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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테네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오는데 꼬박 20시간이 걸렸다.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터키로 오는 길이 많이 힘들었지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형제'라며 반기는 터키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웃으며 견딜수 있었다.

오스만 터키의 자부심, 톱카피궁

오스만 터키의 경복궁 역할을 했던 이 궁궐은 약 400년간 왕조가 있던 곳이었다. 지금은 크기가 예전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했다. 걸어서 20분 거리인 시르케 지역까지 궁궐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 였을지 대략 짐작이 갔다. 돌아보는데 하루 종일 걸렸던 자금성을 생각하면 될 듯하다.

▲ 톱카피 궁 앞에서. 톱카피 궁이 지금은 많이 축소됐지만 그 위엄만은 여전히 느껴졌다.
ⓒ 김상욱

가이드책에도 반나절 이상 여유있게 잡고 보는게 좋다고 나왔는데 정말 잘 꾸며져 있었다. 건물 자체가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를 위엄이 있었다. 아마도 이곳은 옛날의 궁궐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봐서인지도 모르겠다. 터는 참 기가 막히게 좋아서 궁궐 뒤쪽에 펼쳐진 푸른 바다는 정말 장관이었다.

보석 갤러리는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입장료와 같은 액수만큼을 더 내야 들어갈 수 있는만큼 역시나 특별했다. 오스만 터키 왕조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금장신구, 각종 보석들 -단검, 자기, 거울 등- 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의 위정자들은 금과 보석의 화려함을 참 좋아한 듯 하다. 아울러 자신의 권력까지도 화려하게 영원히 빛나기를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세계에서 몇번째로 크다는 86캐럿짜리 다이아몬드는 정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유명한 관광지인만큼 관광객도 매우 많이 눈에 띄었다.

▲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하는 술탄아흐멧. 모스크는 밤에 보는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 [P&L]김민식

이스탄불의 축소판, 아야 소피아

이스탄불에는 참 많은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눈에 띄었다. 오죽하면 모스크의 도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둥근 구형 지붕과 뾰족하게 솟은 좌우대칭의 미나레트는 저마다 개성을 뽐내면서도 하나같이 이슬람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술탄아흐멧과 아야 소피아이다. 이 두 건축물은 오늘날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술탄아흐멧은 실내의 파란색 타일이 아름다워서 블루모스크라는 이름으로 서양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유명한 건축물이면서 아직까지도 사원으로 여전히 쓰이고 있었다.

▲ 술탄아흐멧의 내부. 파란색 타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 [P&L]김민식
술탄아흐멧을 마주보고 있는 아야 소피아는 오늘날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건축물엔 꽤나 다양한 역사가 숨겨져 있었다. 한때는 동로마교회의 총본산이었다고 했다. 그러던 것을 이슬람 세력이 이스탄불에 진입하면서 모스크로 개조해서 쓴 것이었다.

아야 소피아에는 동로마교회의 흔적인 (비록일부가 회손되긴 했지만) 모자이크로 된 벽화가 눈에 띄었다. 아야 소피아는 이스탄불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이슬람, 전통과 현대가 다양하게 조화된 모습이 이스탄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일부는 회손된 모자이크 벽화. 정말 모자이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했다.
ⓒ 김상욱

바닷바람 매우 강해

이스탄불은 바닷바람이 매우 강했다. 마치 서울의 한강처럼 이스탄불엔 보스포러스와 골든혼 해협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만도 했다. 이스탄불에는 보트택시가 많았다. 조그마한 수준이 아니라 유람선 정도 되는 큰배가 교통수단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거리로 봐도 돌아가는 것보다 배로 가면 훨씬 가까운 잇점이 있었다.

생명력이 넘치는 이스탄불의 푸른 바다는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시원하다고 하기엔 너무 추운 겨울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이스탄불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보트택시와 그 배를 따르는 갈매기 떼들, 조명으로 환하게 모습을 드러낸 모스크들은 밤에 봐도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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