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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왕룡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아니고 싸래기눈이다. 추모비가 있다는 고개마루 길을 오르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다. 인도도 없는 좁은 2차로에 대형 덤프트럭이 탱크처럼 돌진해오다 지나쳐간다. 진짜 길이 좁고 위험하다. 장갑차 사고의 기억에다 눈까지 내리기 때문일까?

덜컥 겁이나 차도를 벗어나서 산자락 길을 타기 시작했다. 완만한 고개마루 중턱에 올랐다고 느끼는 순간, 발 아래로 추모비가 한눈에 들어온다. 새하얀천을 수놓으려는듯 주변에 눈발이 한올 한올 촘촘이 쌓이고 있다.

▲ 미선, 효순이의 사진이 새겨진 추모비 앞에서
ⓒ 정왕룡
추모비 앞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효순, 미선이의 교복입은 사진이 새겨져 있다.

'춥지않니?'
'…………….'
'너희도 눈을 좋아했겠지?'
'…………….'
'오늘은 눈이 많이 내릴 것 같구나'
'…………….'

아무 대답없이 그냥 씩 웃기만 한다.

▲ 미2사단 장병 일동 명의의 조화
ⓒ 정왕룡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미2사단 장병 일동' 시들어 버린 꽃바구니 조화에 걸쳐진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명복을 빈댄다. 미2사단 장병 일동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어린이들의 죽음앞에서도 저들은 저런 명복을 빌었을까? 그나마 효순, 미선이는 저런 조화라도 받았으니 그들보다 행복하다고 해야할까?

'꽃다운 효순이와 미선이의 꿈이 피어나기를'
자통협 순례단이 세워놓은 추모용 팻말의 모습이 십자가를 연상시킨다.

▲ 자통협 순례단의 추모 팻말
ⓒ 정왕룡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사고현장으로 짐작되는 길 건너편 장소에 눈길이 멈추는 순간, 그 장면을 재연이라도 하듯, 굉음과 함께 덤프트럭, 군용트럭이 마주보며 내달린다. 잇달아 군 작전용 차량 여러대가 빠른 속도로 지나친다. 현기증이 난다. 사고난 이후에도 현장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마치 소파가 그대로듯이.

▲ 사고현장의 군용차량행렬
ⓒ 정왕룡
'불평등한 소파개정!'
유가족 일동명의의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며 눈보라가 연기처럼 허공으로 치솟는다. 현수막 옆으로 뻗어있는 고목나무에 검은 천이 펄럭이고 있다. 하늘로 날아가지도, 땅에 떨어지지도 못한 채 눈보라에 퍼덕이며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차마 하늘나라로 가지 못한 그들의 넋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 유가족 명의의 현수막
ⓒ 정왕룡
그들은 하고싶은 말이 무엇일까? 안보가 흔들리고 수출이 막히니 이제 그만 새 대통령에게 맡기고 해산하라고 말하고 싶을까? 반미는 위험하니 이제 그만 촛불을 끄라고 말하고 싶을까?

추모비 앞에 다시 서니 무심히 흩날리는 눈발속에서 효순, 미선이는 여전히 웃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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