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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크기로 추정되는 사리가 함양 용추사에서 발견돼 불교계와 학계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대 크기로 추정되는 사리가 함양 용추사에서 발견돼 불교계와 학계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 박유제
용추사 주지 선해스님이 발견, 보존해오던 이 사리는 모두 7과로 콩알 만한 크기에 맑고 투명한 진주 빛을 띠고 있다.

이 사리는 지난 2000년 봄 용추사 명부전 시왕전(龍湫寺 冥府殿 十王殿)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지장보살(地藏菩薩) 복장속에서 발견, 도난 등을 우려해 한동안 감춰두었다가 공개하게 됐다.

발견 당시 사리는 5㎝가량의 일자창 모양의 한지에 둘러싸인 다음, 다시 오지창 모양의 한지에 쌓여 원통형 구리로 된 사리용기에 보관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용추사가 한국전쟁 당시 아군에 의해 방화로 전소, 1500여년 이어져 온 역사의 단절로 인해 사리의 주인 등 구체성이 결여되고 고증에 대한 확인이 아직 미흡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용추사는 이번 사리를 사월 초파일을 전후해 신도들과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다음 오는 음력 7월 15일 용추사 옛 대웅전터 사리탑에 안치할 예정이다.

선해 스님은 "사리를 처음 발견했을 당시 그 광채와 오묘함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비함과 불성을 느꼈다"며 "우리 역사속 대선사의 무한한 정신의 결정체가 세상에 빛을 쏟아내는 듯한 느낌에 아찔함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1700여년 이후 발견된 국내 선사들과 비교,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크다"며 "정확한 사실여부는 학계와 불교계의 고증을 거쳐 확인하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추사는 신라 소지왕 9년(487)에 각연대사(覺然大師)가 창건한 옛 장수사(長水寺)와 4대 부속 암자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로서, 해인사(海印寺) 창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보다 315년 앞서는 고찰이다.

용추사는 어떤 절인가?
무학대사 은신한 암자 현존하는 고찰

용추사(龍湫寺)는 원래 덕유산 장수사(德裕山 長水寺)의 4대 부속 암자중 하나였다.

장수사는 신라 소지왕 9년(487)에 각연대사(覺然大師)가 창건한 사찰로 해인사(海印寺) 창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보다 315년 앞서는 고찰이다.

장수사에는 여러 암자가 있었다. 동쪽에는 도솔암(兜率庵)이 있고, 서쪽에는 백련암(白蓮庵), 북쪽에는 용추암(龍湫庵)과 은신암(隱身庵)이 있었다.

또 서흥암(瑞興庵) 원적암(圓寂庵) 견성암(見性庵) 영악암(靈岳庵) 보제암(普濟庵) 천진암(天眞庵) 태조암(太祖庵) 무주암(無住庵) 등 여덟 암자와 성인 각연(覺然) 조사의 진신을 모셔둔 부도암(浮屠庵). 장수사부터 북쪽으로 40리쯤에 영취(靈鷲)의 수방암(數房菴)과 동쪽으로 50리쯤에 망월암(望月庵)이 있었다. 심진(尋眞)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모두 장수사 소속이다.

장수사는 많은 화재를 입었다. 기록상 남아있는 자료를 토대로 보면 강희 19년(1680) 대화재를 만나 창건 후 1천년에 만에 지금은 불타 없어진 장수사로 터를 옮겨, 1681년 봄에 불사(佛事)를 시작해 1690년 가을에 끝마쳤다.

결구 형태가 견실하고 치목수법과 장식성이 뛰어나 일주문으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큰 규모를 갖춰, 지난 1972년 경남유형문화재 54호로 지정된 ‘덕유산 장수사 조계문’은 바로 이 무렵인 1711년에 건립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장수사는 1734년 11월 초하룻날 새벽 다시 한번 대웅전 위에서부터 화재가 발생, 모두 불타버렸지만 1735년 영남과 호남지역의 여러 사람들의 힘을 합쳐 복원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전쟁 당시 공비토벌이라는 명목하에 아군에 의해 소실되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장수사는 지금까지 3번의 대화재를 만난 셈이다.

장수사의 암자인 용추사는 지난 1953년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봉황대에 별원을 차려 놓았다가 옛터의 복원을 추진해 1959년 재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편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발자취를 감추고 세상에 숨어서 암자에 살았던 곳이 바로 은신암(隱身庵)이며, 무학대사가 은신(隱身)했던 이 암자는 지금도 현존하고 있다.

또 장수사는 설파 상언대사(雪坡 尙彦大師)가 전국의 승려들을 모아놓고 화엄경(華嚴經)을 강의했던 유명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 박유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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