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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시내버스 윤태영 기사님
안산 시내버스 윤태영 기사님 ⓒ 민은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고요,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른 아침 안산 시내 버스 62번을 타면 기사님의 정감 어린 인사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쑥스러워 대답도 못하던 나였지만 이 차를 세 번 째 탄 나는 넉살스럽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기사님의 인사와 웃음 소리는 승객들에게 단순한 서비스가 아닌 유쾌함과 훈훈한 정을 선사하여 주었다. 안산에서는 친절한 버스 기사님으로 소문이 날 정도고, 유명하신 분이다. 나는 기사님이 친절한 모범 기사로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그래서 기사님을 직접 만나게 되었다.

- 버스 기사 일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1994년 3월에 경원여객에 입사를 했고, 지금까지 버스 기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모범기사가 된 경위는 어떠했나요?
"3년 무사고인 자에 한해서 승객들에게 봉사를 하겠다고 신청을 하면 모범기사가 될 수 있는데, 제가 96년도에 신청을 했어요. 그래서 경찰서의 심사를 거쳐서 된거죠. 대부분 모범기사가 되면 말 그대로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친절해야 하고, 배차 간격도 잘 지키고, 신호도 지켜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책임감이 부여되잖아요. 그래서 기사님들이 일부러 할려고 하지는 않죠. 그런데 남들이 안하는 걸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죠."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친절하신 기사님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친절하신 기사님 ⓒ 민은실
- 그럼 승객 분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하는 것도 모범기사가 된 후에 시작하셨나요?
"아뇨. '인사'는 94년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안산에는 공장지대만 있고, 아파트 공사중인 곳이 많아서 임부들이 득실거렸어요. 새벽 일찍 일터에 나가는 임부들과 저녁 늦게 퇴근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분위기가 살벌하더라고요. 차가 밀려서 배차 간격이 조금만 벌어지면 사납게 성내시고, 일 때문에 고단해서인지 표정들이 어둡고 매섭더라구요. 괜히 운전하는 저까지 표정이 굳어지고 숨이 막히더라구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면 어떨까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죠."

- 운전하시면서 한 정거장도 놓치지 않고 인사를 하시는데, 승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처음엔 쑥스러워서 그런지 인사를 잘 안 받으시더라구요. 그런데 지금은 열 분 중에 다섯 분 이상은 웃으시면서 인사도 받아주세요. 그리고 어떤 분은 인사하시면서 사탕 주시는 분들도 계시구요."

-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실 때는 언제였어요?
"제가 운전하는 차를 편하게 타시고 또 인사도 잘 받아주고, 승객이 내리면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할 때가 제일 기분 좋죠. 그때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 많은 승객들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하다보면 재미있는 일들도 종종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얼마 전에 재미있다기보다는 난처한 적이 있었어요. 항상 인사하듯이 "오늘 하루 하시는 일들 다 잘 되시길 바랍니다" 라고 인사를 했는데, 한 남자분이 저한테 다가오더라구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기사님! 제가 오늘 이혼을 하러 가는데, 잘 되야 할까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 인사말이 모든 승객들에게 좋은 말이 되지 않을 수 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날은 "절대 나쁜 일은 잘 되지 말고, 좋은 일들만 잘 되길 바랍니다"라고 인사를 했어요. 요즘도 가끔씩 그 인사말을 하곤 해요. "

- 앞으로 어떤 버스 기사가 되고 싶으세요?
"버스 기사로서 승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서비스는 친절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껏 인사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예요. 그래서 '안산' 만이라도 인사하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제가 친절한 버스 기사로 최선을 다한 뒤에 길거리를 지나다가 "저 아저씨 친절한 62번 기사님이시네" 라고 하며 알아봐 주신다면 더욱 좋겠죠."

기사님은 환하게 웃으시며 또 다시 인사를 하신다. 마치 딱딱한 보도 블럭 사이에 핀 민들레꽃처럼 기사님의 털털한 웃음과 친절한 인사가 정겹고 반갑다. 그저 인사하는, 기분 좋은 아침을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이 얼마나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하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 주위에는 보물들이 참 많이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은 웃음이 하루의 활력소가 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인사가 흐뭇함을 느끼게 한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에서 하나의 꽃이 되어보자.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 하면 즐겁다'는 기사님의 소박한 생각이 우리의 삶 속에도 스며들기를 바란다. 그래서 웃음과 친절이 전염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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