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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 목사의 즉석 연설
김충국 목사의 즉석 연설 ⓒ 김광재
대구지하철 참사 실종자 가족 대책위가 꾸려질 당시 실종자 가족들은 김충국(43, 대구 신서교회, 지하철 참사 실종자가족 대책위원) 목사를 '얌전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런 그가 앞장서서 몸싸움을 벌이는 시위현장의 '과격분자'(?)가 되어있다. '목회자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자'라고 생각한다는 그가 욕설을 내뱉고 기물을 부순 적도 있다.

큰일이 닥쳤을 때 평소와는 전혀 다른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도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지난 2월 18일 1080호 전동차의 화염 속에 딸을 잃어버린 김 목사가 요즘 그런 상황이 아닐까?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내 평생에 이렇게 욕설을 해 보기는 처음입니다. 평생 싸움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사고 수습과정을 보면서 지켜보고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정상적으로 법이 집행된다면 싸울 이유가 없지요.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유족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슬픔과 분노가 더 커집니다."

-지금까지 실종자 가족들이 싸워서 바로잡은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대구시, 검찰, 경찰 등 모두 스스로 하겠다고 나선 일은 별로 없습니다. 대검 특별수사본부가 구성돼 여러 의혹들에 대해 수사하게 된 것도, 중앙지원단이 내려온 것도 희생자 가족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이뤄진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상처를 추스르기도 힘든데 왜 싸워가며 해야하는지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 사회는 정의가 무너졌습니다. 정의를 세우기 위해 몸으로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용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킬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숨기고 조작하려하고 덮으려 하는 즉, 그들의 불의와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정의의 편에 서서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땅의 썩은 세력들은 뿌리뽑혀야 합니다. 목사라는 직분이 이런 행동을 하는데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양심에 비춰 부끄러운 점은 없습니다."

-성직자로서 또 피해자 가족으로서 이 참사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도덕적으로 죽은 도시인 대구에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희생된 분들을 보면 한결같이 순수한 영혼들입니다. 그들을 희생제물로 삼아 이 대구에, 또 교회의 기능을 잃어버린 대구 교회에 채찍을 내리신 것은 아닌가 합니다. "

김 목사의 딸 지현이는 현재 신기중학교 3학년 1반이다. 그러나 2학년 봄방학 때 지하철을 탄 지현이는 그 교실에 한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김 목사는 지난 5일 실종자 가족 대표 4명 중 한사람으로 사체 수습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월배차량기지를 방문했다. 그곳의 '국과수 28번 김지현'이란 표지가 붙어있는 흰 가루와 갈비뼈 대여섯개 앞에서 눈앞이 아득해졌다.

ⓒ 김광재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원래 내가 가기로 돼 있었던 것도 아닌데 우연히 내가 가게 됐습니다. 거기서 내 아이의 유골을 확인한 겁니다. 당시 장면이 잘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며칠전에는 유류품도 확인했습니다. 플라스틱 도시락은 흔적도 없고 스테인레스 수저와 반찬통만 남아 있었습니다."

-목사님 개인적으로는 사망 인정과 관련한 문제는 끝난 셈이군요.
"내 딸아이만 생각한다면 난 뒷전에서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라는 관점에서는 아직 제대로 이뤄진 게 없습니다. 또 아직도 중앙로역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나머지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도 생각해야 합니다. 모두들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참고 기다렸기 때문에 신원확인 작업도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할 것입니다."

-대책위에 위임을 철회하고 개별 장례를 고려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유골이 확인됐다고 하면 가족으로서 누구나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렇지만 형체도 없는 유골을 조금 일찍 받아가면 뭐합니까?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자식을 잃은 마음의 상처는 어차피 평생 가는 것입니다. 이들의 죽음이 그냥 잊혀지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대책위를 중심으로 뭉치자고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면 결국엔 가장 가슴아픈 사람들, 즉 유골조차 찾지 못하는 사람들만 남습니다. 만약 열명이 남고 그 중 아홉이 허위신고자라 합시다. 남은 한사람은 가장 비참한 피해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분들만 외롭게 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함께 해야지요. 허위신고자 몇 명이 이득을 보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겨서는 안됩니다. 당국에서도 철저히 가려내야 합니다. 모두 가려내지 못한다해도 그들은 어떻게든 죗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사고가 난 후 2∼3주 동안 김 목사는 혼자 있을 때면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고 한다. 예배 때문에 집에 들어가는 날에도 뜨거운 전동차 안에서 30∼40분간 발버둥쳤을 아이의 고통이 떠올라 바닥에 누워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한다.

"24년간 목회활동을 하면서 개척교회만 세 번쨉니다. 원칙을 저버리지 않고 외곬수로 목회활동을 하다보니 가족들 모두 힘겹게 살아 왔습니다. 지현이에게도 변변한 옷 한 벌 사주지 못했습니다. 남들 입던 옷 얻어 입혀도 불평 한마디 안 하던 아이였어요. 그 아이 일기장을 보니 '참고서가 필요한데 세금 못내 걱정하시는 부모님 얘기를 듣고서는 말을 못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착한 아이였어요. 이렇게 일찍 갈 줄 알았더라면…."

김 목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저 자식을 잃은 아버지였다. 그의 두툼한 가슴속에 꾹꾹 재워 둔 슬픔이 터져 나왔다. 그의 분노는 그 슬픔의 그림자인 듯 했다. 2∼3주전만 해도 기자들로 붐비던, 지금은 텅빈 대구시민회관 3층 프레스룸에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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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에서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을 거쳤습니다.오마이뉴스 대구/경북지역 운영위원회의 제안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대구경북지역 뉴스를 취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뉴스가 이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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