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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정동영 의원님

대한민국 헌법 제5조를 기억하십니까? 국회의원이시니 당연히 저보다 더 잘 아시겠죠. 그래도 한 번 인용해 보겠습니다.

제5조
①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②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강조는 인용자)

▲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갑자기 왜 헌법타령이냐고요? 무엇보다도 정 의원님을 비롯해 이라크전 파병동의안 처리를 목전에 두고 있는 분들이 대한민국의 입법부인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상식으로 알고 있듯이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판단기준'에 있어 최상위의 규범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당연히 정 의원님도 동의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 의원님은 파병에 찬성하는 '판단기준'을 "장래의 국민 이익과 국가 이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그 판단기준의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는 "북한 문제를 풀어 가는 데 있어 어떻게 하면 한미간의 합의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정 의원원님께서 홈페이지에 올리시고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파병은 전쟁 지지하는 것 같지만 평화적 해결의 고뇌가 숨어 있다")의 핵심은 위에서 제가 인용한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다소 장황하게 이런 저런 부연 설명을 하고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나는 파병에 찬성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다' 라는 것이죠.

전 지금까지 정 의원님이 파병에 대해 입장을 유보해오고 계신 이유를, 개인적으로는 파병에 반대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탄생에 일조를 했고, 집권 초기 외교적 특사 비슷한 역할까지 했던 사람으로서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기 곤란한 점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는 추측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 의원님 역시 오늘 파병에 찬성한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국익'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이거 완전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라크전 파병 문제를 놓고 찬반양론으로 갈라져 싸우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자신들의 주요한 논거를 '국익'이라는 문제를 두고 논쟁하는 것에 대해 아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반대하는 쪽에서는 찬성하는 쪽처럼 단순무식하게 '국익'만을 외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또 어떤 측면에서는 찬성하는 쪽에서 '국익'문제를 들고나오니까 그것에 대응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국익'이 주요 쟁점이 되어버린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전 무엇보다도 국회(의원들)의 이라크 파병동의안 처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로서 제가 인용한 우리 헌법의 정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연 이번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 침략전쟁이냐, 아니냐 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도 명색 입법부 아닙니까?

물론 제 개인적으로는 헌법의 정신을 떠나 전쟁 그 자체를 반대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악의 징벌'이란 목적을 내세워 타국 국민을, 다른 인간을 살인해도 좋다는 권리를 인정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저는 당연히 '전쟁반대=파병반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전쟁반대와 파병반대가 별개라는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을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헌법조항을 들고 나오느냐 하면, 정 의원님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자 저의 추상수준을 조금 낮췄습니다. 파병동의안 역시 하나의 법률이므로 법적인 차원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우리의 헌법 조항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이번 미국의 대 이라크전이 침략전쟁인가 아닌가 하는 차원에서 검토해보면 정 의원님과 저 사이에도 합의점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침략전쟁이라면, 파병동의안을 찬성하는 것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는 헌법의 정신에 위배되는 법률에 찬성하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석유자원 확보를 위한 침략전쟁이다

이번 미국의 대 이라크전은 석유자원 확보와 유럽에서 아시아에 이르는 미국의 군사안보벨트 구축이라는 의도에서 시작된 전쟁이라는 것은 국제정세에 대해 약간의 지식만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KBS의 <일요스페셜>을 보았습니다. 워낙에 익숙한 내용이라 근성근성 보고 있는데, 압둘 압바스라는 이라크 반체제 인사의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1978년 이라크를 떠나 지금까지 고국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편지 한 장 못보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인터뷰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이라크 국민들과 그들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후세인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분명히 반대한다. (…) 이라크는 석유 1배럴 생산하는데 1달러도 안 든다. 그러나 미국, 영국은 그 10배, 20배의 비용이 든다. 이것이 이번 전쟁의 성격을 말해준다."

부시는 당선 뒤 6일만에 <에너지 전략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보통 이런 일의 책임자는 장관급이 맡는데, 이번 에너지 보고서는 역대 최대의 실세 부통령이라고 하는 딕 체니 부통령이 맡아서 3개월만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부시는 텍사스의 에너지 회사 출신이고 딕 체니 역시 석유회사 CEO 출신입니다. 부시는 지난 대선 때 이들 석유회사들로부터 25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자국 석유소비량의 5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에너지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2008년에 이르면 석유수입 비중이 62%에 이르는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미국은 석유매장량이 많은 국가라고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죠.

약간 부연 설명하자면, 90년대 초반 대이라크 경제제재조치의 일환으로 96년까지 이라크는 석유를 수출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라크 국민들의 생활은 엉망이 되었죠. 외화 수입의 95% 이상을 석유에 의존하는 나라인데, 석유수출을 금지시켰으니 안 봐도 뻔한 상황이죠.

