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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 노조)는 지난 2일 서동구 KBS사장이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 '서동구 사장 취임반대투쟁'을 전개하며 노보에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80년에) 실제 제작거부에 동참한 적도 없으며 자유언론 운동에 선배로서 참여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80년 당시 경향신문 외신부장 재직중 해직을 당한 언론인 이경일씨가 <오마이뉴스>에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KBS 노사가 회사의 진로를 새롭게 모색하고 있는 지금 오마이뉴스는 서씨의 당시 행적에 대한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이씨의 주장을 소개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씨의 주장에 대한 KBS나 다른 독자들의 재반론 역시 본 지면을 통해 반영할 용의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편집자 주)


▲ 지난 2일 사직서를 제출한 서동구 KBS사장
ⓒ KBS 노조
4월 2일 사의를 밝힌 서동구 한국방송(KBS) 사장을 무리하게 헐뜯는 글 여러 편이 KBS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올라 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 노조)의 의도를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사람을 비판하고자 할 때는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분석이 필수적이다.

KBS 노조가 아무리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이라 하더라도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KBS 노조는 이 점에서 큰 오류를 범하고 있어 80년 자유언론 운동의 한가운데 서 있던 당사자로서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면, 필자는 서 사장의 언론계 후배로 한 세대 넘는 세월 동안 그와 함께 기자생활도 하고, 함께 남영동에 잡혀가 물고문을 당하는 등 가진 고초를 겪기도 한 사람이다. 그런 만큼 그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 가깝기 때문에 그의 좋은 면은 너무 크게 보고 나쁜 점은 좀 작게 보려는 무의식적 오류에 빠질 수도 있음을 스스로 경계하면서 KBS 노조 글이 안고 있는 문제점 중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KBS 노조(기명의 글이 아니라 KBS 노조라고만 밝힘)는 '특보' 14-3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서동구씨는 평범한 외신기자였을 뿐이지 당시 독재정권에 대한 대안 찾기로 비판적 지식인 사이에서 암암리에 퍼지던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갖거나 이를 통해 체제를 비판하거나 거부한 언론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KBS 노조의 이같은 단정적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가 "평범한 외신기자"였는지 "비범한 외신기자"였는지 KBS 노조가 어떻게 아는지 매우 궁금하다. 혹시 "20년간 외신부 기자로 일관해온 나에게 공산주의에 관한 전문서적을 지닌 죄로 반공법을 적용하고 사회주의 성향의 기자라고 낙인을 찍는다면 나의 직업적인 전문성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쉽게 비교해서 목수에게서 연장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과거 서 사장의 글을 그 근거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것은 전형적 확대 해석이자 왜곡이다. KBS 노조 주장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결국 그게 그 얘기 아니냐"고 KBS 노조는 강변할지 모르지만 위 인용은 결코 KBS 노조 주장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 그렇게 근거도 없이 대강 대강 글을 쓰는 것은 금물이다. KBS 노조는 자기가 쓴 글을 다시 한번 정독해 보기 바란다.

과거 군사독재 정부의 하수인들이 그런 확대 해석으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거나 정부의 억압 조치에 항의하던 학생, 기자, 정치인 등을 사회주의 고무·찬양으로 몰아 고문과 구타를 가한 뒤 감옥에 보낸 일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KBS 노조는 알아야 한다. 확대 해석과 왜곡은 사람을 잡는 매우 오래된 무기이다. 명색이 언론사 노조에서 그런 해묵은 군사독재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참고로, 서 사장은 1966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반공법 위반으로 1주일 동안 조사를 받은 일도 있음을 밝힌다. 중앙정보부는 베트남 전쟁과 중국 등 제3세계 정세에 관한 그의 해설기사 20여 편을 뽑아 분석시각이 불온하고 미국의 정책을 비판한 내용이 반공법에 위배된다는 혐의를 추궁했던 것이다.

혹시 KBS 노조는 "시각이 불온하다"는 것, "미국을 비판한다"는 것이 60~70 년대에 무슨 의미였는지 아는가?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있는가? 과거에 그것은 바로 가슴에 '빨간딱지'를 붙인다는 의미였다. 당시는 김포공항으로 들여오던 책 안에 모택동이나 주은래 사진만 실렸어도 책이 압수당하던 시절이었음도 아울러 참고하기 바란다.

