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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용 내정자.
ⓒ 김주완
청와대 인사보좌관(차관급) 내정자인 정찬용 광주YMCA 사무총장은 "야당과 비제도권 인사까지 폭넓게 수용하는 새로운 인력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 내정자는 10일 <경남도민일보>와 단독인터뷰를 갖고 "노무현 당선자가 제시한 대로 그야말로 대탕평 인사를 해야 한다"면서 "모든 인맥과 연고를 벗어나 노 당선자를 반대한 사람과 야당까지 포함해 두루 인재가 모이는 연못(인력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 내정자는 또 "지금까지는 청와대에 있는 존안자료와 중앙인사위 자료, 그리고 검찰이나 경찰·국정원 자료를 토대로 인사를 해왔으나 그 자료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며 "그들 자료를 기본 틀로 삼되, 그것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한 틀로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천하의 인재를 발굴해 추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식으로 청와대 업무가 시작되면 올 3월쯤 전국 각 지역을 순회하면서 본격적으로 인재 발굴에 나서겠다"며 "이와 더불어 인터넷을 활용한 인사추천도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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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청와대 인사보좌관의 역할과 민정수석과의 관계에 대해 "인사보좌관이 정무직과 국영기업체·청와대 인사에서 필요한 사람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여 천거하면, 민정수석실에서 이를 받아 다시 검증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내정자는 한나라당이 주장해온 DJ정권의 지역편중인사 논란과 관련, "일부 인사의 인사농단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걸 악의적으로 이용해서 증폭시킨 사람들이 있고, 앞으로도 그럴 위험성은 있다"면서 "새 정부에서는 지역과 연고에 상관없이 원칙에 입각한 인사를 할 것이지만, 어느 한쪽 지역에서만 우수한 사람이 살 수는 없는만큼 결국은 지역안배가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노무현 당선자도 지역안배 원칙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섭외 과정에서 정찬용(53) 청와대 인사보좌관 내정자가 광주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은 다소 의외였다. 곧바로 인수위 업무에 투입돼 눈코 뜰 새가 없으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인사보좌관도 중요하지만 광주YMCA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인수인계 하는 업무적 절차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 동안 내가 잘해온 일도 있겠지만, 잘못한 일도 있겠죠. 그걸 후임자로 올 사람에게 정리해주기 위해 지난 토요일 다시 광주에 왔습니다."

10일 오후 6시 광주시 금남로 광주YMCA 앞에서 만난 그는 막 증경이사장(과거 YMCA 이사장을 지냈던 원로)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후임 사무총장 선임문제를 논의할 공식 이사회와 별도로 원로들이 모여 사전 의견을 교환하는 회의였다. 이 자리에서 광주YMCA는 후임 사무총장을 전국에 공개모집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언론과 만나지 말랬는데..."

ⓒ 김주완
인터뷰는 광주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소주잔을 앞에 놓고 이뤄졌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통음인터뷰'가 됐다. 정 내정자는 소주를 시원스레 들이키며 말문을 열었다.

"인수위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한 것(6일) 말고는 사실 언론과 따로 인터뷰를 안하려 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들 언론과 만나지 말라고 충고하더군요. 아무리 언론에서 잘 써준다고 해도 본전을 못건진다는거죠."

이에 기자가 "서울 기자들은 만나지 않고, 지역언론과 인터뷰했다고 하면 서울 언론들이 삐질 수도 있다"고 농담을 건네자 그는 정색을 하고 "그건 제가 감수해야죠"라고 말했다.

그는 전남 영암 출신이지만, 경남 거창에서 17년 4개월 동안 교사와 시민운동가로서 일해온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 언어학과를 나와 지난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75년부터 거창고 교사(그는 강사였다고 했다)를 지냈으며, 거창YMCA를 창립하고 농민운동을 이끌었다. 92년 광주로 옮긴 그는 광주YMCA 사무총장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로 지역시민운동을 이끌어왔다. 경남에서 살게 된 계기부터 물어봤다.

- 75년 거창고 전영창 교장의 권유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전 교장과 원래부터 교분이 있었나?
"없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감옥을 살고 나왔는데, 당시 사귀고 있던 지금의 처가 거창고 교사로 추천을 받았다. 전영창 교장이 이 사실을 알고 처를 통해 나를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여 가서 만났다. 전 교장이 민청학련 사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사흘간 융숭한 대접을 받고 가려는데, 교장선생님이 '우리 학교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했다."

