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3.8 휴게소 전경
3.8 휴게소 전경 ⓒ 이종원
38휴게소

의정부를 거쳐 포천을 지나면 3.8휴게소가 나온다. 벌써 38선이라니…. 다른 휴게소와 달리 이곳엔 통일의 염원이 담긴 탑과 선돌이 세 개나 서있다.

'역사의 쓰라린 현장 3.8선 반만년 이어 내려온 민족의 맥이 끊겨지고 국토의 허리를 잘린 아픔과 실향민의 애뜻한 한이 가슴을 파고든다.' 명문이 탑에 새겨져 있어 더욱 가슴이 뭉클하다.

휴게소 옆엔 38선 오각정이 서있어 묵묵히 강을 바라보고 있다. 해방 후 3.8선이 그어져 하루아침에 개울 건너 이웃이 총부리를 겨누게 된 것이다. 철원사람처럼 슬픈 과거를 지닌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해방직 후 북한 땅이었다가 전쟁 후 휴전선이 새로 그어져 남한 땅이 되었다. 좌익은 좌익대로 우익은 우익대로 그저 줄을 잘못 서게 되면 바로 죽음이다. 이념 때문에 죽어갔고 폭격 때문에 죽어간 비운의 사람들이 바로 철원사람들이다.

삼부연폭포

3번 휘감아 돌고 떨어지는  삼부연 폭포
3번 휘감아 돌고 떨어지는 삼부연 폭포 ⓒ 이종원
신철원에서 우측으로 꺾어지면 기암괴석의 협곡이 나온다. 스산한 기운마저 들 정도로 굽이굽이 돌아가다보면 시원한 물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20여미터의 기암절벽에서 내려 온 물줄기가 3번에 걸쳐 꺾어지며 비경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세 군데의 웅덩이가 있기에 '삼부연(三釜淵) 폭포'라고 불린 것이다.

멋드러진 폭포답게 궁예같은 걸출한 인물이 전설 속에 남아있다. 궁예가 태봉이라는 이름으로 철원으로 왔을 때 용이 이곳에서 승천하면서 바위가 가마모양으로 뚫렸다는 전설이다. 패여진 바위가 용의 비늘처럼 보인다.

이 폭포는 그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기후제를 지내는 명소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물줄기가 생명수이고 철원 쌀의 오묘한 맛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림을 어느 정도 그린다면 겸재처럼 화선지를 꺼내 저 물줄기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는 아버님이 옆에서 얼마나 많이 셔터를 누르던지...

운동경기 관람석처럼 벤치가 놓여져 있다. 편히 앉아서 물이 만들어낸 숨소리를 들어본다.

오룡굴-삼부연 폭포 바로 위에 있다.
오룡굴-삼부연 폭포 바로 위에 있다. ⓒ 이종원
폭포바로 위에는 '오룡굴'이라고 불리우는 천연동굴같은 것이 뚫려 있다. 궁예의 용전설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실제 바로 위 저수지 이름이 '용화저수지'라고 하니..그 전설이 더욱 믿어진다.

* 삼부연 폭포 가는길

<대중교통>
수유리-(직행버스)-신철원-(시내버스)-삼부연(1시간50분소요) 신철원에서 택시로 10분 거리
<자가운전>
서울-(43국도)-신철원-(농촌도로)-삼부연(1시간40분소요)

승일교

승일교
승일교 ⓒ 이종원
구철원 가는 길에 아치형의 승일교가 나온다. 예전엔 승일교를 건넜는데…. 언제 그 옆에 육중한 '한탄대교'가 들어섰는지 모른다. 지금은 다리 역할을 아우에게 넘겨주고 반백년의 힘겨움을 치유하고 있다. 남과 북이 반반식 만들었음을 증명하듯 교각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 진정한 통일다리가 아닐까?

