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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출연연구소(이하 출연연)의 기능과 효율성을 비판하는 논조의 기사가 여기저기 실리고 있다. 사실, 현재 출연연이 개혁적인 구조조정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해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본보에 김요셉 기자가 쓴 것과 같이 출연연을 민간기업연구소(이하 민간연)와 조목조목 비교하는 식의 논조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출연연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은 시간이 갈수록 상승하는 대학과 기업의 역량에 따라 출연연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같은 위기의식을 느끼지만, 그것은 비전문가들이 들이미는 잘못된 잣대에 의해 유발된 착각에 불과하며, 이런 위기 상황을 기회로 삼아 정출연이 새로이 역할을 명확히 정립해 가야할 시점이다.

사실 정해진 시간에 동일한 연구를 출연연과 기업이 동시에 수행하는 경쟁을 시킨다면 엄청난 개발비를 집중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민간기업과 경쟁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출연연이 있다면 그 기관은 이미 출연연이라는 의미가 상실된 기관이다. 그렇다면 출연연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민간연은 당장 시장성 있는 제품의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기관이고, 대학은 학문적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그 간극에 시장의 실패영역에 있는 공공재로서의 과학기술을 장기적으로 일관된 계획을 갖고 연구개발하는 출연연이 위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현재 과도기에 있는 출연연을 무조건 부실한 공기업인양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정부, 대학, 기업, 출연(연)이 머리를 맞대고 국가혁신체제의 입장에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김요셉 기자의 기사에서 정출연의 경영을 크게 문제삼지만 공공재의 생산은 경영만으로는 될 수 없다.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과학기술발전을 "관리"하여야 한다. 효율만이 공공재 생산의 최고의 가치라면 대다수의 공익을 위한 서비스는 공공기관이 제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현재 출연연에 시장이 작용하는 부분이 크게 자리잡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런 부분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서 삼아 과감히 민간으로 이전하여야 한다.

공공분야기술개발은 민간과 달리 그 성과가 가시적으로 돈으로 환산될 수 없으며 측정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공공분야 기술평가, 연구평가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을 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김요셉 기자의 기사에서 제기한 민간연이 도입하고 있는 BSC지표는 출연연이 가지는 다양한 기능을 측정하는 성과지표로서의 기능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문제 삼는 출연연의 '효율저하' 이면에는 ‘심도깊은 분석결여'가 숨어 있다. 더 이상 국가발전의 전략상 중요하기 그지없는 정출연을 무자격한 비전문가들의 손에 방치해서는 안된다. 출연연에 적합한 평가제도와 연구효율성의 증대는 과학 기술인 스스로가 찾아야할 몫이다.

덧붙이는 글 | "연구성과는 2류, 경영은 3류" 
[업그레이드 사이언스Ⅱ-경영마인드中]
공동연구 회피 "격세지감"…"관리 아닌 경영을" 
 
김요셉 기자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정부 출연연에는) 국내 최고의 기업들이 '공동연구를 하자'며 찾아왔다. 지금은 흘러간 옛날 얘기가 됐지만..."(대덕연구단지 출연연 모 박사)

대덕연구단지 정부출연연 연구원들이 토로하는 격세지감이다.

과거 30여년 동안 이른바 '개발 경제'의 배경에는 출연연이 있었다. 자체 기술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당시 유일한 활로는 정부출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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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까지만해도 사실 기업에서 '박사' 연구원을 찾아보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외국 기술에 대한 '카피'에 익숙한 민간 기업에게 기술 개발은 먼나라 얘기였다. 당연히 70년대부터 '해외 유치 과학자 모시기' 등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한 출연연에 모든 기술 개발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연연은 단숨에 한국 과학기술의 상징, 과학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50대 과학자들은 대학 교수보다 좋았던 보수와 사회적인 대우를 지금도 기억한다. 연구성과 역시 경쟁자가 없었다. 판검사가 안부러웠다. 사위감으로도 최고였다.

그리고 20여년이 다시 흘렀다. 지금은 어떤가. 출연연과 민간연의 경쟁력과 위상은 완전히 역전됐다.

우선 출연연(ETRI)과 대기업 연구소(삼성전자) 양쪽 연구소를 모두 거친 후 벤처기업을 창업한 K모 사장의 출연연 경쟁력 평가를 들어보자.

그는 "출연연이 10년 걸릴 연구를 민간연은 2~3년내에 결과를 낸다. 되는지 안되는지 결정을 내린다"라면서 "실패는 없이 5년짜리 과제면 곧이 5년 뒤에 결과가 나오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경쟁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경쟁력과 위상 추락의 원인은 간단하다. 

