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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들만 죽이는 줄 알지만 제초제는 땅을 죽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쪽집게 정밀폭격만 한다는 미국의 첨단 무기가 민간인을 대량 살상하는것과 같다.
잡초들만 죽이는 줄 알지만 제초제는 땅을 죽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쪽집게 정밀폭격만 한다는 미국의 첨단 무기가 민간인을 대량 살상하는것과 같다. ⓒ 전희식
그렇다. 화학농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학농이라는 말 대신에 관행농이라고 한다. 유기농 진영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관행농이라는 말을 쓰는데 지금의 화학농업이 본격적으로 이 땅에 자리 잡은 지는 고작 30여년 밖에 안 되니 그걸 관행이라고 말하는 건 1만년 농업역사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화학농에 웃기는 용어들이 참 많다. 독한 제초제를 치면서 '풀 약' 준다고 한다. 약이라고 하니 풀에 유익한 것처럼 들린다. 나는 일부러 '풀 독약'이라고 부르거나 제초제 또는 고엽제라고 말한다. 그러면 제초제 치던 할아버지들이 멋쩍어 하신다. 농사 처음 시작 할 때 고추 소독한다는 말을 듣고는 재차 되물어야 했었다. 그 속내를 알고는 이건 왜곡이 심해도 보통이 아니라고 혀를 찼다. 관행, 약, 소독 이런 말들 속에는 독약농사를 위장하는 계획적인 음모가 있지 않나 싶을 정도다. 논밭에 비닐을 사용하면서 언젠가부터 필름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런 용어를 농협이나 화학농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생태농업을 지지하는 지식인들도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한 적이 있다. 진보학자 입네 하면서 '천민자본주의'운운 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도대체 우리 역사상 천민이 뭘 어쨌다는 건가 싶어서 항변을 한 적이 있다. '타락자본주의' 또는 '퇴폐자본주의'라는 말까지 제시했었지만 안 고쳐지고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알게 모르게 고착되어 사용하는 웃기는 용어들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기에 원래 이야기로 돌아간다.

작년 추수하고 남겨진 콩대가 깔린 감자밭에 풀이 감자보다 먼저 자랐다. 멀리서 보면 아무도 감자가 자라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한 달만 있으면 감자꽃이 필 정도로 쑥쑥 자란다.
작년 추수하고 남겨진 콩대가 깔린 감자밭에 풀이 감자보다 먼저 자랐다. 멀리서 보면 아무도 감자가 자라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한 달만 있으면 감자꽃이 필 정도로 쑥쑥 자란다. ⓒ 전희식
우리 동네 들판에 요즘 푸른색이 없어져 버렸다. 논두렁이나 밭 두렁도 영락없이 늦가을 풍경이다. 누렇게 풀들이 말라비틀어져 죽고 있다. 제초제가 마구 뿌려져서 그렇다. 동네가 다 그런 게 아니고 사람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 내는 논밭만 그러니 기가 찰 노릇이다. 논밭 근처에 얼씬만 해도 잡초들은 요절이 나고 있다. 인삼 키우는 걸 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인삼농사를 지켜 본 사람이라면 몸을 보 한답시고 인삼을 사 먹는 일은 없을 것이다. 5-6년을 농약에 담궈 둔다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인삼농사 한 밭은 토양이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 다른 농사보다 몇 배나 더 독한 농약을 몇 배나 더 친다. 땅에 사는 모든 생물을 다 죽여야 인삼농사가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지렁이나 땅개가 있으면 두더지가 있고, 들쥐들이 두더지 굴 따라 다니며 인삼을 작살을 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뱀이 있어서 쥐들이 접근을 못했는데 자연계 먹이사슬이 깨져 나간 지 오래다보니 이제 독약으로 음식을 만드는 꼴이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덜 바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즘 한 달 동안 한 일을 보면 안다. 그렇다고 일의 양만 비교하면 멍청한 짓이다. 논에 객토 한다고 흙을 사다 붓던 할아버지가 덤프 트럭이 논 어귀에 빠져서 나를 부르러 오셨다. 흙 한차에 5만원이라고 했다. 그걸 골고루 펴시느라 며칠 걸리셨다. 두 마지기 400평에 여섯 차를 넣었으니 30만원이다. 꽃나무 키우는 우리 골목 마지막 집은 거름 값 흙 값만 100만원 들어갔다고 한다. 그 거름에서 폐타이어 쪼가리가 나온 적도 있다. 논을 깊게 갈아엎고 쓰레질하고, 참 그 이전에 제초제를 친다. 요즘은 누구나 고추 심을 데에 비료랑 거름이랑 넣어서 갈아엎은 다음에 미리 검은 비닐을 쳐 놨다.

