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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광장에서 분신자살한 고 배달호씨가 유서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두산’이라 했던 두산중공업에는 현장 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과는 별도로 ‘관리자노조’가 결성되어 있다. 관리직 해고자 16명은 2년 가까이 복직투쟁을 벌이면서 또 다른 노사갈등을 낳고 있다.

현장 노조는 ‘금속노조 지회’라 하고, ‘관리자노조’도 마찬가지로 전국금속산업연맹 소속이다. 최근 두산중공업의 노조정책이 언론과 정치권의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전국에서도 드물게 결성된 이 회사의 ‘관리자노조’와 관리직 해고자들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편집자 주>


▲ 창원 두산중공업 본관 건물.
ⓒ 오마이뉴스 윤성효
”정서상 말 못할 뿐” “해고사유나 속시원히 알았으면”

[해고자들의 생활] = 노동부가 두산중공업에 대한 특별조사에 들어가기 하루 전날인 5일 오후 창원시내 한 사무실에서 그들 중 몇 명이 모여 있었다. ‘관리자노조’ 김상태 위원장과 해고자 대여섯명이 설날 연휴 마지막날에 만나 어느 때보다 어렵게 지낸 이번 설날에 대한 감회를 나누었다.

“퇴직금으로 받았던 몇 푼을 다 쓰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부터 온갖 말들이 나왔다. “자식들이 커가면서 매일 한숨만 나온다”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왔다. 어떤 이는 “그래도 우리는 좀 나은데, 누구는 더 어렵다”면서, 그 상황에서도 힘든 동료를 걱정했다.

뒤늦게 달려온 손상현씨가 ‘물 만난 고기’처럼 말했다. “우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현장 노동자와 해고자들이 어려움이 크다. 우리는 정서상 말을 잘 안할 뿐이다. 그런데 언론은 한번도 우리를 다루지 않는다”라고. 그러면서 “대부분 40~50대인데, 다른 직장도 못 구해요.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기선, 최종락씨도 거들었다. ‘한국중공업 관리자노조’ 김상태 위원장과 간부 서너명도 말을 거들었다. “이력서 수십 군데는 냈다” “대부분 맞벌이 하며 겨우 버틴다”는 말부터 회사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해고자들은 “나갈 때 나가더라도 해고사유나 속시원하게 알았으면 한다”면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해고시켰는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교육을 시키면서 음성적으로는 명예퇴직을 종용했다” “한번 찍으면 끝까지 찍어서 내쫓는다” “회사가 오히려 ‘강성노조’를 부추긴다” “회사가 시종일관 노조를 탄압하고 와해하려 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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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상반기 76명 무보직, 장기간 교육 뒤 16명 해고

관리자노조 관련 일지(2001~2003년)

01. 1. 5 : 회사 조직 개편
01. 1. 9 : 명예퇴직 실시 인터넷에 발표.
01. 1.10 : 무보직 관리자 425명 발생
01. 1.12 : ‘한국중공업 관리자노조’ 설립
01. 1.17 : 명예퇴직 신청자 중 39명 재보직
01. 2. 1 : 관리자노조, 회사에 단체교섭 요청
01. 2. 6 :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
01. 2. 7 : 미보직자 76명 교육명령
01. 2.12~4.13 : 관리능력향상 명목 교육
01. 2.14 : 교육명령 불복종 이유 76명 경고
01. 3.23 : 주총, ‘두산중공업’ 상호변경
01. 4. 30 : 임단협 상견례 첫 실시
01. 9. 5 : 미보직자 9차 교육명령
01.11.22 : 17명 연수원 퇴소 조치
01.12.13 : 17명 전원 권고사직 통보
02. 1.15 : 재심 청구 후 해고
02. 1.25 : 권고사직자 1명 명예퇴직 신청
02. 1.26 : 대기자 16명 해고명령
02. 1.28~현재 : 복직 투쟁 계속(소송 등)
/ 정리/윤성효 기자
[경과] = 두산중공업(옛 한국중공업)은 지금까지 크게 네 차례의 퇴직이나 해고가 있었다. 93년 ‘조기퇴직’, 98년 ‘희망퇴직’(341명), 01년 1월 ‘명예퇴직’(351명), 02년 1월 ’해고 명령’(16명)이란 이름으로 단행되었다.

98년과 2001년 1월 퇴직자들은 집단으로 아직까지 회사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해고자들 중에 가장 강력하게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2002년 1월 해고된 16명이다.

