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토론시작전 대기실에서 '다음까페 서울지역 동호회' 회원들
토론시작전 대기실에서 '다음까페 서울지역 동호회' 회원들 ⓒ 정왕룡
"우리들은 이번 토론회에 참가를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범대위측에서 참여를 거부한 것을 여기에 와서야 알았는데 그 입장에 같이 따르기로 했습니다." 전교조 분들이 들어와서 던지는 말에, 순간 담당작가의 난감한 표정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좀 지나서야 나에게 준비 자료를 건네준다. 형광펜으로 '정왕룡님' 이라고 친절히 내 이름이 써있다. 발언순서 앞부분에 나의 이름이 올라있다. 우리 누리를 데리고 시위에 참여한 동기에 대해 전화 인터뷰한 내용이 요점 정리되어 있다.

"다른 사전 의도는 없습니다." "모든 일이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마련된 것이니 적극 참여해주세요." 작가의 당부하는 말을 뒤로 하고 스튜디오에 입장. 주변이 무겁다.

"긴장감을 없애고 토론의 흐름을 타달라." " 중심은 패널이 아니라 배심원 여러분이다." 토론회 진행을 맡은 정진홍 교수의 사전 당부의 말이다. 패널로 선정된 네사람이 입장하고 드디어 밤 11시를 넘어서면서 토론회 시작!

외국어대 이장희 교수와 경실련 서경석 목사의 서두 발언이 이어지고 시위참가자 경험담을 말하는 순서에 손을 들었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우리 아이에게도 언젠가 저런 비극이 닥칠지 모른다는 절박감에 딸을 데리고 나섰다." 김포 개혁당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임을 밝히고 열심히 속으로 되뇌인 말들을 쏟아내는데 1분의 시간이 후딱 가버린다. 사회자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서둘러 말을 정리했는데 뭔가 허전하다. 횡설수설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곧이어 김기보씨의 발언이 이어졌다. 오늘 이 토론회를 있게 만든 핵심 장본인중의 한사람이라서 그런지 다른 배심원에 비해 발언 기회가 이후에도 비교적 많이 주어졌다.

"나는 앙마라는 아이디도 사용 안하기로 했고 개인 사이트도 폐쇄했다." 이후 발언기회에서도 또 한번 반복 강조된 이 말속에서 김기보씨 개인이 짊어진 마음 고생의 무게가 느껴졌다.
"범대위에서 담아내지 못한 다양한 흐름들을 함께 묶어 보다 발전된 대안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터넷에 소개된 최근의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동안의 범대위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국면의 전환이 필요하다."
패널로 참가한 서경석 목사와 손광운 변호사의 발언 요지다. "성조기가 찢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미국의 분위기가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줄 정도로 상당히 심각하다." 역시 두 사람의 연이은 발언 요지다.

"소파개정을 이뤄내어 대등한 한미관계를 정립하자는 운동을 왜 반미로 규정하는가?"
"외국에서도 볼 수 있는 성조기 훼손 행위를 우리가 하면 나라가 금방 뒤집어지기라도 하는가?" "젊은이들의 일종의 상징행위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가?" 이장희 교수와 김승국 박사의 반박이다.

문득 패널들과 배심원들이 서로 조화를 못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기보씨를 비롯한 배심원들 대부분은 '교착상태에 빠진 촛불시위를 이후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모아서 한단계 더 상승 발전시킬 것인가'라는데 논란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김기보씨류의 시각을 가진 패널로 배치된 듯한 서경석 목사나 손광운 변호사는 '이제 이 정도 했으면 우리의 의사도 충분히 전달했으니 새정부에 맡겨놓고 기다리고 자제하자'는 의견이다. 더더욱 여기에 평택에서 올라왔다는 보수적 단체 회원들의 흐름을 벗어난 발언까지 더해져 분위기를 답답하게 한다.

'초기엔 순수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몇몇 사람이 범대위를 비판하면서 '순수'와 '변질'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반미'를 말하느냐 마느냐가 기준이 되고 있다. 특히 패널로 참가한 서경석 목사는 자신의 발언에 쏟아지는 여러 비판에 대해 "토론회 참가 초기의 기대와 달리 젊은이들에게 도저히 희망이 안보인다"는 좌절감이 잔뜩 묻어있는 말을 토해낸다.

"나는 오히려 이땅의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지금은 제2의 6월 항쟁으로 봐야 한다."
이장희 교수와 김승국 박사의 반박이 뒤이어진다.

똑같은 사안과 현상을 대하며 양쪽의 패널이 절망과 희망의 양극단을 달리고 있다.

쏟아지는 발언신청에 최소한 두 번 정도는 발언 기회가 오리라는 기대가 무산된 채 어느새 시간이 다 흘러가 버렸다.
"외국인에게도 한국인들이 하고있는 행동과 취지를 알기쉽게 적극 설명하는 노력이 아쉽다." 한국에서 7년을 살았다는 한 미국인이 비교적 유창한 한국어로 말한 내용이 사회자에게 최종 정리용 멘트 소재를 제공했다. 그 말을 인용하며 토론회를 정리하는 사회자를 보며 아쉬움이 남는다. 내마음을 알아서인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길래 멋쩍게 악수를 나누었다.

김포장날 전개된 소파개정 서명운동
김포장날 전개된 소파개정 서명운동 ⓒ 정왕룡
'왜 모든 논의가 광화문 네거리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가? 광화문은 서울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역 어디에나 있다. 내가 사는 김포에서는 지역범대위에서 '007 어나더 데이' 상영반대투쟁을 전개해 며칠전 '연장상영 저지'를 이끌어냈다. 김포장날인 오늘 낮에는 사진전을 개최하고 수백명의 지지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지역에서는 '네티즌 방식이냐, 범대위 방식이냐'를 놓고 논쟁하지 않는다. 수구언론의 편가르기식 자극적 문제제기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자. 기간의 논쟁요소를 차분히 정리해, 한차원 더 성숙된 시위문화를 만들어, 우리의 목표가 반전이 되었든 반미가 되었든 기필코 성과를 이뤄내자.'

마무리 발언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하고싶었던 말이다.

어느새 자정을 넘겨 날짜가 바뀌었다. 토론장을 나서는데 한강쪽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