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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지금 농촌은 못자리 설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2003년 지금 농촌은 못자리 설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 박철
오늘은 인천에서 우리 동네 한대현씨 둘째 아들 한영훈군의 결혼식이 있는 날입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농촌에선 일년 중 제일 바쁜 철입니다. 요즘 이곳에선 못자리 설치하는 일로 인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갑니다.

새벽 5시 반이면 트랙터 움직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못자리 설치하는 작업은 모두 품앗이로 합니다. 보통 네다섯 집, 많으면 일고여덟 집씩 두레를 만들어서 하는데, 다 판에 짜여진 일이라 한사람도 자리를 비울 수 없고, 만약 특별한 사정이 생겨 한 사람이라도 빠져나가면 그만큼 노동 강도가 높아집니다.

모판 상자에 흙과 볍씨를 골고루 담아 싹을 틔운 다음 무논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그 위에 대나무 꼬챙이를 휘어 양쪽으로 찔러놓고 비닐을 덮어 못자리를 만듭니다. 하루에도 수 천 개가 넘는 모판 상자를 나르는데 남자들은 담배 한 대 입에 물 여가가 없습니다. 모든 일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다 해야 합니다. 그렇게 일주일하고 나면 온 몸이 녹초가 되고 쇳덩어리가 됩니다. 누구말대로 프로권투 선수가 마지막 라운드에 이를 앙다물고 혼신의 힘을 쏟듯이 지금 때가 바로 그렇습니다.

2003년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기 위해 배에 몸을 실었다
2003년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기 위해 배에 몸을 실었다 ⓒ 박철
사람들이 계속되는 일로 심신이 지쳐있고 매우 날카로워져 있습니다. 시방은 얼추 못자리 설치가 끝나가는 시점입니다. 그런 농촌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결혼식이라니 욕먹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신랑신부가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만났으니, 도시상황에 초점을 맞추었을 터이고, 하필이면 바쁜 농사철에 날짜를 잡은 것이야 고의적인 게 아니니 나무랄 수도 없는 일입니다. 또 어제는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일을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완전 돌아가시기 직전입니다.

인천에서 결혼식이 오후 2시에 있는데 나는 아침 8시부터 교회승합차로 동네를 돌았습니다. 가뭄에 콩나기로 한 두 사람이 탔는데 12인 승합차를 다 채우지 못했습니다. 차가 월선포 선착장에 도착하니, 바로 배가 선착장에 닿아서 기다리지 않고 배를 탔습니다. 바다 건너 창후리에서 대절버스가 10시 30분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장장 1시간 30분을 기다렸다가 출발했습니다.

45인승 버스에 사람이 고작 스무 명 쯤 탔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자욱하고 날씨마저 잔뜩 찌푸렸습니다. 인천 결혼식장에 버스가 도착한 시간이 12시가 채 안됐습니다. 이렇게 섬에서 나오면 하루 종일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결혼식이 오후 2시이니 두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합니다.

예식장 측의 배려로 곧바로 지하식당에 내려가서 점심밥을 먹었습니다. 점심밥을 잘 얻어먹고 예식장에 올라왔는데 교동 섬사람들만 왔다갔다 눈에 띄고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신랑 쪽 손님들이 너무 적게 왔으니 예식장이 텅 비면 어떻게 하나 조바심이 났습니다.

2003년 손주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강한옥 할머니 잔뜩 멋을 부리셨다
2003년 손주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강한옥 할머니 잔뜩 멋을 부리셨다 ⓒ 박철
결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신랑신부가 나보고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해서 앞자리에 앉았다 내 순서에 기도를 마치고 내려왔는데 그 넓은 예식장에 어디 엉덩이 하나 들여놓을 데가 없을 만큼 예식장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결혼식을 다 마치고 강화에서 타고 왔던 대절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비가 주룩주룩 처량하게 내렸습니다. 신랑 쪽 친척 몇 분이 내일 온다고 안 타서 그나마 올 때보다도 사람이 줄어들어 그 넓은 차에 동그마니 열한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모두가 지쳐있는 표정이었습니다. 버스기사 아저씨는 좋은날이니 사람들 기분 좀 내라고 뽕짝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았습니다. 시끄럽지만 나는 버스기사 아저씨의 마음을 잘 알겠기에 잠자코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뽕짝 음악을 자장가 삼아 1시반동안 창후리 선착장에 오기까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다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지금 도시는 사람들의 포화상태이고 농촌은 사람들이 없어서 일년 중 가장 바쁜 철입니다. 70넘은 노인들까지 다 들에 나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허리가 휘도록 일합니다. 일철에는 돈을 주고 사람을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습니다. 두 젊은이가 서로의 사랑의 약속을 다짐하고 출발하는 혼례식 날, 모두가 즐겁게 얘기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날, 섬마을 사람들의 심기는 그렇게 좋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불편한 속내를 다 드러내 놓고 살 수는 없겠지만, 시방 농촌사람들은 온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그 신나는 뽕짝 음악에도 몸 한번 흔들지 못하고 잠에 곯아 떨어져야 하는 농투성이들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배 터에 다 왔어요. 고만 자고 일어나세요!”

다들 하품을 크게 하면서 기지개를 펴고 한다는 말이

“벌써 다 왔어. 아이구! 오래간만에 잘 잤네!”

2003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에서 창후리를 바라본 풍경
2003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에서 창후리를 바라본 풍경 ⓒ 박철
하고는 얼굴에 묻은 침을 손으로 쓱 문지르면서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빗방울이 더 굵어졌습니다. 바다에는 안개가 더 자욱하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고단한 일상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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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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