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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정보통신부 건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정보통신부 건물 ⓒ 오마이뉴스 공희정
휴대전화 식별번호를 통합 운영하는 '번호이동성제도' 조기도입을 둘러싼 정보통신부와 SK텔레콤간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정통부는 지난 16일 이동통신 업체간 효율적인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3세대 식별번호 '010' 조기 부여와 이동전화 2세대 번호 이동성 순차 도입을 골자로 한 '이동전화번호 개선계획'을 수립, 오는 27일 열리는 통신위원회 심의를 거쳐 실행키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번호이동성제도'란 '2004년 1월 1일부터 현행 사업자별 식별번호(011, 017 및 016, 018, 019)를 3세대 이동전화 식별번호인 '010'번호로 통합하는 동시에 이동전화 고객들이 기존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도 이동통신업체를 옮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정통부는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010번호로 통합되면 이동전화 가입자끼리 통화할 때 식별번호를 누르지 않고 8자리 전화번호만 누르면 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데다, 이동전화 식별번호로 생기는 업체간 불공정 시비도 없애는 효과가 기대된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한마디로 소비자, 사업자 모두 좋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책이라는 거다. 그러나 '번호이동성제도'에 대한 관련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후발 사업자인 KTF나, LG텔레콤의 경우 적극 환영하고 나서는 반면 SK텔레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KT출신 이상철 장관의 특정업체 봐주기?"

서울 SK텔레콤 본사
서울 SK텔레콤 본사 ⓒ SK텔레콤
SK텔레콤은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여 만든 011 브랜드 가치를 일방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처사"라며 정통부의 이번 안이 27일 통신위원회에서 통과될 경우 행정소송까지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SK텔레콤은 또 "2세대 이동전화에 010번호부여 및 번호이동성 시차제 도입방안은 공식 발표 하루 전인 지난 15일 회의에서 처음으로 거론됐으며 합의한 바도 없다"며 KT출신 이상철 정통부 장관의 '특정업체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반면 정통부는 '010' 통합에 동의했던 SK텔레콤이 갑작스레 입장을 바꿔 정부를 공격한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통부의 한 관계자는 21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010 통합은 번호 공동 사용제를 반대하는 SK텔레콤 측에서 먼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라며 "지난 15일 회의에서 모든 업체가 동의할 수 있는 선에서 합의를 보지는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는 데는 서로 약간의 희생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문제는 행정소송까지 가지도 않을 것이며, 011이라는 브랜드는 SK텔레콤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얻은 것으로 전적으로 소유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이 장관 관련 의혹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SK텔레콤은 지난 5년간 '011'에 수천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들여 번호의 상품성을 높였다.
SK텔레콤은 지난 5년간 '011'에 수천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들여 번호의 상품성을 높였다.

SKT "수천억 들여 만든 '011' 잃을 수 없다"

SK텔레콤이 이처럼 강력한 반발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동안 수천억원의 마케팅비용을 들여 구축해 놓은 011의 브랜드파워를 하루 아침에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번호 이동성 순차 도입'을 통해 6개월 동안은 가입자들을 일방적으로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후발사업자 배려 차원에서 이뤄진 '번호 이동성 순차 도입'이란 내년 1월 1일부터 6개월 동안 SK텔레콤 가입자는 KTF나 LG텔레콤으로 사업자를 바꾸더라도 기존 011 또는 017 번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안 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 SK텔레콤 측은 "소비자의 편익을 위해 번호이동성을 도입하면서, 업체별로 도입 시기에 차이를 둔다는 것은 특정업체를 위해 이동전화 이용자들간의 차별을 강요하는 무리한 내용"이라며 "이동전화 번호는 소비자의 선택사항이지 정부의 규제 대상이 아니다"고 반발하고 있다.

번호이동성 제도는?

