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줄었다. 타 지역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구시민들조차 담담해졌다. 그리고 논의의 중심이 사고 원인 및 책임 규명에서 벌써 국가 지원확대,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 추모사업 등으로 옮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8년전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사고를 취재한 후, 동료들과 ‘앞으로 이런 엄청난 사고를 취재할 일은 다시 없을 것’이란 얘기를 주고 받은 기억이 난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던가. 대구는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배울 마음이 없다. 얻은 것이라곤 대형사고에 대한 내성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가고 있다.

사고가 터지면 관의 목표는 언제나 ‘조기수습’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시는 이런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뒷전이고 오로지 조기수습만이 목표였다. 진상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현장보존의 중요성은 조기복구 논리 앞에 완전히 무시당했다. 쓰레기 더미에서 유해 일부와 유류품이 발견되기까지 했다.

이번 사고의 발생 및 사후 대처에서 지하철공사, 소방본부, 대구시, 검찰, 경찰 등 관련 기관 모두에게 일정부분 책임져야 할 잘못이 있다. 피해자 가족들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가리겠다고 나선 꼴이니 수사든 진상규명이든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13일 실종자가족들이 왜 현장훼손에 대해 수사하지 않느냐고 따지자, 수사본부장은 “책임을 타 기관에 떠넘긴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사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진상이 왜 밝혀지지 않고 있는지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지원 확대돼야’, ‘U대회 성공적 개최를 위해’는 등의 주장이 일부 지역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다함께 힘을 모아’식으로 대구의 민심을 추스르자는 말도 나온다.

다 좋은 말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두루뭉수리로 넘어가려고 하니 시민들 사이에서는 ‘또 그 타령이냐’는 냉소주의가 퍼져나간다. 대구지역의 한 시민운동가는 “참사의 진상 및 책임 규명을 놓고 대구의 기득권자들이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시간을 끌며 잠잠해 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나고야시는 지난달 23~25일 소방국 직원 4명을 대구 참사 현장으로 파견, 조사를 벌였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이들은 ▲우선 배연하는 것이 기본인데도 대구소방당국이 송풍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 ▲스프링클러와 소화전이 같은 배관을 사용하고 있어 소화전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음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고 한다. 또 ▲나고야 지하철의 좌석과 차체 일부가 대구 것과 같은 재질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나고야 지하철도 맞은편 차량과의 거리가 1.3미터로 대구와 같다는 점 등을 확인했다고 한다.

얄밉도록 부럽지 않은가? 우리는 왜 로또복권 814만 분의 1이란 확률에 온 나라가 떠들썩해 졌으면서도 대구의 지하철 이용자 13만 중 수백명이 사망하는 ‘높은’확률에는 무감각해지는가? 하위직 몇 명 구속한 것 외에 아직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이번 참사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다 공개 되어야 한다.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항이라도 낱낱이 밝혀,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대구시의 대책이란 뻔하다. ‘안전점검 철저’ ‘비상대피 훈련 확행’ 등의 상투적인 용어만 난무할 것이다. 그런 대책은 또 다른 참사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그만 덮고 U대회 잘 치르고 지역경제 살리자’는 주장을 하는 기득권층은 서민들의 억울한 죽음은 외면한 채 기득권 유지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남일보에서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을 거쳤습니다.오마이뉴스 대구/경북지역 운영위원회의 제안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대구경북지역 뉴스를 취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뉴스가 이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