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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국
봄이 오는 것이 못 마땅한지 멀어져 가던 겨울이 매섭게 고개를 돌립니다. 입춘이 지나 봄인가 싶더니 그새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쌀쌀해 졌습니다. 움츠렸던 어깨를 펴려고 했는데 촉수 눌린 달팽이 마냥 다시 고개를 파묻습니다. 그래도 불어오는 봄바람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 특히 지난 겨울은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모두 풀어놓을 수는 없으나 저에게 있어 가장 큰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2002년 12월31일을 끝으로 다사다난(?)했던 20대를 접고 서른 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조경국
서른 살이 되었다는 것이 별 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12월31일 그 날만은 이은미씨가 부른 '서른 즈음에'를 수없이 반복해서 들으며 평소에 잘 피우지도 않던 담배를 한갑이나 소진했습니다. 니코틴에 절은 쾡한 눈으로 2003년 해맞이 소식을 TV로 듣고 결국 피곤에 지쳐 기진맥진 잠이 들었습니다.

올해 서른 살이 된 74년생(만으로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다고 우길 수도 있겠지만) 호랑이띠 갑장들은 아마 그 날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서른 살이 되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소설의 도입부를 써놓고 생각의 우물이 말라버린 작가와 같은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 조경국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스무 살 시절이 돌아올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린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신의 섭리이지만 그 날 하루만은 참으로 야속하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럭저럭 한 달이 지나고 보니 그새 세상에 묻혀 그때가 언제였냐는 듯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시간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은 기억을 좀먹고 산다'지만 그때 그 쓰라렸던 감정은 어디로 갔는지 실낱같은 흔적일랑 찾아보려 해도 도대체 더듬어볼 수조차 없습니다. 그렇게 서른 살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이립(而立)'은커녕 궁여지책조차 변변히 내놓지 못하는 주제에 꽃다웠던 스무 살 시절 돌아보아 뭐하나 쓰린 가슴을 한 모금 담배로 달래던 그 날 기억은 가물가물 흐리기만 합니다.

ⓒ 조경국
사설이 길었습니다. 12월31일의 그 기억처럼 이번 겨울도 하루하루 흔적을 지우고 있습니다. 가버린 나의 이십 대에게 깊숙한 허벅지 태클이라도 걸어보고 싶은 저처럼, 겨울도 오는 봄을 시샘하고 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왕 갈 거라면 깨끗이, 남김없이 미련을 버려야 하는 것이 바른 처신입니다.

어느덧 저는 서른 살의 첫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 가을, 겨울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겨울의 한기가 남아 있는 시퍼런 그늘에서 노란 양지로 손을 뻗으면 내려 쬐는 간지러운 이른 봄 햇살이 벌써 좋기만 합니다. 그렇게 서른 살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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