출연연이 과거에 머무는 동안 민간은 쉴새없이 변했다. 평가제도가, 교육이, 경영 마인드가, 연구 테마가 계속 변했다.

그에 따른 변화의 결과는 R&D 투자액수. 올해 정부의 R&D 투자 예산은 6조원 수준. 삼성그룹의 R&D투자 규모가 4조 3천억원 가량인 것을 감안할 때 민간의 투자가 정부의 투자를 훌쩍 넘어섰다. 이에 비해 국내 최고라는 출연연의 R&D 예산은 수천억원 규모로 민간연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다.

1970년부터 1998년까지 정부와 민간의 R&D비율을 보면 그 변화는 극명해진다.

개발연대인 1970년에는 97대 3으로 정부의 투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이 비율은 해가 갈수록 좁혀졌다. 1980년에는 64대 36으로 좁혀졌다. 1990년에는 둘 사이의 관계는 역전됐다. 19대 81로 뒤바뀌었고, 1998년에는 둘 사이의 격차가 다소 좁혀지기는 했으나 27대 73으로 여전히 민간 우위이다.

이 수치들을 통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R&D예산이 늘 수도 줄 수도 있기에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민간의 R&D 투자가 급성장했다는 것이다. 허수(虛數)도 일정 부분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민간의 R&D 비율은 초기 3%에서, 20여년 사이에 20여배가 넘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에서 볼 때 민간의 경우는 정부의 경우보다 효율적이란 점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정부출연연의 존재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민간이 담당해야할 부분이 있고, 국가가 나서서 해야할 연구가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 동안 맨바닥에서 세계 유수의 기초과학국으로 자리매김한데는 출연연의 역할이 크다.

하지만 출연연이 과거에 안주하며 효율을 도외시하고 있는 사이에 세상은 출연연을 앞서갔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출연연의 경쟁력과 위상이 바뀌게 된 것을 '관리(Administration)'와 '경영(Management)'의 차이라고 입을 모은다. 둘의 차이는 효율의 문제. 관리는 효율을 생각지 않고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집행만 하면 된다.

그러나 경영은 항상 효율을 생각하며 되도록 적은 비용으로 많은 효과를 얻어야 한다. 아무리 예산이 주어진다고 해도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있고, 전례만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퇴보만이 있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다.

30여년 몸담고 있다가 은퇴를 앞둔 한 과학자는 "출연연은 아직도 관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출연연이 발전을 하려면 오너가 경영을 하듯 민간의 경영마인드를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민간 연구소 출신 벤처기업인 L사장은 출연연구원이 변하지 못하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못박는다. 과거와는 달리 출연연에도 시장경제의 법칙이 엄연히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동안은 정부라는 '울타리'가 보호막 역할을 했지만 시장경제 체제에서 효율성이 없는 조직은 결국 도태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민간연구소들은 R&D 성과와 그에 따른 인사 및 인센티브가 명확하다"면서 "출연연도 민간과의 연구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확실한 평가와 보상 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민간연이 도입해 운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연구성과 평가방법은 균형성과기록평가(BSC :Balanced Scorecard Collaborative) 제도. 이는 연구결과뿐 아니라 고객과 재무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 성과를 평가한다. 효율적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제도는 기본이다.

출연연의 경우 일부에서 목표관리(MBO)제도를 시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동안의 관행에 의한 비과학적 평가가 대부분이다. 능력있는 사람에게 좋은 고과를 주기보다는 연공서열에 의해, 인맥에 의해 점수를 준다.

연구에 대한 명확한 목표설정과 투명한 평가시스템, 그리고 확실한 인센티브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연구원 내 기계적 평등은 실제적 불평등이란 부작용을 낳는다. 능력있는 연구원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반대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는 '무늬만 연구원'도 상당수 나온다. 연구성과에 대한 '균등 분배'는 업무에 있어서는 불균등 분배로 연결된다.

모 연구원장은 "연구원 구성원들의 업무량이 불균형적으로 배분되어 있다"며 "바쁜 사람은 정신없이 바빠서 건강을 해칠 정도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출연연의 연구성과가 외국 연구소에 비해 2류라면 경영은 3류"라면서 "출연연의 無경영은 상대적으로 젊고 능력있는 연구원들을 절망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기노조 이성우 위원장은 "출연연의 안이한 경영행태가 연구원들의 불신을 받고 있다"면서 "출연연이 한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평가제도와 R&D 투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이 구축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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