러 다짐이 오고 갔지만
역시 이별입니다.
만남은 새 봄 새싹처럼 한순간에 옵디다만
이별은 오래갈려나 봅니다.

첫째아이 유나 손목을 잡고 전주역에 첫 발을 디디면서 내 카메라에
잡혔던 그네 식구들은
둘째 민우를 이곳에서 낳았습니다.
유나네 덕분에 십여 년 만에 볼 수 있었던 옛 인연들도 다시
멀어져 갈 것입니다.

조양호씨가 다리를 놓아 오마이뉴스 연재를 시작했고
또 덕분에 역사넷 신진수 사장을 만나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는 내 글을 엮어
출판하기로도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나는 한가지도 남겨 준게 없는 것 같습니다.

짐을 싸고 있는데
아랫집 모정할머니가 올라왔습니다.
동네에서 좀 실속 밝으신 할머니로 통하는 분입니다.
손을 잡으며 섭섭해 하십니다.
이사 들고나는 걸 많이도 보아왔지만
이렇게 섭섭한 건 첨이라고 했습니다.

모정 할아버지가 더 섭섭해 한다고 했습니다.
콩이니 팥이니 잡곡들도 갖다 줍니다.
나보다도 더 섭섭해하는 것 같아
빈 손으로 와 짐이나 들어 옮기는 내가
괜히 조양호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이때 전화가 왔습니다.
집 주인에게서 온 전화였습니다.
조양호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보였습니다.
주인이 안 들어오겠다고 살려면 더 살라는 말이었나 봅니다.
우리의 난감함은 다른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 아저씨가 이제 다 포기했구나'

조양호와 나는 눈짓으로만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암에 걸려서 도시생활 접고 시골집으로 들어오시겠다는 게
꼭 한달 반 전이었습니다.

섭섭함이란 게 더디 오는 사람도 있나 봅니다.

문득 집 앞을 내다보니
유나 울음소리 앞세우고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젊은 새댁도.
형님 자전거 좀 요. 하는 날랜 발걸음의 조양호도
저 길목에서 다시는 못 보게 된 거로구나 싶어집니다.

이사 간다는 얘기를 달포 전 처음 들었을 때는
나 하나 보고 여기까지 내려 온 사람들인데
사는 동안 좀 더 살갑게 지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고 미안했습니다.
예의나 의무감처럼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 떠나고 난 마당에
이제 와서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주 일요일.
유나네 집에서 소주잔 나누면서 송별식으로 마주앉은 자리에서
들었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는 이제 몇 번이나 더 이사 할 기회가 남아 있을까?
떠나는 사람 바라보며
저 혼자는 늙어감에 대한 내 한탄을 슬그머니 했었습니다.

그의 고향마을 곡성.
이제와서 저는
곡성 하늘이 저쯤 되리라고 가늠해 봅니다.
말간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이별.
내 관념이 지어내는 허상인지도 모릅니다.
나보다도 더 건장하시던 주인아저씨의 모습이 허상이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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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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