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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사회 독거노인들의 주거환경 사업에 참여하여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노숙인들
ⓒ 이주원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 없는 사람에게는 꽤나 잔인한 계절이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아침을 여는 집' 입소인들은 표정이 밝지 않다. 지난해 12월 찬바람이 불면서부터 일거리가 끊긴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2002년 7월 '자유의 집' 입소 노숙인을 대상으로 노숙 전 직업을 조사한 결과를 기술 및 기능직(운전포함)이 36.9%, 단순노무직 29.3%, 영세서비스직 10.5%, 영세자영업 7.0% 등으로 나왔다. 이렇듯 이들이 종사했던 직업은 대체로 사양산업이었다.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정책으로 노동집약적인 산업들이 다 쇠퇴하여 일자리를 잃고, 거기에 IMF 국가위기가 몰아쳐서 결정타를 맞았던 것이다.

세상 어느 누가 노숙을 선택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일반 시민들의 오해와 달리 긴급한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면 노숙인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이는 없다.

▲ 실상사 농장에서 귀농체험 현장교육에 참여하는 노숙인들
ⓒ 이주원
98년부터 쉼터와 쪽 방을 오가며 살아온 이만건씨(50)는 "쉼터에서 돈을 조금 모아서 쪽 방으로 갔는데 하루 방 값이 7천원이에요. 방세에, 밥값에 푼돈 같지만 적은 돈이 아니에요. 노가다 2-3일 나가면 몇 일은 앓아 누워 있어야 하는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격이죠. 지난 5년동안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라며 긴 한숨을 내쉰다.

노숙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은 따갑다. 사람이 많지 않은 공원 한 구석에 노숙인으로 보이는 5∼6명이 불을 지피고 앉아 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50대 아주머니가 "왜 사지 멀쩡한 사람이 일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 뭐든 하면 살수 있을 텐데. 쯧쯧" 혀를 차며 지나친다.

시민들이 가지는 노숙인에 대한 편견 중에 하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숙인이라고 해서 모두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2년 11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심포지엄 자료를 보면 거리노숙인의 48%가 일을 한다고 했다. 일을 하지 않는 경우는, 건강이 나쁘거나 장애를 갖고 있거나 나이가 많아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 전단지를 붙이는 일을 하는 최씨의 하루는 고달프다. 그러나 마음은 편하다고...
ⓒ 이주원
최강운(36)씨는 경제사정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0년 동안 택시운전을 했다는 그는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면서 사납금 채우기도 쉽지 않았다"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사람을 대하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했다. 결국 최씨는 대인공포증이 심해져 운전대를 놓고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최씨는 '아침을 여는 집'에서 생활하며 조금씩 증세가 좋아졌고, 자신의 노동능력으로 가능한 전단지 배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겨울이라 힘들긴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이런 일이 좋아요. 사람하고 부딪치지 않으니까 마음도 편하고 스트레스도 없다"면서 "앞으로 돈과 상관없이 꾸준히 일을 해서 건강을 되찾고 안정적인 회사도 다니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영민(가명, 51)씨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다가 부도로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오래 전 교통사고로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어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씨는 "장애인을 쓰는 회사가 없기도 하지만 일반인들보다 더 힘든 일이 태반이에요. 작년에 겨우 소개를 받은 회사는 12시간씩 꼬박 앉아서 작업을 해야했어요"라며 한숨을 내쉰다. 지금은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를 하고 있지만 그것도 4월부터는 할 수 없게 된다.

목포에서 시내버스 정비사로 일했던 김용봉씨(37)는 정신질환이 발병했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렇게 방치된 질환은 무절제한 음주생활로 더욱 악화되어 만성 정신장애를 갖게 되었다. 지금은 지역 사회복귀시설에서 상담과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경불련 '아침을 여는 집' 조최윤순 상담실장은 "김용봉씨가 지금 당장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단주생활을 유지하고 약물복용을 지속해 건강을 되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노숙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일을 하고 있지만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거리와 쉼터·쪽방·고시원 등을 떠돌아다닌다. 그나마 건강이라도 잃는 날에는 아무런 생계 대책이 없다.

▲ 열심히 직업재활교육에 참가하는 노숙인들. 그러나 갈곳없는 부평초 인생.
ⓒ 이주원
이제 더 이상 노숙인 지원 체계가 먹을거리와 쉼터제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차원의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양산업에 종사하다 퇴출된 실업자들에게 직업재활프로그램과 직업제공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노숙인들에게 제공되는 직업교육은 제과제빵, 실내인테리어, 건축설계 등 교육을 받더라도 취업하기 어려운 사양직종이 대부분이다. 설령 일자리가 나더라도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없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일자리를 찾다 허탕을 치고 돌아온 이강원씨(43) "게을러서 노숙인이 된 것이 아니에요.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자리가 난다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노무현 당선자가 우리의 이 딱한 사정을 알고 일자리를 마련해 주면 좋겠다"면서 한숨을 내쉰다.

덧붙이는 글 | 많은 노숙인들은 살려고 합니다. 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시스템은 이들은 도시의 그늘진 곳으로 몰아부치고 있습니다. 이들이 양지로 나올 수 있는 세상은 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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