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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포중지'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프랑스공산당의 마리-죠르쥬 뷔페(Marie-George Buffet) 의원과 당원들
ⓒ 박영신
4월 12일 토요일, 수 천명의 시위대가 '미-영 동맹군의 즉각적인 이라크 철수'와 '이라크의 평화'를 외치며 다시 한번 프랑스 곳곳을 행진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체제의 몰락과 함께 종전 기운 때문인지 한풀 꺾인 인상이었다.

15시 30분경, 이탈리 광장(Place d'Italie)에 집합한 파리(Paris)의 시위대는 몽파르나스(Montparnasse)역 근처의 1960년 6월 18일(18 juin 1960) 광장까지 침착하게 행진했는데, 매 반전시위 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프랑스공산당(PCF), 혁명공산당동맹(LCR), 노동자투쟁당(LO)과 같은 프랑스 좌파 정당이 시위행렬의 선두에 자리했다.

플래카드의 내용에도 당연히 변화가 있었다. '발포 즉각 중지', '미-영 군대 철수', '정의, 평화, 민주주의'라고 쓴 플래카드들이 곳곳에 보였으며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사진들과 함께 '이라크 국민들에게 주권을 보장하라'는 구호가 또 새롭게 등장했다.

▲ 프랑스의 불법체류자들도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며 국제행동의 날에 동참했다
ⓒ 박영신
자유의 여신상과 성조기를 희화해 퍼포먼스를 벌인 프랑스의 미국인들과 팔레스타인, 쿠르드족 단체들이 나란히 행진하는 가운데, 이날은 특히 50여명의 중국, 아프리카의 불법체류자들도 '미제국주의 반대'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다른 시위대에 합류, 프랑스 불법체류자들의 존재를 알리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시위대가 숫적으로는 감소했지만 대형 스피커를 실은 트럭들이 다수 동원돼,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이크나 메가폰을 든 사람들이 구호를 선창하면 뒤따르는 시위대가 되풀이, 좀더 조직화된 모습이었다.

밥 말리(Bob Marly)의 노래가 한바탕 휩쓸고 가면 인터내셔널가가 그 뒤를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또 여느때보다 유난히 많은 무지개 깃발이 파리의 하늘을 수놓았는데, 3주가 넘도록 보아온 전쟁의 참혹한 모습들이 시위대들로 하여금 아마도 아사상태에 있는 평화를 강하게 염원토록 한 모양이다.

시위 하루전인 11일, 파리 경찰국은 재발 우려가 있는 인종차별주의, 반유태주의적 행위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모든 종류의 인종차별주의 행위에 강력하게 대처하도록 지시한 경찰 국장의 발표는 사건 당사자를 현장에서 체포하고 관할 사법 당국에 소환토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것은 지난 3월 22일 반전시위 중 발생한 4명의 유태인 학생 폭행 사태에 의거한 것으로서 파리 경찰국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단지 이라크 전쟁 관련 시위뿐만 아니라 모든 시위에 적용될 것이라고 한다.

▲ '쿠르드 반군 지도자 압둘라 오칼란(Abdullah Ocalan)을 석방하라!' 오칼란은 터키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돼 있다
ⓒ 박영신

이번 대책은 12일 반전시위 현장에서 바로 목격됐다. 17시 45분경, 몽파르나스 대로를 지나던 시위대 일부가 파리 14구 몽파르나스 144가에 위치한 쿠오니(Kuoni) 여행사 앞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기 시작했고, 이에 항의하는 몇몇 유태인들과 투석전이 벌어진 것.

소동이 시작되고 채 1분이 지나기도 전에 급히 투입된 30여명의 공화국 기동대(CRS)에 의해 한 아랍인 청년이 체포됐고, 수갑이 채워진 채 공화국 기동대에 둘러싸여 끌려가는 청년을 목격한 시위대는 순간 동요하기 시작, 일제히 휘파람을 불면서 항의했다.

아랍인 한 여학생은 "이스라엘은 우리를 죽여도 되고 우리는 깃발을 태우는 것도 안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날 4월 12일 파리에는 총 1만1000명이 모였던 것으로 경찰은 집계했는데, 15일전 3월 29일 1만8000명, 다시 일주일 전인 22일에는 9만명이 파리 시내를 반전함성으로 채웠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난 토요일 시위대의 수는 급격하게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마르세이유(Marseille)를 비롯해 리용(Lyon), 렌느(Rennes), 그르노블(Grenoble), 디죵(Dijon), 낭트(Nantes) 등 프랑스의 50개 도시도 전세계 반전시위대와 함께 했다.

▲ 이탈리 광장에서 만난 '민노총', 행진이 시작되기 전 장구와 꽹과리를 치면서 흥을 돋구고 있다.
ⓒ 박영신
집회 당일, 잭 랑(Jack Lang) 전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일요신문(Journal du Dimanche)'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쟁에 반대했던 시라크(Chirac)는 옳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여기서 잭 랑 전 장관은 "오늘날 프랑스의 반전입장에 유감을 표명하는 논평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면서 프랑스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국제법의 우위를 강조, 옹호하려 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잭 랑은 다시 이라크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국제사회는 반드시 프랑스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도 했다.

또 같은 날, 같은 신문에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다수가 이라크 전쟁에 적대적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55%가 미국이 부당한 전쟁을 일으켰다고 대답한 것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과는 프랑스의 여론도 TV에서 보여지는 이라크인들의 환호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37%의 응답자가 미국의 무력 개입이 옳았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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