이 회사의 ‘관리자노조’는 아직까지 ‘한국중공업 관리자노조’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회사는 ‘관리자노조’의 실체를 인정하지만 회사명이 ‘두산’으로 바뀐 뒤에는 44차에 걸쳐 단체교섭이 열렸다.

해고자 16명이 나온 것은 회사가 ‘두산’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이루어졌다. 2001년 1월 회사는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1월 9일 아침 ‘명예퇴직’ 실시를 전격 발표했다. 과장부터 부장까지 참여하는 ‘관리자노조’가 결성된 때도 이 시기로, 2001년 1월 12일 설립신고서를 내고 만들어졌다.

‘명예퇴직’ 신청 기한을 연기한 회사는 그해 2월 6일, 조합원 68명을 포함한 무보직자 76명에 대해 보직 해임과 본부대기발령을 내렸다. 회사는 이들에 대해 교육명령을 내렸으며, 창원과 서울연수원 등에서 그 해 2월부터 12월말까지 9차례의 교육명령이 실시되었다.

회사는 교육 대상자 76명을 3등분 했고, 17명에 대해 ‘권고사직’ 결정을 내렸다. 이후 17명 중 1명은 ‘명예퇴직’ 신청을 했지만, 나머지 16명은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회사는 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하고 해고자들은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한 뒤, 현재는 ‘관리자노조’에서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해 창원지방법원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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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논란거리 많아, 단체협상 해고사유 등 복잡

▲ 고 배달호씨 분신자살사건과 관련한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회사와 ‘한국중공업 관리자노조’ 사이에 해고자 복직 문제를 포함해 현안이 산적해 있다. 관리자노조와 관련한 논란거리를 간추려 양 쪽의 입장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단체협상 관련] = 2001년 2월 1일 ‘한국중공업 관리자노조’는 회사측에 현안문제, 노동조합 임금과 단체협약에 관한 교섭을 요구했다. 이후 임단협 첫 상견례가 열린 때는 그 해 4월 29일이었다.

당시 회사측 단체교섭 실무담당자로 인사팀장이 나오자 ‘관리자노조’는 회사의 임원이 교섭 대상으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결국 창원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냈고, ‘조정중지’ 결정 후 진척이 없다.

관리자노조 김상태 위원장은 “회사의 교섭 실무자 대표가 어떻게 인사팀장이 될 수 있나. 임원이 나와야 책임있는 교섭이 된다. 현장 노동조합과도 교섭 때는 임원이 실무자 대표로 나가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측에서는 “관리자노조의 실체를 인정한다”면서, 조직개편이 있는 바람에 관리본부장에서 인사팀장으로 바뀐 것으로, 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중지로 지금까지 단체교섭이 열리지 않고 있다”라고 설명.

[16명 해고사유] = 76명이 2001년 2월부터 12월까지 교육을 받고 난 뒤, 3등급에 분류된 17명(1명은 명예퇴직)은 해고처분을 받았다. 곽현수 김남규 김용석 박기선 김현재 박경부 오세대 전동수 서일수 송영득 이재범 정종철 최기문 탁기호 손상현 최종락씨가 그들이다.

이들 해고자들은 “아직도 해고 사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이들 중에는 “해고 사유도 모르겠고, 해고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면서 회사에 끊임없이 답변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수십차례 보내기도 했다.

해고자들은 “그런 뒤 지난 해 말 회사로부터 답변서를 받았는데, 거기에 보면 ‘교육 불성실’로 시험장에서 먼저 나가고 답안지를 빨리 제출했기 때문이라 해놓았다”면서 “그렇다면 교육 당시 계도를 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설명. 한 마디로 말해, 해고자들은 ‘해고사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

이에 대해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당사자들은 교육에 대해 사안을 가볍게 생각하는데, 회사 입장에서 볼 때는 심각한 문제다. 회사는 급여까지 지급하고 강사도 초빙해서 교육까지 했는데 교육태도는 회사 입장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이라 말했다.

▲ 두산중공업의 관리직 해고자들은 16명이 2년간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박기선 손상현 최종락씨.
ⓒ 오마이뉴스 윤성효
노조 “투자 잘못해 손해”, 회사 “투자는 정상적”

