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불가리아의 국경인 루쎄에서 루마니아를 가기 위해 무려 9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기차는 하루에 두번 뿐이었기 때문이다. 기차로 도나우강을 건너면서 루마니아에 대한 큰 기대로 부풀었던 것이 사실이다. 기차는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카레스트에 우리를 내려놨다.

부카레스트는 평양을 본떠서 만든 도시라고 했다. 때문인지 회색빛의 웅장한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냄새가 짙게 베여있었다. 건물, 도로 등 도시의 모든 것들이 왠지 차갑게 다가왔다. 1월의 추운 날씨는 동유럽이 괜히 동유럽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날씨가 여행자의 마음마저도 춥게 만든 곳이 바로 부카레스트였다.

온국민이 함께 만들어서 피플스하우스?

지하철을 이용해서 이조르 역에서 내리자 한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피플스하우스라는 대궁전이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안 가봐서 비교를 하긴 뭐하지만 그 정도의 엄청난 건축물이었다.

▲ 부카레스트의 피플스하우스 앞에서.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궁궐이었다.
ⓒ 김상욱
들어가자 과연 몸수색을 해야 들어갈만큼 엄청났다. 겉에서 봤을 때 못지 않게 들어가보자 정말 컸다. 기둥, 문, 모든 것이 최고급의 자재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화려한 대리석과 목재, 그리고 금과 보석들. 카펫과 커튼은 금실, 은실의 핸드메이드라고 했다.

옛날에는 주로 황실의 파티라든가 왕가의 생활에 쓰였을 이 궁궐의 방이 무려 3000개, 엘리베이터가 50개에 이르렀다. 방 하나의 크기만 해도 고등학교 강당만 하니 정말 엄청난 규모였다. 방에서 방을 이동하는데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죽하면 궁궐의 모형도 (이 방이 어디고, 저 방은 어디로 가야한다는)를 아예 대리석 바닥과 카펫에 박아놨다. 바닥과 카펫의 이 모형도를 보고 찾아가라는 뜻이었다.

얼마나 많은 루마니아 국민들이 이 궁궐을 만들기 위해 참여했을까? 이름이 피플스하우스인건 아마도 온국민이 만들었다고 해서 지어진 것은 아닐까? 궁궐은 박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국제회의와 국가적인 의전행사에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돈... 돈... 돈때가 잔뜩 묻은 사람들

▲ 부카레스트의 지하철에서. 여행자는 아마 누구나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인연을 꿈꿀것이다. 우연히 옆에 앉게 된 사람과도.
ⓒ 김상욱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으로 여행지에 대한 이미지도 대개 매겨지곤 하는 것이다. 여행중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결국 여행지도 대개 좋게 기억되곤 한다.

그 반대의 경우가 바로 부카레스트였다. 루마니아는 이제까지 다녀본 그 어느 나라보다도 사람들이 많이 때묻어 있었다. 별로 순수하지도 않았고 돈 욕심을 보이는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정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을 주로 만난 탓에 부카레스트에 대한 기억조차 그리 좋지 못한 것 같다.

담배를 쉬지 않고 피워대며 철저히 상업적인 호텔의 주인할머니가 그랬고 기차역에서 만난 한 청년이 그랬다. 그 청년은 우리를 도와주겠다며 접근하더니 나중에는 돈을 내놓으라고 돌변했다. 외국인에게 친절한 청년쯤으로 생각했기에 실망이 컸다. 결국 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루마니아는 집시가 꽤 많았다. 길에서 집시를 집단으로 구타하고 있어도 말리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집시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었다. 기차에서 만난 한 집시거지 소년은 신발에 입을 맞춰대며 돈을 요구했다. 가래침을 뱉으려는 시늉을 내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는 모습에 많이 당황했던 것이 사실이다.

부카레스트를 여행하며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지게 되는 이미지는 뭘까? 하는 생각을 거듭 해볼 수밖에 없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