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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요즘도 그런지 모르지만 나의 초등학교 시절엔 3학년때부터 일주일에 2번씩 도시락을 쌌던 것 같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수업 중 두번만 오후까지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항상 1,2학년때는 오전 수업만 했던지라 3학년인 나와 나의 반 아이들에게 학교에서의 점심 시간은 신기하면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3학년때 나의 담임 선생님은 밥먹을 때는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면서 꼭 짝꿍이랑만 같이 먹게 하셨다.

밥보다 반찬 통이 더 큰 아이, 마치 하나의 작품을 보여주는 듯 은박지에 보기좋게 5~6가지씩 싸여진 반찬들, 햄과 옷갖 맜있는 음식이 가득한 반찬들 등 점심 시간때의 아이들의 반찬은 가지각색이었다. 마치 '반찬이 맜있는 반찬이냐, 아니냐'는 그 반찬을 싸온 아이의 가정 형편이랑 정비례하는 듯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의 짝꿍(왜 짝꿍이란 단어를 그 당시 쓰게 되었는지 아직도 모름)은 '아주 잘 사는 집의 아들이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에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항상 어머니께서 싸주시는건 김치볶음, 감자볶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김치볶음하나만으로도 최고의 반찬이라 생각되지만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들에겐 흔히 인기가 없는 반찬 중에 1위가 바로 김치볶음, 감자볶음이었다. 창피할 때도 솔직히 많았지만, 난 한번도 그런 반찬을 싸주시는 어머니를 원망해 본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 하기 전에도 우리집 형편상 난 유치원을 한번도 다녀본 적이 없었다. 또 생일이 빨라서 학교를 일년 일찍 들어가게 되었던 지라 6살때부터 어머니께서는 헌책방에서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를 사서 나에게 가르쳐 주셨다.

어머니역시 회사 생활을 하시느라 바쁘셨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자식의 교육인지라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많이 신경을 쓰셨던 것 같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맞기도 많이 맞았지만,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쯤엔 벌써 한글이며, 구구단까지 줄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아마 그때가 입학하기 몇일전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유치원 졸업모 쓰고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으면 나중에 서운할까봐서였는지 난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사진관에 가서 사각모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넌 유치원도 한번도 안다녔지만 유치원 다닌 애들보다도 더 한글도 잘 알고 구구단도 잘 하니깐 절대 기죽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당연하지. 난 공부도 잘하고, 이렇게 싸움도 젤 잘하는데? 엄마 내가 구구단 외워볼까?"
"그래 한번 외워봐."
"좋아, 이~~일은 이, 이~이 사, 이~~삼은 육…."

이미 구구단은 누워서 떡먹는 것보다 쉬웠던지라 자신있게 엄마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외우면서 집으로 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아마 그당시부터 난 이미 가난에 적응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가난에 대해 창피하지도 부자인 애들이 부럽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곤 했었다.

이런 나였기에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는 자체가 즐겁고 신나는 것이었지, 반찬이 좋고 나쁜 것은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점심시간 나의 반찬은 항상 김치볶음, 감자볶음이었지만 항상 내 짝꿍은 당시 우리들에게 최고의 반찬이었던 소세지, 햄, 돈가스 등만 싸왔다.

자연스레 짝꿍이랑 점심을 먹으면 짝꿍 반찬은 먼저 다 없어지지만 내 반찬은 나만 먹기에 항상 남아 있었다. 내 입장에서야 짝꿍 반찬 없어도 내 반찬이 있으니 밥을 다먹을 수 있었지만 내 짝꿍은 내 반찬이 맛이 없었는지 더 이상 밥을 먹지 않고 항상 밥을 남겨 갔었나보다.

짝꿍 엄마는 밥을 항상 남겨오는 아들을 이상하게 여겨 이유를 물어보았고, 이유를 듣게된 내 짝꿍네 엄마는 우리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다음 날이었다. 여느때처럼 점심 시간이 되서 짝꿍이랑 밥을 먹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짝꿍이랑 밥먹는 모습을 보더니 나를 부르시는 거였다.

"너는 항상 무슨 반찬을 싸오니?"
"그냥 엄마가 싸주시는 반찬 가져오는데요."
"그럼 넌 왜 니 반찬 안먹고 니 짝 반찬만 뺏어먹는 건데?"
"뺏어먹는 것이 아니라 같이 먹는 건데요. 저 뺏어먹은 적 없어요."

조금 억울한듯 나는 말했지만 선생님께서는 그걸 믿지 않으셨나 보았다. 그러시면서 조금 큰소리로 다그치셨다.

"너도 OO이가 싸오는 반찬을 너희 엄마에게 싸달라고 하면 되잖아."
하시며 내 자리로 오시더니,

"너는 왜 이런 반찬만 싸오는 건데? 니가 이 반찬이(짝꿍을 반찬을 가리키며)좋으면 너도 엄마에게 이런 반찬 싸달하고 해라. 알겠니? 선생님이 전화해줄까? 너희 엄마에게?"
"아니요. 그냥 제 반찬만 먹을게요."

이미 내 주위에서 우리 반 애들이 내 반찬을 보고 있었다. 정말 처음으로 창피함을 느꼈다. 쥐 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 이런 심정이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듯 내 자리로 온 난 그냥 다시 밥을 먹었다. 이런 나에게 미안한 듯 내 짝꿍은 아무말 안하고 밥을 먹고 있었다.나 역시도 짝꿍처럼 맛있는 반찬을 먹고 싶은 건 당연한데 이런 나를 이해해 주지 않고 나무라듯 말씀하신 선생님이 정말 원망스러웠고 미웠다.

그러나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고, 그냥 밥을 먹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나왔지만 그냥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방금 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넌 왜 이런 반찬만 싸오는 건데. 넌 왜 이런 반찬만 싸오는 건데?'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난 내밥만 쳐다보면서 보란듯이 맛있다는듯 내 눈물과 함께 어머니가 싸주신 밥을 다먹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난 유학 생활을 하는지라 혼자 밥을 먹을 때가 많다. 가끔씩 혼자 밥을 먹을때면 어머니가 해주셨던 김치볶음과 감자볶음 생각이 절실할 때가 많이 있다. 그리고 그 김치볶음과 감자볶음이 생각날 때면 가끔 그때의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생각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넌 왜 이런 반찬만 싸오는 건데"라고 선생님께서 물으셨을때 당당히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만들어주신 김치볶음이랑 감자볶음이 제일 맜있는 걸요?"하고 큰소리로 말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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