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오마이뉴스 이승욱
2003년 3월 5일은 대구지역 검찰과 경찰 양 수사당국이 생긴 이래, 치욕스런 '최악의 날'로 남게 됐다.

민주당 함승희, 박상희, 송석찬, 유제규 의원 등 민주당 진상조사단이 5일 오후 대구를 찾았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대구지하철 참사현장에 대한 현장보전 '실패'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해 대구를 찾은 것.

진상조사단은 이날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 화재사고 수사본부와 대구지검을 잇따라 찾았다. 사실상 진상조사단의 대구방문은 수사초기 대응부터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검·경에 대한 질책성 의미가 강한 만큼, 검·경 고위 관계자들은 의원들의 '추궁'에 혼이 났다.

#1. 수사본부 -
"테러 현장 방치, 수사기관 없는 것과 같다"..."명심하겠다"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대구시 경찰청장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대구시 경찰청장 ⓒ 오마이뉴스 이승욱
대구시경 유광희 청장의 '브리핑'은 검사출신 함승희 의원이 던지는 질문에 가로막혔다. 함 의원이 대구참사에 대한 경찰의 인식을 문제 삼았다.

-"이번 지하철 참사는 단순 사고가 아니라 전형적인 테러라고 생각합니다. 경찰은 어떤 시각으로 접근했습니까?"
="(사고개념의) 참사로 접근했습니다"


유 청장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함 의원은 "(경찰이 사건 발생 초기부터) 단순한 신병비관의 우발적 범죄로 단정지었기 때문에 테러로 보지 못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라면 현장보전이 무엇보다 생명인데, 출발점부터 사고로 인한 참사로 봤기 때문에 현장보전의 강도가 달랐다"고 나무랐다.

함 의원에 이어 국회 행자위 소속 송석찬 의원이 배턴을 이어받았다. 송 의원이 "현장보전에 대한 책임추궁은 누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유 청장은 "현장보전을 엄격하게 하지 못한 것은 경찰에서 잘못도 있다고 인정한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중앙로역) 물 청소는 누가 지시했냐"고 따져 묻자 "우리가 (지시)한 적 없다. 개인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물청소는 아마 대구시가 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또다시 함 의원이 나서 현장에 있던 사고차량의 월배 차량기지로 이동시킨 것과 사고현장에 대한 훼손문제와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따졌다. 함 의원은 간간이 "긴 얘기하지 말고", "분명히 말해라", "법사위 열어서 감사할 테니까 확실히 말해라"는 등 목소리를 높이며 추궁했다.

"차량 이동의 최종 책임자는 누구냐"는 함 의원의 질문에 조두원 수사과장은 "국과수 전문감식팀의 (차량을 이동시켜도 된다는) 건의를 받아들여 검사 2명과 함께 결정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함 의원은 "국과수 감식팀은 DNA 검사 등 세부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지 현장 보전을 하는 것은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또 사고 당일 저녁과 다음날 오후부터 일반인들이 출입하는 등 현장보전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현장보전의 책임은 수사기관에 있다. 이게 거꾸로 돼 유족들이 증거보전 신청을 법원에 낸다는 게 언어도단 아닌가"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어 함 의원은 "공권력이 살아있는 국가에서 범죄현장을 방치할 수 있냐. 왜 그런가. 수사기관이 없다는 것이나 똑같다"고 따지자, 유 청장은 "명심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2. 대구지검 -
"검찰 신뢰 땅에 떨어졌다"..."의원님들 지적, 유념하겠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진상조사단의 공세는 검찰에서도 그 강도가 누그러들지 않았다. 검찰청사 앞에까지 마중 나온 대구지검 김영진 검사장이 "여기까지 오시게 해 면목이 없다"고 인사를 건네자, 함 의원은 "수사가 바쁘신 데 찾아와 미안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형식적인' 짤막한 인사가 끝나자, 앞서 경찰과 마찬가지로 검찰 수뇌부도 진땀을 빼야 했다. 진상조사단은 이 자리에서 검찰이 수사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의원들이 "경찰에 따르면 검사가 현장에 나온 시각이 18일 오후 8시쯤이라고 하는데 왜 늦었냐"고 따졌다. 하지만 검찰 측은 "사실과 다르다"며 "검사들이 사고 당일 오후 2시쯤부터 현장에 있었다"고 말했다.

함 의원은 "검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수사지휘 능력에 대한 평가가 위험수위에 있다"고 질책했다. 함 의원은 또 "사건 초기부터 경찰과 검사가 협력해야 했다. 사건의 규모에 상응하는 형태의 수사본부를 꾸려야 했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김 검사장은 "경찰이 현장에서 적절히 대응하고 있었고, 보고를 계속 받고 있었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법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함 의원은 "최근 수사권 독립 이야기가 나오고, 얼마전 치사사건이 있어서 그렇지만,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강력 사건이 아니라 대형사건이었는데 검찰의 신뢰회복 차원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고 꼬집었다.

대구지검 김영진 검사장 등 관계자들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대구지검 김영진 검사장 등 관계자들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하지만 다시 검찰 측이 "수많은 경찰이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데 경찰의 사기진작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고 말하자, 의원들은 "사건처리를 이렇게 해놓고 경찰 사기를 걱정할 처지냐"고 받아쳤다.

이날 1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 내내 의원들의 질책이 이어질 때마다 김 검사장은 "의원님들의 지적은 앞으로 유념하겠다"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이날 진상조사단 소속 의원들의 질책은 '땅'에 떨어진 검·경 양 핵심 수사기관의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수사의 기본이라는 현장보전에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책임은 수사권 독립을 바라는 경찰에게도, '정권의 시녀'·'피의자 치사사건' 등 오명을 씻어야 하는 검찰, 양측 모두에게 길고도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됐다.

진상조사단 "검찰, 현장훼손 책임자 수사하라"
사실상 조해녕 대구시장 수사 촉구

민주당 진상조사단은 5일 대구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현장훼손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기 위한 수사를 촉구했다.

진상조사단 함승희 의원은 대구지검 김영진 검사장에게 "중앙로역 물청소 등 현장훼손 행위에 대해서 경찰도, 검찰도 책임이 없다면 책임 있는 당사자를 찾아 수사당국에서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 의원은 또 "이 문제는 반드시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특수부에 배당해 수사를 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함 의원은 "현장을 훼손할 목적이 없었더라도 현장이 훼손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검시방해죄로 수사를 해야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검사장은 "유념하겠다"는 말로 짧게 답했다.

진상조사단의 이날 수사촉구는 사실상 조해녕 대구시장을 겨냥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검찰 관계자들에게 "대구시장이 현장에 사고 수습을 지휘한 것으로 안다"면서 "경찰 등이 허락하지 않은데도 조 시장이 현장을 훼손시켰다면 수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특히 지하철참사 시민사회단체 대책위가 5일 현장훼손 등의 책임을 물어 대구시장 등을 고발함에 따라 검찰로서도 수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지검 한 관계자도 "고발장이 접수된 마당에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냐"고 이를 뒷받침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