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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주노조의 투쟁은 많은 사례를 남겼다. 특히 노조에 대한 사업주의 비상식적 탄압은 지역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동광주노조의 투쟁은 많은 사례를 남겼다. 특히 노조에 대한 사업주의 비상식적 탄압은 지역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 이국언
사업주의 태도는 오히려 완강했다. 사업주의 회피로 교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노조가 파업으로 맞서자 파업 1시간만에 직장을 폐쇄한데 이어 일체의 중재안을 거부하다 급기야 12월에는 아예 폐업을 단행한 것.

두달 뒤 동광주병원은 그 자리 그 시설 그 인력 그대로 광주병원으로 재 개원해 세간을 더욱 놀라게 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동광주병원'이 '광주병원' 으로 바뀌고 조합원들만이 그 자리에 없다는 것 뿐.

지금 노조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이 형사건만이 아니다. 전 동광주병원 박중욱 이사장 등은 이 형사건 이외에도 파업으로 인한 영업손실을 이유로 노조에 대해 12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한편 조합원 54명과 재정보증인 47명 노조 상급단체 간부 및 심지어 노무사에 이르기까지 무려 106명에 대해 총 19억원의 채권 및 부동산가압류를 해놓은 상태다.

106명에 부동산과 월급 가압류

부동산가압류는 보증인 47명에 대해 적게는 3억에서 많게는 5억까지 총 17억을 가압류 한 상태이고 이중 조합원 54명과 이모(48)씨등 재정보증인 4명에 대해서는 2001년부터 각 5천만원씩을 월급에 대해 채권가압류를 하고 있는 상태다.

이들 보증인들은 조합원들의 친척이나 지인 관계로 병원 입사시 별 생각 없이 신원보증을 선 경우이다. 조합원들은 일방적 폐업조치로 길거리로 내몰리고서도 더 가슴을 짓눌렸던 것은 보증을 서준 죄로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이들 보증인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동광주병원은 노조활동에 빠지고 돈을 가져오면 가압류를 풀어주겠다고 회유, 일부는 직장을 옮겼지만 이 역시 가압류를 풀어주지 않아 재산권행사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광주(41·광주북구청 건설과)씨는 여동생 황미애씨의 신원보증을 섰다가 졸지에 온 집안이 풍비박산을 맞은 경우이다. 황씨는 지금 자신의 집은 물론 두암동 부친의 집에도 가압류가 걸려 일체의 재산권행사를 못하고 있다. 또한 2001년 1월부터는 자신의 봉급에도 5천만원의 가압류가 붙어 매달 50%를 떼 내고 있는 상황이다.

황씨는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인생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해도 너무한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황씨는 가압류를 물린 사업주에 대해 "자본주로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상대방한테는 피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며 "자신이 불편함을 모르다보니 남의 사정도 그런 줄 아는 모양이다"며 허탈해 했다.

보증인 월급에 3년째 가압류

딸 이모(26)씨의 보증을 선 이유동(48)씨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자신의 부동산에 3억원의 가압류가 걸린데다 월급에서 5천만원이 가압류 돼 매달 월급에서 50%를 떼오며 힘겹게 생활해왔다. 그나마 이씨는 지난달 다니던 직장을 정년 퇴직한 상태다.

입사시 언니의 소개로 박모씨를 신원보증인으로 세웠던 조합원 이영숙씨는 좀 다른 경우이다. 이씨는 보증인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집을 내놓았으나 가압류 때문에 집을 못 팔게되자 결국 2500만원에 그 집 전세로 대신 들어가 살기로 한 것. 가압류로 집을 팔지 못하는 것은 물론 세를 놓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보증인한테 할 수 있는 길은 대신 자신이 전세로 들어가 주는 길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속에 동광주노조는 잊혀져 갔지만 그들의 경제적 심적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속에 동광주노조는 잊혀져 갔지만 그들의 경제적 심적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이국언
이외에도 대출금 상환연장이 안 되는가 하면 집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고자 해도 가압류로 인해 포기하는 경우는 수두룩하다. 노조에서 책임져 달라며 "피해가 없다는 보증을 해달라"는 보증인들의 요구에 노조는 적잖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조합원들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가압류 문제로 재정보증인들과의 관계에 금이 가 관계가 소원해져버린 사실이다. 직장에 이어 인간관계까지 파탄난 것이다.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기다려 달라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최 지부장은 지금도 가압류 문제에 대해서는 말끝을 잇지 못한다.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막막함과 착잡함에 가슴이 막혀오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의 정신적 상처도 큽니다. 아무리 해도 우리는 안 된다는 자괴감이 깊게 자리한 것입니다."

조합원 이모씨는 노동자로 살아온 자신들이 세상의 벽에 막혀 철저히 무시된데서 오는 심적 상실감이 오히려 더 큰 상처로 남았다고 토로했다.

"정의는 이 사회에 없다"

인터뷰 내내 한 숨을 몰아쉬던 최 지부장은 "책에서나 배웠던 정의는 이 사회에 없다" 며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세상을 다시 알게 됐다는 그는 "이렇게 되고 난 후 더 어려운 사람도 봐 지게 됐다"며 이 아픈 경험을 몰랐다면 자신도 그렇게 살아갔을지도 모른다고 되뇌었다.

한 조합원은 "노동3권을 보장한다고 하면서도 손해배상이나 무차별적인 가압류가 오히려 합법적인 쟁의를 탄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며 분노를 표시했다.

지난 9일 창원에 있는 두산중공업 사내 광장에서 회사의 노조탄압을 규탄하며 한 노동자가 분신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파업과정에 대한 손실 책임으로 노조에 65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하여 지금까지 조합원들의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 해왔다. 분신한 배달호씨는 고등학교 3학년과 1학년에 다니는 두 딸을 둔 가장이었다.

이 분신 소식에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동광주병원 노조였다. 동광주병원 노동자 역시 지금도 이 시간 어느 곳에서 또 다른 배달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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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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