▲ 해고자들이 수십차례 내용증명으로 '해고 사유'를 알고 싶다며 공문을 보내자 회사가 한 차례 보낸 답변서 사본.
ⓒ 오마이뉴스 윤성효
[회사경영 관련] = 관리자노조는 “2001년 1월 ‘명예퇴직’을 하면서 ‘경영상의 이유’라 해놓고, 최근까지 회사 경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투자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중공업 관리자노조’는 “회사가 3000억원대의 ‘두산메카텍’ 매입, 하나로통신 주식을 1200억원에 매입한 뒤 절반 정도 손해를 봤다”면서, “회사 어렵다면서 직원들을 내쫓아놓고는 다른 투자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같은 노조측의 주장에 대해 회사 홍보팀 관계자는 “주식투자에 대한 결정은 경영진이 하고 투자심의회를 거친다. 비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하나로통신 주식 매입과 손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또 그는 “2001년 1월 ‘명예퇴직’을 단행하기 전에, 경영 상태에 대한 외부 기관의 컨설팅도 받았고, 당시 몇 년 간 파업 등으로 인해 수주 물량이 줄어들고 해서 이루어진 정당한 조치였다”고 설명. 그러면서 “이전에는 한전의 모든 설비를 수의계약으로 독점했으나 97년 WTO가 되면서 다른 기업들도 끼어들고 해서 어려워졌다. 유럽 등 외국의 발전 시설 수주도 마찬가지였다”고 설명.

[사규적용 / 회유 여부] = ‘관리자노조’는 무보직과 교육 등에 있어 사규에 따르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해고자들은 “사규에 보면 무보직은 기간을 정해놓았는데, 회사는 정해진 기간을 훨씬 넘겼다”고 설명.

그리고 “교육도 일정 기간이 아니라 10개월 가량 실시하는 곳이 어디 있냐. 교육을 무리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교육 기간 동안 줄곧 ‘명예퇴직’을 종용했다”면서, “이는 교육이 직원들을 내쫓는 수단으로 악용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무보직 기간이 사규에 따르지 않았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고, 사규에 따랐다”면서, “경영 차원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 또 교육기간 동안 퇴직 종용에 대해 그는 “그런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회사 “조만간 소송 판결 난다”, 노조 “회사가 대승적으로”

[회사/노조 입장] = 두산중공업 관리직 사원의 해고와 노조 문제에 대해서는 회사와 노조가 입장 차이를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의 판결도 불복해, 소송까지 계류 중이다.

두산중공업 인사팀과 홍보팀 관계자들은 “관리직 사원의 해고 문제는 민사소송에 계류 중이기에, 부당해고였는지의 여부는 조만간 가려질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 노조와 관련해 노동부의 특별조사가 실시된 시점에서 ‘관리직노조’도 어떤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설명.

그러나 ‘한국중공업 관리자노조’ 김상태 위원장은 “회사가 관리자노조 조합원에 대해서도 탄압을 하고 있어 활동이 부자연스럽다”면서, “회사가 대승적 차원에서, 노사화합으로 가야 한다. 관리직까지 갈등을 빚고 있다 보니 나머지 직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결국 회사가 손해다”라고 말했다.

“고 배달호씨 분신자살 원인 회사가 제공”
관리자노조, 분신자살사건 입장 표명

‘한국중공업 관리자노조’ 김상태 위원장은 고 배달호씨가 분신자살한 이틀 뒤인 1월 11일 “우리 모두의 아픔”이라면서, 분신자살사건의 원인은 회사가 제공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과장급 명예퇴직제도 발표, 보직 박탈, 관리자 노조 설립, 보직해임, 장기간 교육대기, 각종 징계,전환 배치, 사원급 명예퇴직, 관리자노조원 16명 해고, 지회 47일간 파업, 지회 노조원 징계와 18명 해고, 재산과 급여 가압류, 기존의 사업포기와 사옥매각 등의 일련의 흐름이 오늘 이 사태를 초래하여 왔다”고 설명.

김상태 위원장은 “기업의 주인이 주주이고, 기업의 목적이 이익창출이고, 노동자는 일만 하는 존재라 할지라도, 노동문제만 해결되면 한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천국같은 곳일 지라도, 그리고 모든 일의 기준을 매번 법과 원칙대로 한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고 말했다.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지 못하는 모든 국가 경영활동은 어떠한 기준으로 설명하여도 도덕적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으며, 인간을 위한 노동이 보장된 생산활동이야 말로 회사 존립의 기초다.”
“법과 원칙이 어제의 죽음 앞에 무슨 위로의 말을 하겠으며, 어떤 보상을 줄 수 있으며,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그러면서 김상태 위원장은 “어떠한 말을 하여도 인간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모든 행위는 정당성이 없으며 존재의 가치도 없다”면서, “오늘의 이 멍에는 우리 회사와 두산이 존립하는 한, 오늘의 우리들과 경영진은 영원히 가슴에 안고 가야하는 통한의 짐이 되었다”고 밝혔다. / 윤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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