피폐해가는 이라크 국민들의 생활상을 보다 못한 UN이 96년 이라크의 석유수출을 부분 허용합니다. 이라크의 석유수출이 시작되자 90년대 초반 내내 고유가를 유지하던 석유가격이 하락하면서 2000년까지 안정되게 됩니다. 그러다 지난 2000년, 이라크는 미국, 이스라엘 등이 팔레스타인을 탄압한다며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한 달간 석유수출 금지를 선언합니다.

그러자 4년간 안정세를 유지하던 석유가는 폭등하게 됩니다. 이를 두고 당시 미국의 에너지 장관은 '미국의 경제와 안보가 외부의 요소으로부터 위협받을 수 있음이 입증된 사례'라고 발표하면서 장기적인 에너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합니다. 그 에너지 대책이 부시의 집권 이후 구체화된 게 <에너지 전략 보고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보고서가 구체화된 게 바로 이번 미국의 대 이라크전이라는 추리가 가능한 것이죠.

다소 길게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결론은 이번 미국의 대이라크전은 '악의 축' 제거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분명 석유자원 확보를 위한 침략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이 침략전쟁에 '국익'을 위해 파병하는 것이 정당하는 말씀이신가요? 아니, 정당성 여부를 떠나 침략전쟁에 파병하는 것은 헌법에도 위반되는 것 아닙니까?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미국에 의한 한반도 평화 보장은 허구다

정 의원님께서는 "파병 문제를 고민하고 판단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어떻게 하면 한미간의 합의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대목에서 제가 기존에 알고 있던 정동영이라는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순진한 것인지,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지가 헷갈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문단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국제 사회는 냉혹하다. 국제무대에서 각국은 철저하게 자국 이익을 기준으로 행동한다. 그럴듯한 레토릭(수사)과 논리로 포장한다고 할지라도 핵심은 자국의 이해관계이다."

바로 그렇습니다. 국제 관계는 냉혹합니다.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죠. 그런데, 이렇게 잘 알고 계시면서 "미국과 각을 세우기보다는 파병 요청을 받아들여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파병요청을 받아들여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미국 비위 거스르기보다는 적당히 아부(?)하면 나중에 우리말을 미국이 좀더 잘 수용하지 않겠나, 생각한다는 것이죠?

참, 어이없습니다. 국제관계의 냉혹함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실텐데, 아래의 사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1979년 후세인이 이라크의 1인자에 올라선 이후 이라크는 당시 미국의 '악의 축'에 해당하는 이란과 8년에 걸친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말하자면 미국의 대리전이었죠. 이때 미국은 이라크에 대량의 무기판매와 군사기술을 지원함으로써 8~90년대 이라크를 군사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8년간의 이란과의 전쟁 후 이라크에 남은 것은 천억 달러에 이르는 전쟁 빚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라크는 이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OPEC 국가들에게 고유가 정책을 제안하게 됩니다. 그러나 OPEC 내의 친미 성향 국가들, 특히 쿠웨이트 등의 반대로 실패하게 됩니다. 이것이 당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의 주요 이유가 된 것이죠.

그러나 이 당시 후세인은 이라크 주재 미대사와 미국무장관으로부터 이라크가 설령 쿠웨이트 영토에 진입하더라도 개입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았다는 것이 최근 기밀해제 된 미국무부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유엔의 동의를 얻은 걸프전으로 이라크는 초토화되고 석유수출 금지 등 경제봉쇄조치를 당하게 됩니다.

자신들을 대신해 천억 달러라는 전쟁 빚을 지면서까지 이란과 8년간이나 싸운 이라크조차도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 한순간에 무시해버리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한 나라의 대사와 국무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한 구두 약속조차 한순간에 농담처럼 무시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적당히 파병하는 시늉을 해주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신다고요?

정 의원님.

어차피 저와 정 의원님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은 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정 의원님이 막스 베버를 읽는 시간에 전 푸코를 읽고 들뢰즈를 읽습니다. 베버를 '대'학자라고 하는 생각에도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정 의원님을 다른 엉터리 국회의원들하고는 그래도 좀 다르지 않겠나,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 의원님께서 국회의원만 하시다가 정치 그만두실 거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정 의원님은 그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생각하시는 것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사고를 지향하셔야 합니다. 단순히 '국익' 차원이라는 이유로 공개적 파병찬성 운운하는 발언으로 자신의 미래를 갉아먹지 마십시오.

파병반대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파병찬성을 밝히는 것도 용기라고 말씀하셨는데, '용기'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말로서는 부적절합니다. 타인의, 이웃의 고통을 댓가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듯이 이웃 나라의 고통과 생명을 담보로 우리 나라의 국익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라면 타인의 고통을 대가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안 되듯이 다른 나라의 고통을 외면하며 우리나라의 국익만을 주장하는 사람 역시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진보요 발전이기 때문입니다.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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