- 당시 거창 생활에서 기억나는 게 있다면.
"전영창 교장선생님과 전성은 교장, 도재원 교장 등 많은 훌륭한 분들과 함께 일했던 게 인생에 큰 보탬이 됐다. 또 전영창 선생님을 모시고 송건호 선생과 김동길 박사·장기려 박사 등 당대의 훌륭하신 분들을 뵈러 다니던 기억도 새롭다. 비록 거창은 학연도, 혈연도, 지연도 없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농민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았던 게 소중한 경험이 됐다."

- 거창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을텐데.
"많았다. 동료교사도 포함된 건장한 남자들에게 불려가 공동묘지에서 '싸가지가 없이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얻어맞은 적도 있다.(웃음) 그러나 그 일이 계기가 돼 그 분들과도 좋은 인연을 맺게 됐다. 그 사람들도 이번에 다들 노무현 후보를 찍었다.(웃음) 또 농민운동가로 유명한 표만수라는 분이 있는데, 이분이 크리스찬 아카데미(기독교 농민교육기관)에 가려는 농민들을 자꾸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나보니 산골짜기에서도 세를 살 만큼 가난한 분이었다. 아예 그를 설득시켜 농민교육을 보냈다. 그후 그는 거창의 청년농민들을 장악해 가장 열성적인 농민운동가가 됐다. 또 허진철 거창적십자병원장도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분이다."

인터뷰 도중에도 거의 5분간격으로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님, 찬용입니다"라며 전화를 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김주완
- 인사보좌관 내정 후 며칠간 어떻게 지냈나.
"YMCA 사무를 정리하는 일과 함께 지역에서 함께 일해온 선후배와 동료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있다. 무거운 책임을 맡아 성실히 해보겠다는 다짐도 드려야 하고, '고향사람이니 덕보자'하는 그런 건 안된다는 것도 전달해야 할 것 같다."

- 후임 사무총장을 공개모집하자는 논의도 있다는데, 본인 생각은 어떤가.
"결정권한은 이사회에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공개모집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뜻을 이사장께도 말씀 드렸다."

- 정 보좌관 발탁을 보고, 제도권과 특정지역에 편중되지 않는 고른 인재의 등용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당선자가 나에게 세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한국의 공직사회의 인사관행에 정실인사가 많았다. 기업체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원칙을 하나 세우자. 그게 첫 번째 부탁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원칙을 실질적으로 바르게 적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묻혀 있는 인재를 찾아내 발굴하는 것이다. 많은 추천을 받을 생각이다. 그걸 바탕으로 우리가 만든 원칙에 의해 천거를 할 것이다. 원칙에 어긋나는 인사는 나도 추천하지 않을 것이지만, 내가 잘못 추천했다 하더라도 당선자가 수용을 안할 것이다. 그러면서 (당선자가) '넉넉하게 합시다. 원칙은 굳건히 지키되 적용은 유연하게 하자'고 했다."

- 인수위 기자회견에서 인사보좌관의 역할과 민정수석과의 관계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많다는 식으로 답변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
"인사보좌관이 정무직과 국영기업체·청와대에서 해야 할 인사에 자료를 모아 정리해서 천거하면, 민정수석실에서 받아 검증해서 다시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된다."

- 인수위 기자회견에서 존안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건 기존의 제도권 인맥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사자료를 만들겠다는 뜻인가.
"그렇다. 지금까지 인사를 하는 자료가 청와대에 있는 존안자료, 중앙인사위 자료, 그리고 경찰이나 검찰이나 국정원 자료를 토대로 했는데, 그 자료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을 기본 틀로 삼되, 다른 한 틀로 좋은 사람을 발굴해 연못을 만들고, 그 연못에서 개혁성이 필요한 자리엔 개혁적 인사를 추천할 것이고, 경영능력이 필요한 곳엔 그런 사람을, 공공성이 필요한 곳엔 거기 걸맞는 사람을 추천할 것이다."

