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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닮아서 저렇게 빠른거야."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부모들은 닮은 점을 찾기 마련입니다.
"날 닮아서 저렇게 빠른거야."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부모들은 닮은 점을 찾기 마련입니다. ⓒ 조경국
“어따 빠르다.”
“백 미터 10초안에 들어 오것네.”
“다리도 짧은 아가 누굴 닮아서 저리 날래노.”
“다 운동 신경 좋은 내를 닮아서 그렇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좁은 집안을 냅다 달리고 있는 아이를 보고 아내와 저는 아이가 누굴 닮았는지 시비를 가리느라 잠시 열을 올립니다. 결국 운동 신경은 아내를 닮은 것으로 다리가 짧은 것은 절 닮은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처음 아이를 낳았을 때는 생김새가 누굴 닮았는지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행동에 대한 비교 분석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씩 웃고 지나가려는 모습은 아빠 닮았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은 엄마 닮았고, 온 방을 어질러 놓는 것은 아빠 닮았고, 욕심 많은 것은 엄마 닮았고... 이런 식입니다.

아무리 깡총거리고 뛰어놀던 아이도 잠시 자신만의 생각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깡총거리고 뛰어놀던 아이도 잠시 자신만의 생각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 조경국
아이가 커 가면서 여러 가지 행동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만,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과 닮은 점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부모로서 당연한 통과의례입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말입니다.

지금이야 아이가 ‘닮았다, 닮지 않았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놓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엄마, 아빠랑 누구를 닮았나’라는 말은 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아이를 두고 부모가 편가름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나마 이 정도는 약한 것입니다.

‘닮았다, 닮지 않았다’보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말은 아이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주는 노골적인(?)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거나 답해야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는 그때의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지기 마련인데 아이들에겐 그 순간이 얼마나 힘든지 어른들은 알지 못합니다. 어른들에겐 그냥 ‘툭’ 던지는 사소한 질문일 뿐입니다.

어른들이 무심코 던진 질문이 아이에겐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실제로 이런 질문이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곤란한 상황에 놓이는 셈입니다. 어쩌면 ‘과연 날 좋아한다고 할까’ 아이의 대답을 기다리며, 망설이는 아이의 모습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같은 편가르기 질문은 하지 마세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같은 편가르기 질문은 하지 마세요. ⓒ 조경국
하지만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 중 누가 좋은지, 누굴 닮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지요.

“아빠한테 뽀뽀한번 해조라” 조르는 아빠를 무시하고 쪼르르 엄마품에 안깁니다.
“엄마, 꼬기(고기)”
“고기 없다. 밥 다 묵었다.”
“아빠가 뽀뽀한번 해달라는데 엄마한테 가서 고기 달라카노. 니가 평소에 맛있는 걸로 아를 꼬신 거 아이가.”
“꼬시기는 엄마가 더 좋아서 그렇지. 아한테 한번 물어봐라. 누가 더 좋은지.”
“해목아, 아빠가 좋나 엄마가 좋나. 응?”

아직까지 이런 질문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엄마에게 가버릴 만큼 당돌하지만 두 해만 더 지나도 온갖 고뇌에 휩싸인 아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때쯤이면 저와 아내도 철이 들어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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