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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리
밤늦게까지 하는 자율학습도 모자라 밤 10시부터 학원수업을 받아야 하는 현실. 입시에 파묻힌 교육현실은 한창 밝게 자라야할 청소년에게 너무도 버거운 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잠시나마 또래의 청소년들에게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되고 싶다.

익산학생신문'벼리'.
그들은 익산지역에 위치한 19개 고등학교의 대변지이기를 강조한다. 한 달에 한번씩 15일이면 22명의 현직기자들이 직접 부딪히며 써 내려간 기사들을 만날 수 있다. 그물코를 오므리고 펼 때 잡아당기는 줄로, 일이나 글의 핵심이 되는 '벼리'라는 뜻만큼 벼리는 은연중에 '학생들의 입'이 되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벼리는 몇몇 학생의 전유물이 아닌 시내·시외 지역, 인문계·실업계 차별 없이 전 학교를 대변하는 신문으로 우뚝 섰다. 2년여에 걸친 22번의 몸부림이 말해주듯이 말이다.

ⓒ 벼리
벼리의 탄생배경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상하관계식 문화전달방식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문화를 수평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신문이라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고 올바른 청소년 문화와 솔직한 생각, 의견들을 담아내는 구실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선입관을 가지고 청소년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생각에도 변화가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는 게 벼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벼리는 22번이 발행됐지만 그 준비과정이 더욱 눈길을 끈다. 지난 99년 겨울, 익산지역 김영춘·송동한·한은수·임재욱 선생님에 의해 논의되다가 국어교사 모임으로 확대되었고 창간 준비호를 4번이나 발행하면서 벼리는 탄생하게 됐다. 처음에는 선생님들의 고민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기획하고 취재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 학생들의 순수한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잡지와 신문의 성격을 동시에 띤 타블로이드판에 기본 12쪽의 년 8회 제작되는 벼리는 1년에 두 번은 방학 때문에 쉬고 2번은 16쪽에서 20쪽 가량의 특별판을 만든다.

벼리의 지도교사인 김원진(이일여중) 선생님은 "벼리가 꾸준하게 발행돼서 20년, 30년 후가 되면 신문자체로 익산지역 고등학교의 역사가 될 것"이라며 "기자들이 학교와 부모님의 반대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며 벼리를 떠날 때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 왼쪽부터 지도교사인 김원진 선생님과 편집장인 김선용 학생
ⓒ 모형숙
매일같이 선생님께 불려가 '공부해야지 신문 만들 때냐'며 '네가 그렇게 신문 만들면 세상이 변할 것 같냐'는 선생님의 타박에도 씩 웃고 나서 꿋꿋이 기사를 쓰는 씩씩한 기자도 있다.

지난 2000년 10월 9일에 첫 발행된 창간 준비호 1호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벼리가 어떤 신문이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반응을 기재, 더불어 만들어지는 신문이기를 고민했다.

벼리에 대한 기대, 어떤 신문이기를 바라는가, 다뤘으면 하는 내용, 학생들의 의견, 신문을 읽지 않는 이유 등을 꼼꼼히 준비해 12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는 학생들의 현실을 반영한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학생들이 신문을 읽지 않는 이유에 대해 50%는 '관심이 없다'라는 것과 그 외에 나오는 단어들이 어렵고, 똑같은 정치얘기만 반복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2년이 지난 지금 벼리는 지겨운 신문이 아닌 서로가 공유하고 고민하며 참여하는 신문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0교시의 문제점을 수 차례 기사화 해서 학생들로 하여금 0교시의 비효율성을 인식시키게 된 계기를 만들었던 적도 있었고, 경기도까지 찾아가서 미선이와 효순이의 장갑차 사건을 취재해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한 적도 있었다.

'애기똥풀'의 사진과 안도현 시인의 '애기똥풀'시를 소개하는 내용 등을 담은"시, 봄꽃"이라는 기사는 많은 호응을 얻은 지면이기도 하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기자들이 직접 답사하며 취재했던 "여수 향일암 특집"르포 기사는 향일암의 일출장면부터 시작해서 경로와 교통편까지 상세하게 소개해 주목을 끌었다.

▲ 5기 신입기자 자필 평가 모습
ⓒ 벼리
또한 새벽을 밝히는 사람으로 주번이 아닌데도 1년 동안 학교 후문 쪽을 매일같이 청소하는 학생을 소개한 내용이며 우리동네 곳곳에 알려지지 않은 소외된 문화와 교복에 관한 얘기 등은 어른들이 등한시한 청소년들의 관심사가 담겨져 있다.

현재 벼리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김선용(익산고·2년) 학생은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각 반에 10부 가량의 신문이 배포되고 있는데 볼거리가 없다는 학생이 있는 반면 스크랩해서 책에 붙여놓은 친구들도 많다"며 "올해 수습기자 경쟁률이 3대1이었는데 해가 거듭할수록 학생신문으로 자리 매김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해 뽑은 30명의 5기 수습기자를 제외하더라도 4기까지 배출된 기자는 85명. 이 학생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성숙시켜 기자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사회 각 분야에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다보면 사회는 분명 조금씩 바뀔 것이다.

익산의 학생 문화를 선도해 나가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만들어진 벼리. 아무런 조건도, 대가도 바라지 않는 기자들의 버팀목은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익산의 학생 문화라고 말한다. 그것이 보람이고 자부심이라고 표현하는 어린 기자들의 생각 속에서 익산의 미래는 밝기만 하다.

여러분의 힘을 실어주십시오
"호주머니 후원인"

벼리는 예산이 적다. 한 달에 한번씩 신문을 발행하기에도 부족해 기자들의 취재비용은 자신들이 부담한다.

준비과정과 만들어진 시간까지 포함하면 5년. 시에서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넉넉하지 않다. 돈이 없어 폐간되는 신문이 될까봐 걱정이다. 그래서 후원인 제도를 도입하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봤다.

며칠 후 지도교사인 김원진 선생님에게서 한 통의 메일이 왔다. 벼리를 소개 해줄 때 후원인 제도에 대해 홍보를 부탁한다고…. 벼리는 큰돈을 바라지 않는다.

서로가 관심을 갖고, 작은 돈이지만 정성이 담긴 마음이 전해질 때 벼리는 더욱 힘을 발한다. 천원, 만원의 호주머니 돈으로 만들어지는 후원금은 풀뿌리를 어렵게, 어렵게 심어 가는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단위농협 553-12-139272 임재욱> / 모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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