-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거창고 인맥, 민청학련 인맥이 뜬다'는 식의 '연고주의성 보도'가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다. 연고주의를 벗어나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면 (나는) 고향이 전라도고, 경상도서 17년4개월을 살았지만, 사람의 연고란 한계가 있다. 당선자 제시하신 견해대로 그야말로 대탕평 인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연고를 떠나 두루 함께 모이는 연못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 거기엔 야당이나 노무현 당선자를 반대한 사람들도 포함되나.
"그렇다.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 정 보좌관의 발탁으로 이미 서울에서는 주류의 교체가 시작됐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지역의 경우, 정권이 바뀌어도 토호는 영원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득권 세력이 58년간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지역의 기득권세력 물갈이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것까진 인사보좌관의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데…, 개인적 의견으로는 사회의 변화는 1년, 2년, 5년, 10년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줄기를 만들어 놓으면 된다. 그 역할이 내가 할 역할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프랑스형 정치발전과 영국형이 다른데, 프랑스는 끝까지 기득권을 고집하는 세력을 단두대에 올렸지만, 영국은 기층세력의 요청을 기득권이 양보와 양보를 거듭하면서 다투는 과정에서 변화했다. 기득권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은 있다. 공무원 집단 중에서도 굉장히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 사람과는 함께 가야 한다."

"DJ정권 동진 정책은 구걸정책"

- 경력을 보니 제2기 제2건국위 위원으로 돼 있다. 광주는 어떤지 몰라도 경남의 경우 오히려 기존 토호세력이 DJ정부의 제2건국위를 보호막으로 활용했다는 혐의가 짙다. 어떻게 보나.
"나는 김대중 대통령 정부나, 김영삼 정부나 모두 변화를 희망했다고 생각한다. 변화는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변화의 흐름을 누가 힘있게 가져 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제2건국위는 필요했다고 본다. 성공적이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 발전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었다고 본다."

- DJ정부가 박정희 기념관 지원 등을 통해 영남의 기득권 세력과 적당히 타협하는 정책을 썼지만 실패했다고 보는데, DJ식 영호남 화합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 김주완
"DJ정권의 동진정책은 뭘 줄테니까 협조해달라는 식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구걸하는 정책은 안된다. 당당하게 원칙을 제시하고 상대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필요하다."

- 영남에서 주로 문제가 된 DJ의 인사정책은 호남사람이 지방경찰청장이나 지법원장, 지검장으로 온다든지, 각종 공사나 재단 등 정부투자기관에 골수 DJ인사들이 낙하산으로 사장·이사·상근감사로 임명된 것이었다. 이런 몇 가지 사례가 확대해서 전파되고, 이게 결국 지역감정을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 정부투자기관의 이런 인사관행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있는가.
"그런 평가에 다 동의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전남과 광주경찰청장에 함양사람이 온 적도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호할 생각은 없지만, 나름대로 노력은 했다. 그러나 그런 일부를 빌미로 나쁘게 활용한 사람들이 있다. DJ정권도 나름대로 인사에서 공정하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본다. 물론 일부 인사의 인사농단도 있지만, 그걸 일부에서 악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

-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경상도 사람들이 인사에서 소외됐다는 피해의식도 적지 않다. 지역안배도 고려하고 있나.
"지역과 상관 없이 원칙에 입각한 인사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느 지역의 한쪽에만 우수한 사람이 살 수는 없다. 그런 차원에서 결국은 안배가 되지 않겠느냐. 노무현 당선자도 지역안배를 인사원칙으로 천명했다.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 오랜 시민운동가로 활동해왔는데, 정찬용 보좌관 내정으로 광주지역 시민운동의 힘이 빠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노무현 정권과 시민운동은 어떤 관계여야 한다고 보나.
"나는 오히려 힘이 붙으리라 생각된다. 왜냐면, 나무가 클 때에 전지라는 걸 통해 나무를 긴장시켜 왕성하게 자라도록 한다. 광주시민운동이 더 발전할 계기가 되리라고 본다. GO(정부기관)와 NGO(비정부기구)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긴장관계라고 생각한다. PO(영리기구)와 NPO(비영리기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NGO라면 계속 (정부를) 감시·견제하는 게 본연의 역할이다. 다만 우리 시민사회의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에 파생되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내 몫은 아니지만, 그 어려움에 적절한 다리 역할을 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겠다."

공식 인터뷰는 여기서 끝났다. 그러나 비공식 인터뷰는 광주 교외 농촌지역인 담양군에 있는 그의 집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거창에서의 17년 4개월과 거기서 만난 많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작고한 전영창 교장과의 기억은 물론, 최근 교육부총리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전성은 교장에 대해서도 깊은 존경심을 나타냈다.

또한 <경남도민일보>에 대해서도 "수천명의 뜻있는 시민이 만든 신문이라고 알고 있다"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런 그의 모습에서 그는 경남을 또 하나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덧붙이는 글 | 경남도민일보(http://dominilbo.com)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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