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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만난 그들이 2002년 대선의 끝을 Happy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만난 그들이 2002년 대선의 끝을 Happy하게 만들었다. ⓒ 서프라이즈
"저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불신한다? 치명적인 리더십의 결함입니다. 정몽준씨가 후보 회담에 적극적인 이유도 실은 자기 당 협상팀을 못 믿기 때문입니다. (중략) 인간관계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보다 그 주변 환경을 조율하려는 사람이 있고, 여러 사람을 종합적으로 컨트롤하려는 사람이 있고, 핵심적인 딱 한 사람만 지배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 후보는 첫 번째 이고 정몽준씨는 세 번째입니다. 보통 정치가는 두 번째입니다." (김동렬, '후보 회담을 앞두고'에서)

전국이 '로또(LOTTO)'로 들끓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로또 사느라 정신이 없고, 정부나 언론에서는 그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내심 판매를 부추기는 데 혈안이 된 듯한 모습이다. 바야흐로 '주택복권'의 시대는 가고 '로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가!

물론 과장해서 말한 감이 없진 않지만, 로또는 당첨 확률이 '814만 분의 1'로 낮은 만큼 반대로 당첨이 됐다 하면 대박이 터질 확률이 높기에 더욱 많은 이들이 빠져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너무 지나쳐 사회문제화 되려는 기색이 보이자 정부에서 직접 나서서 당첨금 이월 한도를 아예 2회로 못 박을 정도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대통령 후보 노무현, 대박을 터뜨리다?

그런데 대박이란 것이 꼭 로또 복권을 사야만 터지란 법은 없는 듯 하다. 우리 주변에도 로또보다 더한 대박을 맞은 자가 있으니, 바로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

물론 민주당 대통령 후보 노무현이 단순히 요행수 하나만으로 당선되었다고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분명 그만의 독특한 힘이 있었기에 '대통령 당선'이라는 '대박'을 맞았을 텐데, 그 힘이 무엇이었는가를 분석해 볼 때 '인터넷'을 빼놓고는 설명하기가 곤란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노무현이 당내의 이른바 '이인제 대세론'을 꺾고 (결국 의몽(疑夢)스런 행동으로 파기되기는 했으나) 한때 지지율 1위에 오르기도 했던 정몽준 후보와 마침내 후보단일화를 이루어 결국 원내 제1당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데에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라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노사모는 지난 2000년 제16대 총선당시 노무현 후보가 부산에서 출마했지만 결국 지역주의의 희생물이 된 데 격분한 사람들이 모여 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으로, 지난 민주당 국민경선 때부터 노무현 후보를 적극 지원, 결국 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데 큰 뒷심이 되어준다.

지난 92년 대선을 앞두고 이루어진 김영삼과 노태우, 김종필의 담합을 통한 3당합당을 반대하는 순간의 노무현.
지난 92년 대선을 앞두고 이루어진 김영삼과 노태우, 김종필의 담합을 통한 3당합당을 반대하는 순간의 노무현. ⓒ 김종구

물론 노무현 후보를 지원했던 모임에 노사모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음'이나 '프리챌' 등의 포털 내에도 수많은 커뮤니티가 만들어졌고, 이들은 주로 온라인 상에서의 의사소통을 거쳐 오프라인으로까지 행동반경을 넓혔다. 이들이 하나가 되어 종합하고 분석한 '대선 수읽기'가 노무현 후보가 대박을 터뜨리는 데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보다 친숙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리라. 2002년 9월 24일 현재 당선 가능성 5.7%(한국일보)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 워낙에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으니 그저 요행수로 인한 대박으로 비칠 만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대박이 아니었다. 또다시 누구누구의 '음모'라는둥 헛소리를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온라인 상에서 떠들썩하게 진행됐던 네티즌의 '수읽기' 중 한 흐름이 오프라인 상으로 나왔으니 말이다.

서프라이즈, '희망의 시나리오'를 쓰다

서프라이즈. 여기서 서프라이즈는 'surprise'가 아니라 'seoprise'다. 물론 '놀라움'을 의미하는 원래의 서프라이즈와 같은 발음을 취해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철자 틀리지 않게 주의할 일이다.

지난 해 10월 13일, 〈국민일보〉 심의위원 서영석씨와 인터넷 신문 〈대자보〉 편집위원 공희준씨, 〈노하우〉 칼럼니스트 김동렬씨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인터넷 사이트 '서프라이즈(www.seoprise.com)'는, 말 그대로 정치 평론 사이트다. 이들은 서문을 통해 "국민경선으로 선출된 후보를 죽이는 정치적 자해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노무현 개인이 아니라 개혁을 열망하는 소시민들의 꿈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고 서프라이즈를 만들 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필진 중에 무슨무슨 대학 정치학 박사라든가 어느어느 연구소 연구원 등은 보이지 않는다. 먹물을 바탕으로 일단 먹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느낀 바를 정치 칼럼의 형식을 빌어 쓴 것들인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글을 읽으며 왠지 모를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그 솔직한 말투에 시원스러울 때도 있었다. 아마도 자기가 어떤 불이익(?)을 당할 필요도 없기에 별반 두려움(?) 없이 솔직한 글을 써내려갔기에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김동렬씨는 경마(競馬) 경험담을 선거 전략과 연관지어 설명함으로써 유쾌한 정치 평론을 시도했고, 본문 간간이 실려 있는 영화 포스터 패러디들은 복잡한 머릿속을 웃음 한방으로 시원하게 뚫어준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필자에 따라 간혹 마초적인 느낌을 주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 것이 사실이고, 아무래도 선거와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루다보니 일부 사실이 과장된 부분 역시 눈에 거슬리는 흠이 있다. 또한 간혹 오탈자도 눈에 띠어 책의 완성도를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

서프라이즈 / 세상을 바꾼 드라마 / 시대의창 / 2003 / 9,500원
서프라이즈 / 세상을 바꾼 드라마 / 시대의창 / 2003 / 9,500원 ⓒ 권기봉
그렇지만 이 책은 일반인들이 직접 정치 평론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순기능이 더욱 크리라 생각한다. 이전에는 그저 정보나 논설 등을 받아들이기만 해야 했던 일반인들이 수동적이었던 태도에서 탈피, 인터넷을 기반으로 직접 평론의 장(場)으로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실제로 서프라이즈 사이트가 개설된 뒤 하루 방문객이 3만6천 명을 훌쩍 넘기도 했고, 지금은 적지 않은 수의 필진들의 자신 고유의 게시판을 개설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유쾌상쾌한' 정치 평론을 써내려가고 있다. 그들은 지금 희망을 써내려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권기봉 기자의 홈페이지는 www.freechal.com/finlandia 입니다.


노무현과 서프라이즈 세상을 바꾼 드라마

서프라이즈 검객들 지음, 시대의창(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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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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