내가 하는 일 속도는 참 느리다. 이것 저것 한꺼번에 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할 수가 없다. 풀 매면서 쑥 띁는다.
내가 하는 일 속도는 참 느리다. 이것 저것 한꺼번에 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할 수가 없다. 풀 매면서 쑥 띁는다. ⓒ 전희식
나는 감자를 세 차례에 걸쳐 심었다. 노동력을 분산하기 위해서다. 노동력을 분산시키지 않으면 생태농사를 할 수가 없다. 놉을 사서 농사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일 일찍 심은 감자가 싹이 막 나고 있다. 심은 지 한달 열흘이다. 잎이 서너 개 난놈도 있고 이제 막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놈도 있다. 첫 북을 해 주면서 잡초를 잡으려고 했는데 잦은 봄비에 풀이 예상외로 많이 자라 있어서 밭에 갈 때마다 큰 풀만 대충대충 뽑아 준다. 감자밭에 쪼그리고 앉으면 절로 '이놈들아 이렇게 싹이 잘 나 주니 반갑구나 잘 자라거라' 마음속으로 빌어 주게된다. 풀만 매는 게 아니라 쑥 소쿠리를 끌고 다니면서 쑥도 뜯는다. 농약 친 다른 밭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쑥을 비롯한 모든 잡풀들이 씨가 말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감자는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이런 풀 저런 꽃들을 보면서 함께 자라는구나 싶어서 내 마음이 정말 뿌듯하다. 다른 밭은 눈을 씻고 봐도 감자밭은 감자뿐이고 마늘밭은 마늘뿐이고 파밭은 파뿐이다. 감자는 세상이 감자 뿐 인줄 알고 마늘은 세상이 마늘 뿐 인줄 알 것 아닌가. 먹기 좋은 비료가 있고 벌레나 균이 얼씬도 못하니 오냐오냐 키우는 3대독자가 입도 짧고 참을성도 없고 덩치만 컸지 병치레만 하듯이 꼭 그런 생각이 든다.

북을 한번 해 준 다음에는 풀을 베서 계속 깔아 줄 생각이다. 내가 풀을 벨 때는 다른 사람들은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농약만 자주 쳐주면 추수 할 일만 남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말 할 수 있다. 밭에서 일을 하는 동안 그것이 어떤 시간이냐 하는 것이다. 생명을 북돋우고 살리는 시간이냐 아니면 죽이면서 스스로도 죽어 가는 시간이냐 하는 것이다. 노동의 이 차이를 깨닫는데 수 십 년이 걸릴 수도 있고 평생 깨닫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런 표현에 팔자 늘어진 소리한다고 할 수도 있다.

벌써 꽃이 만발 한 광대나물이다. 꽃이 화려하다. 달빛에 보면 눈이 시리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을 정도로 이쁘다. 아주 이른 봄에 냉이랑 함께 봄나물의 으뜸이다.
벌써 꽃이 만발 한 광대나물이다. 꽃이 화려하다. 달빛에 보면 눈이 시리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을 정도로 이쁘다. 아주 이른 봄에 냉이랑 함께 봄나물의 으뜸이다. ⓒ 전희식
정신노동이나 지식노동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지만 노동의 본령은 육체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특용작물이다, 시설농이다, 그린투어다 하지만 농사의 본령은 오곡을 중심으로 하는 기초작물 재배라는 생각을 다시 확인하면서 나는 지금은 옥수수, 콩, 수수, 들깨모종, 호박을 심고 있다.

재미도 없는 이런 이야기를 왜 쓰느냐는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맨 날 내 밭은 이렇고 남의 밭은 이렇다. 맨 날 옆집 할아버지가 등장하여 대척점을 이루는 귀농자의 일기는 그래서 읽어주는 사람이 귀하고 고맙다. 제대로 된 농사이야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중심을 이뤄야 한다고 동의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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