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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찬 'Daisy'
곽윤찬 'Daisy' ⓒ 배성록
첫 음반 [Sunny Days]를 통해 국내 정상급 재즈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한 곽윤찬, 그도 흑인이 아닌데서 오는 한계를 느꼈을까. 필시 느꼈을 것이다. 돌파구를 찾으려 무진 애를 썼을까. 갖은 욕을 다 봤으리라. 그래서, 해답을 찾았을까. 두 번째 음반 [Daisy]를 들어보니, 찾은 듯 하다. 곽윤찬이 발견한 해답은, 뜻밖에도 ‘작곡’에 있다. 재즈에서는 중요도상 뒷자리에 놓일 영역인 작곡, 곽윤찬이 찾아낸 ‘한국적 재즈’의 해답이다. 대관절 무슨 근거에서일까.

두 번째 음반 [Daisy]에 수록된 9곡 가운데, 곽윤찬의 자작곡은 무려 6곡. 잘 재단된 이 영롱한 선율은, 최상의 연주를 위한 조건을 완비한 가운데 연주되고 녹음되었다. 함께한 연주자만 해도 기타에 래리 쿤스(Larry Koonse), 베이시스트로 그 유명한 존 클레이튼(John Clayton), 드럼에 그레고리 허친슨(Gregory Hutchinson), 색소폰에는 존의 동생인 제프 클레이튼(Jeff Clayton) 등 당장 내한공연 초청해야 할 일류 아티스트 일색이다.

이 가운데서도 정밀한 싱코페이션으로 이름높인 존 클레이튼은 협연에 능한 연주자로서, 곽윤찬과 환상의 인터플레이를 선보인다. 흡사 빌 에반스와 스콧 라파로가 살아 돌아온 듯하다. 또한 레코딩은 글렌우드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은 전통과 명성의 캐피톨 스튜디오에서 작업해 최상의 사운드를 구현했다.

곽윤찬의 연주는? 첫 음반에서 그랬듯 흠잡을 데 없다. 아니, 어서 빨리 세계의 녀석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빌 에반스(Bill Evans)의 영향이 서린 서정성과 군데군데서 재치가 번뜩이는, 기술적으로 완벽하고 정서적으로 고양된 연주자가 곽윤찬이다.

특히 왼손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오른손이 만들어내는 선율과 스윙감의 균형을 잡는 노련함은 국내 연주자들에게서 보기 힘들던 모습이다. 화성학 교수답게 펼쳐져 있는 음들의 가능성을 십분 활용하는 역량 또한 그렇고. 백밴드가 모두 세계적인 연주자들임에도 곽윤찬이 조금도 기죽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기량의 대등함과 그로 인한 자신감 덕분일 것이다.

민족주의 같은 것에 개코도 관심 없지만, 그런데도 세계 일류 연주자들을 능란히 리드하는 곽윤찬을 떠올리면 마음이 일순 뜨끈해진다.

보사노바를 응용해 풀어낸 < 'Round Midnight > 등 세 곡의 스탠더드를 제외하면, 나머지 트랙은 곽윤찬 스스로가 깊이 투영된 곡들로 정성스레 채워져 있다. 전작 [Sunny Days]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노래했듯, 신실한 신앙심을 표현한 < Grace >는 가장 그다운 곡이다. 또한 유산된 자신의 아기에게 바치는 곡 < Waltz For Jane >, 개를 좋아해서 만들었다는 < Puppy Love >등 그의 곡들은 스스로의 인생과 관심사, 인격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들이다.

특히 타이틀이기도 한 < Daisy >와 머릿곡 < Grill Gaucho >은 주목할 만하다. 두 곡 모두 라틴 리듬을 잘 활용하는 곽윤찬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데, 멜로디 자체가 리드미컬한 덕분에 자연스럽고 풍성한 스윙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에서의 피아노-기타로 이어지는 즉흥 연주, 스피디한 워킹 베이스는 재즈 팬이라면 흐뭇하게 감상할 대목일 것이다.

분명 곽윤찬은 동양인 재즈 아티스트의 한계를 정확히 직시하고 있다.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기존의 스탠다드를 재해석하는 방식만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승부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곽윤찬은 출중한 본인의 연주력과 동료들과의 인터플레이, 그 위에 곽윤찬 스스로가 투영된 새로운 곡들을 더했다. 곽윤찬이란 한 인간의 영혼이 고스란히 담긴 이 노래들은, 그 곡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작곡자와 동료들에 의해 아름답고 적확하게 어루만져진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재즈의 새로운 가능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Daisy]는 듣는 이들에게 그렇게 두 차례의 환희를 준다. 영롱한 재즈 선율로 얻는 환희, 그리고 어렵게 찾아낸 한국 재즈의 비전을 목도하는 환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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