승일교 준공비
승일교 준공비 ⓒ 이종원
이 다리 이름에 대한 논란이 많다. 해방 후 이곳이 북한 땅이었을 때 공사가 시작되어 휴전 후 남한 땅에서 완성되었다고 하여, 김일성(金日成)과 이승만(李承晩)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承日橋)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뜻은 김일성을 이기자는 뜻의 승일교(勝日橋)라는 해석도 있다. 마지막으로 다리 입구에도 새겨진 것처럼 한국전쟁에서 죽은 박승일(朴昇日)이라는 연대장의 이름에서 따왔기에 승일교(昇日橋)라는 것이다.
무슨 이름이면 어떤가? 남과 북이 반반씩 만들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자.

승일교
승일교 ⓒ 이종원
반백년도 넘게 한탄강을 지켜왔고 남북의 반목의 역사를 지켜보았기에…. 더욱 주름이 잡혀있다. 승일교와 한탄대교 사이에 '승일정'이란 정자가 근래 생겼다. 과거와 현대의 다리가 공존하며 나란히 서있어 패기와 경륜이 함께 느껴진다. 이곳에서 바라본 한탄강이 일품이다.

임꺽정의 은신처 고석정

고석정 전경
고석정 전경 ⓒ 이종원
좌측에 보이는 자그만 누각이 고석정이다. 원래 이 누각이 처음 세워진 것은 신라 진평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진평왕이 이곳에서 애뜻한 사랑의 나누었을 것이다. 가운데 20m 높이의 거대한 기암이 우뚝 솟아 있어 아름다운 절경을 연출한다. '외로운 돌'이라서 그런지 더욱 의연하게 보인다. 이름처럼 외롭게 느껴지는 것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굳굳한 소나무 때문이 아닐까?

이곳은 의적 임꺽정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강건너 석성을 쌓고 함경으로부터 조정에 상납되는 공물을 탈취하여 서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그걸 반증하듯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구멍이 드문드문 보인다. 그 작은 구멍에 기어 들어가면 10명의 장정들이 둘러앉을 공간이 나온다고 하니 올라가 확인하고픈 충동이 인다. 관군에게 쫓긴 임꺽정은 '꺽지'라는 물고기로 변신하여 강물 속으로 은신했다고 한다.

억압과 수탈 속에 임꺽정은 희망이었고 그의 죽음으로 민초들은 이 강을 보면서 한탄했을 것이다.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분단의 현장이 지근거리에 있기에 오늘날까지 그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통일되는 날 '한탄강'도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시퍼런 강물 속에는 아직도 임꺽정이 변신한 꺽지들이 자라고 있겠지.

고석정에서 바라본 한탄강
고석정에서 바라본 한탄강 ⓒ 이종원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현무암 분출지이며, 강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처럼 보인다. 강 하류 쪽에 순담계곡으로 이어져 여름이면 레프팅에 발디딜틈이 없다고 하던데….

임꺽정동상
임꺽정동상 ⓒ 이종원
충북 괴산에 가면 고추를 들고 있는 임꺽정을 수 없이 볼 수 있다. 아마도 벽초 홍명희의 고향이 괴산이기 때문에 군의 상징인물을 임꺽정으로 삼고 있나보다. 임꺽정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데 말이다. 역시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도 고석정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다. 지자체에서 임꺽정을 서로 자신의 고장인물이라고 내세우는 것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과연 조선 명종때도 이랬을까?

* 고석정 가는길

<대중교통>
수유리-(직행버스)-신철원-(시내버스)-고석정(2시간소요)
수유리-(직행버스)-동송-(시내버스)-고석정(2시간10분소요)
<자가운전>
기본노선:서울-(43국도)-문혜리-(223국도)-4거리-(463지방도)-고석정(1시간55분소요)

<입장료>
어른-개인:1,500 단체:1,400
군인/학생-개인:1,200 단체:800
어린이-개인:800 단체:500

직탕폭포

한국의 나이아가라 -직탕폭포
한국의 나이아가라 -직탕폭포 ⓒ 이종원
아내에게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자고 했더니 무척 기대를 많이 한 모양이다. 막상 폭포를 접하고는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캐나다에서 직접 보았으니 오죽하겠냐만.... 어쨌든 폭이 80미터정도로 한국에서 가장 긴 폭포다. 높이가 3미터밖에 않아 실망했는지는 모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의외로 볼거리가 많다.