둘째, KBS 노조는 서 사장이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제작거부에 동참한 적도 없으며 자유언론 운동에 선배로서 참여한 적도 없기 때문에 …… 완전히 날조된 정치재판에 희생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참으로 어안이 벙벙하다. KBS 노조는 '제작거부에 동참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가? 시뻘건 글자 적힌 피켓 들고 서서 사장 출근길 막는 사람들만 '노조 운동'하는 사람들로 보는가? 자유언론 운동에 참여한다는 게 뭔지 그 뜻을 KBS 노조는 다시 새겨보기 바란다.

서 사장이 제작거부에 동참했는지, 아니면 제작거부 기자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는지, 아니면 어떤 다른 역할을 했는지 당시 제작거부를 주도했던 <경향신문> 기자들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운동이라는 것에서는 목소리 높이고 떠드는 일만 필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들이 수없이 많다.

당시 연행된 사람들 중에는 KBS 노조 주장처럼 "만만한 게 홍어 X"이라서, 혹은 엉겁결에 잡혀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작거부를 했든, 제작거부 기자들을 지원했든, 아니면 고향이 특정지역이든, 뭔가 이유가 있어서 잡혀갔다. 사실도 모르면서 함부로 단정적 주장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 3월27일 KBS로 출근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노조원들과 대치하고 있는 서동구(오른쪽)씨.
ⓒ KBS 노조
셋째, KBS 노조는 80년 당시 군사독재자들이 분류한 해직자들의 등급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전두환 일당은 '자신들의 집권가도에 재를 뿌린' 우리들과 같은 '악질분자들'을 먼저 잡아넣은 뒤 나중에 일반 해직자들과 섞어서 분류했는데 바로 A급, B급, C급, D급 등이었다.

A급 중에는 '국시 거부'라는 설명이 붙은 경우가 많았는데, KBS 노조가 순진하게 해석한 대로 '국시 거부'란 국가의 시책에 거부했다는 포괄적 개념이 아니다. 바로 '반공을 거부했다'는 의미다. 이 점에 대해선 특히 KBS 노조의 공부가 좀 있어야 할 것 같다.

검열거부와 제작거부를 가장 독하게 한 기자들에게 반공법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그런 악랄한 짓거리를 전두환 일당은 자행했던 것이다. KBS에서는 80년 당시 기자협회 감사를 지내다가 합동수사부 조사를 받았던 이홍기(당시 KBS 기협분회장)씨에게 물어보면 잘 알 것이다.

넷째, 무엇보다 안타깝게도 KBS 노조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다. KBS 노조는 '특보' 14-2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향신문>이 80년 제작거부를 했다는 말은 사실일까. 그리고 서동구씨가 거기에 동참했다는 것은 사실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경향신문> 역시 당시 유신치하의 폭정에 항거해 항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사실 왜곡이다. 당시 언론사의 언론 검열거부 및 제작거부 운동은 <경향신문>과 <중앙일보>가 주도하여 나아갔다. 5. 17 계엄확대와 더불어 기자협회 집행부가 연행되기 이전부터 검열 및 제작거부 운동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에 발행된 <경향신문> 지면에 그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다. KBS 자료실 어느 곳에도 그때 <경향신문>의 상처가 그대로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인용할 때는 신중하고도 정확해야 한다.

이밖에도 KBS 노조는 "유신말기 박정희 정권의 홍보도구로 이용된 것이 <경향신문>이었고 그 편집책임자로 서동구씨가 있었다는 얘기다"라는 주장을 했는데, 말인 즉 사실이다. KBS, <서울신문>, <경향신문>이 모두 유신체제의 홍보매체였다. 다만, <경향신문>에서는 이른바 여권 매체뿐 아니라 대한민국 언론계 전체에서 동아·조선사태 이후 최초로 자유언론 운동이 싹트고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이해해주기 바란다.

<경향신문>의 그런 움직임이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이었길래 당시 AP통신은 그 사실을 "동아·조선사태 이후 처음"이라고 전 세계에 타전했을까. 아울러 서동구 편집국장 시절의 <경향신문>에서는 유신독재의 압력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언론자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알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밝히는 바다.

60을 넘어선 나이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동구 사장과 관련된 KBS 노조의 글들을 읽으면서 불끈불끈 분노가 치밀어 오름을 느낀다. 그 감정을 억누르면서 나는 이 글을 쓴다. 한 사람의 진실이 역시 사람이라는 개체들로 구성된 하나의 집단에 의해 이처럼 황폐화될 수 있는가.

억눌린 감정 아래로 강물처럼 슬픔이 흐른다. 전두환의 총칼에 의해 박해를 받았던 한 고귀한 정신이 근 한 세대를 뛰어넘은 지금 과장과 왜곡과 거짓의 깃발에 의해 다시 목이 졸리는 현실 앞에서 나는 한 인간으로서 한계와 무력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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