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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월 25일 동경 촛불 시위
ⓒ 안창규
2003년 1월 25일, 신오오쿠보역앞에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 일반유학생 7명과 일반직장인 3명, 일한네트워크, 일본인등 50여명이 모여 2003년 첫 촛불시위를 진행했다.

ⓒ 안창규
오후3시 30분부터 시작된 집회는 신오오쿠보역 한 켠에 여중생과 관련된 판넬을 게시하고 확성기를 통해 이번 촛불시위의 의의와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서명운동 및 전단지 배포로 여중생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알렸다.

신오오쿠보는 한국인들이 많은 지역으로 일본여중생대책위원회에서 꾸준히 서명운동 및 선전활동을 해왔던 곳이다. 이날 집회를 가진 신오오쿠보역은 2001년 1월 26일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 사카모토 세이코씨를 구하기 위해 사진사 세키나 히로씨와 한국유학생 이수현씨가 전차에 치여 숨진 곳이기도 하다. 이수현씨의 2주기 전날 또 다른 안타까운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오오쿠보역에서 촛불시위 출발-안호진 기자

신주쿠 도심가에서 효순, 미선이의 추모집회-안호진 기자

가부키쵸의 한 가운데로 진입하는 촛불행진-안호진 기자

신쥬쿠역 동구 알타스튜디오 앞에서 촛불시위-안호진 기자


▲ 신오오쿠보 역앞 서명운동을 받는 모습
ⓒ 안창규
이번 집회에 참여한 유학생 박지훈(상지대 신문방송학과 1)씨는 "지금 미국이 벌이고 있는 이라크나 북한에 대한 정책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일이고, 여중생과 관련된 촛불시위는 그런 미국에 대한 반대의 의지가 담겨진 일이라며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 위해서 오늘 촛불시위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고 참석의사를 밝혔다.

일본에서도 계속 촛불시위 하겠다
여중생 사건 일본 대책위원회

-언제부터 여중생과 관련해 서명운동을 벌여 왔는가?

지난해 6월부터 한국과 함께 서명운동 및 가두홍보를 해왔다.
지금까지 일본 안에서 대책위원회 회원들과 함께해 3,000명정도 서명을 받았다. 적다면 적은 숫자지만 일본안에서도 우리의 의지를 표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서명운동의 쟁점은 무엇인가?

물론 부시에 공개사과및 불평등한 소파개정, 그리고 관련자 처벌이다.
부시는 한국사람의 요구를 받아 들이고 동등하고 바람직한 외교를 수립해야 한다. 불평등한 소파도 개정을 해서 한국안에서 벌이지고 있는 미군범죄도 근절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미국은 소파개정은 물론 여중생과 관련해 고압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이라크나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세계평화를 저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촛불시위를 계속진행 할 것인가. 계속한다면 앞으로의 촛불시위는 어떤 행태로 계속 갈 것인가?

한국에서의 촛불시위 이후로 일반 유학생들에 참여가 늘어났다.
전에는 여중생대책위원회 회원들과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일본인 회원들과 연대해서 해왔다. 앞으로 여중생 문제 뿐만 아니라 전쟁을 준비하는 미국을 반대하는 평화집회로 승화할 생각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일본안에 시민단체와 연계를 모색하고 일반 유학생및 일본에서 생활하는 일반직장인들에 참여도 유도할 생각이다.

/ 안창규

일본대책위원회 곽수호 위원장은 지금까지 오키나와미군기지 대책위원회 일본인들과 재일교포 회원들만이 서명운동에 참여했는데 한국에서의 촛불시위 이후로 일반 유학생들에 참여가 늘어났다며 앞으로 소파개정 및 여중생과 관련된 행사에 함께 동참하길 희망했다.

▲ 아리랑을 부르며 행진을 시작하는 행렬
ⓒ 안창규
신오오쿠보역앞을 지나가는 많은 행인들이 이번 행사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적극적으로 여중생관련 사건을 물어보고 여중생과 관련된 전단지를 열심히 읽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오후 4시 30분까지 서명운동을 마치고 집회 참석자50여명은 준비한 초에 불을 붙이고 가두 행진을 시작하였다. 아리랑을 시작으로 신주쿠 중심가로 촛불행진을 한 참석자들은 소파개정 및 여중생사건에 대한 부시사죄, 관련자 처벌 구호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 신주쿠 인파속으로
ⓒ 안창규
행진행렬이 부르는 노래소리를 듣고 즉석에서 참여한 유학생도 있었다. 지난달 일본에 왔다는 전은수씨는 일본에 오기전 광화문 집회에도 참석을 했다며 일본에서도 촛불시위에 참여할 수 있어서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며 참가 소감을 밝혔다.

▲ 가부기초를 지나며
ⓒ 안창규
토요일 오후라 신주쿠에는 인파들로 가득했다. 그 인파를 뚫고 행진을 하는 집회 행렬을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게 지켜보았으며 예전에 비해 여중생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들마다 여중생과 미군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신주쿠 역앞
ⓒ 안창규
촛불행렬은 신주쿠역 동쪽 문을 시작으로 신주쿠역 서쪽 문을 지나 신주쿠역 남쪽 문에 집결해 20여분간 아리랑 및 구호등을 외치며 집회를 가졌다.

오후 6시 신주쿠역 남쪽 문에서의 집회를 끝으로 오늘 촛불시위를 마쳤다. 25일 서명운동에는 154명이 서명에 동참하였다.

▲ 구호와 아리랑을 부르며 집회를 마무리 짓다
ⓒ 안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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