현무암
현무암 ⓒ 이종원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현무암 덩어리가 곳곳에 박혀있다. 이곳에 화산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몇 십년 전에 배웠던 교과서 내용을 생각해내느라고 무척 애를 써본다.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궁예는 구멍이 숭숭 구멍 뚫린 돌들을 보고 "내 운명이 다했구나.." 라고 말하면서 한탄을 했다고 하여 강 이름이 '한탄강'이 된 것이다.

한탄강 기암 절벽
한탄강 기암 절벽 ⓒ 이종원
강건너에는 침식된 비위가 폭포를 더욱 아름다움게 해준다.

도피안사

'피안의 세계에 이르는 절집'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철원의 대평야 가운데 아트만한 야산에 솟아 있는데 그 안에 도피안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근래 중창불사가 한창이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높다란 계단이 나온다. 그 위에 550년을 살았다는 느티나무가 길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그 기나긴 세월동안 철원의 아픔을 바라보았으니..얼마나 힘겨웠을까?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223호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223호 ⓒ 이종원
보물 223호인 도피안사 3층석탑이다. 연꽃의 대좌 위에 탑을 얹은 모습이다. 이런 파격이 있을까? 탑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조형물이고 불상대신 탑신을 얹은 것은 기발한 생각이 아닐수 없다. 팔각 몸돌을 가진 연화대좌에 날씬한 몸돌이 지붕 돌을 바치고 있다. 지붕선 역시 날렵하게 치솟고 있어 저런 곡선이야말로 오늘날까지 이어진 어머님의 버선코가 아닐까?

철조비로자나좌불-국보 63호
철조비로자나좌불-국보 63호 ⓒ 이종원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 쓰여진 하얀 현판이 절 분위기에 맞게 깔끔하다. '가야산인(伽倻山人)'이란 분이 쓰셨는데..누군지 궁금증을 더해준다. 대적광전안에는 국보 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 불상이 앉아 계신다. 팔등신의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육계는 거의 윤곽이 보이지 않으며, 초승달처럼 보이는 눈썹을 지니고 있으며, 살며시 눈을 내리며,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퍼진다.

양어깨를 감싼 법의는 부드럽게 윤곽을 드러낸다. 손가락을 살포시 감싸안은 지권인이야말로 이 불상의 하이라이트다. 삶과 죽음, 해탈과 번뇌는 하나에서 찾으라는 메시지를 부처님은 말하고 있다. 연화 좌대 역시 양감이 뚜렷한 큼직한 꽃잎이 둘러져서 부처님을 받들고 있다.

철불 뒷면에 1,500명이 뜻을 모아 불상을 새겼다는 명문이 나와있어 장흥보림사 철불과 더불어 신라 하대 불교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보림사 철불이 육중한 남성미가 돋보인다면 이 철불은 예쁜 여성미가 느껴진다고 할까?

하도 아름다워 멍하니 불상을 쳐다보고 있는데 내 딸 정수가...귓속말로 속삭인다. "아빠 우리집 카페트하고 똑같애." 하하

철원평야 전경
철원평야 전경 ⓒ 이종원
불전을 나와 뒷동산에 올라본다. 여기까지 참호가 패여져 있다. 철원이야말로 아기자기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요지다. 가히 궁예가 수도로 삼을 만하다. 궁예도 이 철불에 머리를 조아리며 북벌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저 멀리 시원스런 철원평야가 한눈에 보인다. 그 맛좋다는 철원쌀의 고향이 이곳이구나.

석등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 성수
석등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 성수 ⓒ 이종원
두 살배기 성수가 석등을 보고 감탄하고 있다. 과연 피안의 세계는 아이의 눈망울에 있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2편 제 2땅굴-철의 삼각전망대-월정리역-백마고지 위령비-노동당사-철원 감리교회터도 기대해주세요.

http://cafe.daum.net/monol4 에서도 볼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