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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제가 당신을 의원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한 마디로 충분한 예의를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신한국당에 들어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원내총무를 하면서 '노동법 날치기 통과'의 주역이 되는 모습들을 보아오면서 제게 이재오란 '호명'이 가져다주는 것은 씁쓸, 분노, 부끄러움 등등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당신의 선택이기에 존중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오히려 그런 당신이 있기에 소위 우리 386 세대들은 최소한 당신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자위 아닌 자위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와 가진 당신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피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전 최소한 당신의 마음 한 구석에는 일말의 부끄러움이랄까, 뭐 그런 감정들이 남아 있을 줄 알았습니다. 비록, 당신이 선택한 길로 인해 정치판이라는 흙탕물에 발을 디딘 이상 어쩔 수 없이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할지라도 당신의 마음 속 한 구석에는 번뇌와 고민의 흔적이 녹아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생각들이 그야말로 철없는 아이의 우매함이라는 걸 오늘 새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당신의 인터뷰 기사 몇 구절을 옮기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나는 민중당 시절에 그런 교훈을 얻었다. 내가 그토록 민중을 위해 정치한다고 했지만 민중들은 나에게 표를 안 찍어주고 우리를 외면", "그러면 정말 민중을 위한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국회의원도 안하고 밖에서 비실비실 놀면서 말로만 '민중, 민중'하면 그것이 민중을 위한 정치가 되는 것인가. 아니다. 현실정치에 뛰어들어가야 정치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러면서 "나는 민중당 사무총장을 하면서 민중이 정치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출발했고, 지금까지 그 정신에서 조금도 후퇴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민중이 주인되는 정치를 하기 위해 무수히 노력했는데, 민중들이 표를 안 찍어주고 외면했다. 그래서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 국회의원을 하기 위해서 '현실정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군요.

네에, 맞습니다. 말만으로는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강조하지 않으셔도 누구나 다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제가 당신의 이 말에서 느끼는 건 '민중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당신이 제도권 정치에 뛰어든 걸 변명하려는 논리로밖에 안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제가 삐딱하게 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제가 삐딱한 게 아니라 당신이 너무 멀리 우리 곁을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함께 그토록 민중을 위한 정치를 위해 노력했던 대다수는 아직도 그 민중들 곁에 서 있습니다. 더러는 당신 같이 제도권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하고 또 더러는 현실의 생활고를 이기다 못해 소시민적 삶으로 돌아가버린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도 노동현장에서 땀흘리는 사람도 있고, 투쟁의 현장에 말없이 나타나기도 하고,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에 진보정당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은 지난 총선에서 8% 가까운 정당득표율을 기록하고 지난 대선에서 100만표에 가까운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을 외면했던 그 민중들이 당신과는 달리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던 사람들에게 지금 이렇게 표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나는 노력했지만 민중들이 나를 버렸다'고 말하면서 '현실정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니 제가 삐딱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당신의 말에서 자기합리화밖에 못 느끼는 건 오히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 정도는 다음과 같은 당신의 '개그성' 발언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입니다.

"나는 국회 16대 들어와서 제대로 야당을 지켰다. 보수나 진보를 떠나서 권력의 부패와 맞서는 야당으로서 한나라당의 입지를 굳히는 데 기여했다. 그것은 남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나라당에 없었다면 한나라당이 지금 야당으로서 모습을 갖췄겠는가. 이런 점에서 나를 봐야지 '민중당'도 하고 '재야'도 하던 이재오"로만 보면 정치를 겉만 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솔직히 당신의 이 발언을 보고서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가 차서 웃음밖에 안 나온다는 표현이 적당할까요? '야당으로서의 한나라당의 입지를 굳히는데 기여'했고, '우리(아마도 이 '우리' 속에는 김문수 의원도 포함되겠죠?)가 한나라당에 없었다면 한나라당이 지금 야당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이런 측면에서 당신 이재오를 봐 달라는 말씀이시군요.

네에,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철저하게 이런 측면에서 이재오란 사람을 보아 드리겠습니다. 이렇게만 본다면 앞에서 제가 언급했던 것처럼 당신의 마음 한 구석에 일말의 고뇌와 번민이 있지 않겠나, 하는 저의 그 철없고 순진한 생각일랑 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죠. 제가 그 동안 너무 당신을 몰랐었던가 봅니다. 제 스스로는 세상을 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걸 보면 저는 아직도 참 많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당신의 인터뷰를 보면서 당신의 새로운 모습들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당신의 바램대로 당신을 보아 드리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당신에게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발 '민중당의 정신'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느니, 아직도 '진보주의자'라느니 하는 말은 더이상 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이 말을 믿고 싶습니다.

"나는 국회의원이 됐을 때나 안됐을 때나 내 개인을 위해 비굴하게 살아본 적이 없고, 개인 이익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내 스스로 돌아봐도 정의에 어긋나거나 상식에 어긋난 일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당신의 이 말을 제대로 지키려면 당신은 결코 '민중당의 정신'이니 '진보주의자'라는 말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투쟁의 전선에 노동의 현장에 진보정당 건설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그 '정의에 어긋나거나 상식에 어긋난 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라도 당신은 민중당의 정신이니 진보주의자니 하는 말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됩니다. 진보주의자가 아닌 이재오, 민중당의 정신을 버린 이재오란 사람으로서의 현재의 당신과 위의 말은 충분히 양립 가능할 수도 있지만 민중당의 정신을 간직한 이재오란 사람과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지난 96년 말 '노동법 날치기 통과' 때문에 부끄러워 지금까지 금배지 안 달고 다니신다구요? 새삼스럽습니다. 당원으로서 당에서 시키는 일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부끄러워 금배지를 안 달고 다니신다구요? 이런 것 조차 부끄러워하시는 분이 위에서 제가 예로 든 것과 같은 말씀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실 수 있다는 게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아마 이 의문이 당신의 그 긴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내내 저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다음의 한 단어와 근접조우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궤변'이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어쩌면 이건 당신과 나의 생각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차이'는 쉽게 좁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맞다 틀리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다시 한 번 간곡하게 부탁드리건대 제발 '민중당의 정신'이니 '진보'니 하는 말들은 절대로 입에 올리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치적'(?)으로 내세우는 그 한나라당의 '야당세우기'에나 더욱더 일로 매진해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이만 접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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