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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천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인천에서 살았다.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셔서 하루종일 직장에 계셨던 까닭에, 난 어려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손에 자랐다. 유치원에서 생일잔치 같은 행사를 해도 다른 아이들은 다 엄마들이 오는데 난 항상 할머니가 오셨다.

그래서 난 어려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정이 많이 들었고, 서울로 이사 와서 따로 살게 되었을 때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존재는 항상 따뜻한 그리움으로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그런 두 분 중에 할아버지는 몇 해 전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긴 연세가 되셨다.

할머니는 지금 인천 아들네 집에 사시는데, 지금도 가끔 서울 우리집에 오셔서 한두 달 머무르시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나이 드신 할머니가 집안에 우두커니 계시는 게 적적하실 것 같아서, 시간 나는대로 우리 학교며, 근처 공원이며 여기저기 모시고 다녔다.

그러던 중 한 번은, 할머니가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그 동네에 찾아간 적이 있다. 그곳은 지금은 청와대가 있는 종로구 효자동이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셨고 스무 살이 되던 해 인천으로 시집을 가셨다. 그 후로 한 번도 와보지 않으셨다니, 자그마치 60여년만에 다시 찾은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릴 적 할머니가 다니셨던 배화학교를 찾아갔다. 지금은 배화여자대학이 있는 그 자리에 놀랍게도 60여년 전 할머니가 공부했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형적인 일제시대 빨간 벽돌건물의 그 모습엔 그 긴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그날 할머니는 배화학교 시절 입었던 교복 얘기며 이런저런 옛날 얘기를 해주시며 깊은 감회에 젖으셨다. 내가 어릴 때 무한한 사랑으로 나를 키우고 보살펴주신 할머니. 이젠 하루가 다르게 허리가 굽고 노쇠해 가시는 할머니와 함께 했던 그날의 데이트를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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