정통부는 16일 '이동전화 번호개선 계획'을 마련 내년 1월1일부터 이동전화 신규 가입자와 번호변경을 희망하는 기존 가입자에게 3세대 식별번호인 `010'이 의무적으로 부여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통부는 당초 IMT-2000사업자들에게 배정키로 한 010-7(SK텔레콤), 010-3(KTF), 010-2(LG텔레콤) 등의 식별번호를 부여하지 않고 대신 010-NYYYY-XXXX 형식으로 번호를 부여하되 번호만으로는 사업자를 구별하기 어렵게 각 사에 `010-NY'의 백만단위로 번호를 배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기존 SK텔레콤의 011 및 017, KTF의 016 및 018, LG텔레콤의 019 등 사업자별로 부여된 식별번호가 점차 사라지고 오는 2007년까지 모든 이동전화 가입자들의 식별번호는 010으로 통일될 예정이다.

또 현재 가장 많은 가입자를 가진 2세대 이동전화의 번호이동성이 내년 1월1일부터 SK텔레콤에 우선 적용되고 이후 6개월 간격으로 KTF, LG텔레콤에 순차적으로 실시된다. / 공희정 기자
SK텔레콤 측은 "시차제는 또 사업자의 영업 행위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정책으로 이용자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불공정 경쟁을 초래할 소지가 있다"며 "번호정책은 사업자간 이해는 물론 이용자들의 편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므로 조급하게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SK텔레콤 측의 한 관계자는 20일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무엇보다도 2002년 2월 계획을 수립해 2007년 이내에 도입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변경해 조기 도입하는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면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KT출신의 이상철 장관이 특정업체를 봐주기 위해 이런 정책을 서둘러 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결국 이번 정책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보게 되는 곳은 KTF의 최대주주인 KT"라면서 "퇴임 후 KT로 돌아갈 것으로 보이는 이상철 장관이 마지막 선물을 준 것이 아니겠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KTF와 LG텔레콤, "SKT 주장, 특혜를 유지하겠다는 발상"

반면 KTF와 LG텔레콤 측은 "SK텔레콤의 주장은 소비자의 이용 편익은 무시한 채 지금까지 누려온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서의 특혜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의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또 "016, 018, 019번호는 걸기도 불편하고 주파수의 효용성이 떨어져 011과 경쟁이 불가능했다"면서 "선발사업자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상태에서 번호이동성 시차도입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사업자식별번호로 특정사업자에게 특혜를 주는 나라는 없다"며 "번호이동제도나 유·무선통합번호제도를 97년 PCS사업자 선정 때 이미 도입을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상철 정통부 장관
이상철 정통부 장관 ⓒ 오마이뉴스 김시연
또 정통부의 한 관계자는 21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SK텔레콤이 지적하는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번호이동성의 시차제 도입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정통부는 '유효 경쟁 체제 구축'과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두 가지 틀에서 움직인다"며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만약 번호유지제를 동시에 도입했을 때 SK텔레콤은 5% 늘고, KTF와 LGT는 각각 3%, 2%씩 줄어드는 결과를 도출해 독과점을 심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선발사업자로의 시장 쏠림을 방지하고 유효경쟁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6개월 차등 일방향(one way) 정책을 수립했으며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사항은 없다"며 "번호이동성을 먼저 도입하는 SK텔레콤은 가입자들이 타사업자로 옮겨갈 때 휴대폰을 교체해야 하는 불편 때문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SK텔레콤 측으로부터 '특정업체 특혜설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상철 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1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번호통합과 번호이동성은 이미 예정된 정책이었고 이번에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 것 뿐"이라고 직접 해명했다.

이 장관은 특히 "후발업체들이 주장해온 식별번호 공동사용제도(넘버풀)를 도입했다면 SK텔레콤은 더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두 제도 도입은 1년 전부터 준비한 것이며 내부 실국장 회의는 물론 심층 설문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번호통합과 번호이동성에 사용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고치는데 10개월 정도 소요된다"면서 "2004년부터 두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지금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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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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