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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24일 오전 노무현 당선자가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최성홍 외교통상부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2002년 12월 24일 오전 노무현 당선자가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최성홍 외교통상부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과연 1994년의 전쟁 광풍이 다시 한번 한반도에 휘몰아칠 것인가. 또 지난 94년 6월의 '카터의 전화'가 다시 걸려올 수 있을까.

잠잠하던 한반도가 또 다시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번에도 지난 90년대 초 한반도 핵위기 당시처럼 북한이나 미국 모두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과연 2003년의 한반도는 안녕할 것인가.

94년의 '재판'이 될 것인가?

이번 사태를 보면 자연스럽게 지난 94년에 한반도를 엄습한 전쟁의 공포가 떠오른다. 이미 50년대부터 핵개발에 착수했다고 전해지는 북한은 1980년 들어 영변에 5MW(메가와트)급 원자로를 짓고, 급기야는 1989년 1백여 일에 걸쳐 연료봉을 교체하는 작업을 벌이게 된다. 바야흐로 한반도 핵 위기의 서막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반도 분위기가 남북간·북미간 극한의 대결로만 치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즉 한반도에 점차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조짐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닌데, 1985년 12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서명과 1991년 9월 남북 동시 유엔(UN) 가입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1992년 12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간의 '화해 및 불가침,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 선언' 등 2개의 역사적 합의를 도출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오래 가지 않았다. 1992년 8월 남한과 미국의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를 둘러싸고 생긴 남북간의 마찰을 시작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북한간에도 갈등이 재연되는 등, 북한 핵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결국 1993년 3월 12일 북한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3개월 안에 NPT에서 탈퇴할 것이라 통보하면서 유엔의 북한 제재는 곧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라 선언한다. 당시 북한의 미사일이 동해 저편 일본을 넘어 태평양에 꽂혔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반도, 그 운명은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가?

바로 이러한 드라마보다도 극적이고 코미디보다도 희극적인 상황을 다룬 책이 있는데, 지난 1998년 번역되어 나온 <한반도, 운명에 관한 보고서>가 그것이다. 이른바 '케네디 스쿨'이라 불리는 미(美)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에서 수업을 위한 자료로서 만든 것을, 당시 그 대학 고위정책과정에 유학중이던 서재경씨가 번역 출간한 책이다.

와트킨스 교수의 국제협상론 수업의 케이스로 쓰기 위해 만들어졌던 만큼 최대한 팩트를 기반으로 쓰여졌으며, 당시 북미간 협상에 임했던 주요 인물들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만든 것이라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먼저 서재경 씨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94년 당시 한반도 전쟁이 '결정'이든 '고려'든 '준비'든 간에 그와 같은 엄청난 전쟁이 당사자가 아닌 '남'의 손과 의지에 따라 일어날 수 있다는 데 놀랐다고 전하고 있다.

실제로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던 94년 6월 2일 미국은 유엔에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요청하고, 이어 16일에는 윌리엄 페리 당시 미 국방장관이 1만 명의 추가 병력을 한국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한국의 의견이 반영되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서재경씨가 당혹해 하는 부분은,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94년 미국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폭격 결정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파국을 막을 수단은 없는 것일까?

워낙에 다이내믹한 한반도에서 94년의 파국이 2003년에도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빈 라덴을 잡겠다고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국가 전체를 사막으로 만들어버린 나라가 테이블 한쪽에 앉았고, 온갖 수단을 이용해 국제적인 문제를 일으켜 왔던 장본인이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간다 해도 파국은 막아야 한다. 다시 한번 공포의 시대를 맞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지난 2002년 10월 3일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한미간 최종협의를 위해 방북 하루 앞선 2002년 10월 2일 방한, 최성홍 외교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지난 2002년 10월 3일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한미간 최종협의를 위해 방북 하루 앞선 2002년 10월 2일 방한, 최성홍 외교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 같은 파국을 막기 위한 대안을 생각하다가, 94년 당시 한반도에서 핵이 문제로 부각돼 미국과 북한이 회담을 하려 해도 그 대화 창구를 찾지 못해 당황해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즉 현 상황에서의 유일한 타개책은 평화적인 해결책으로서의 '대화'가 가장 합리적인 대안일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협상 창구를 확실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개방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그간 북미간 대화가 거의 없던 터라 서로간의 불신이 적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만에 하나 '무력'이라는 이름의 수단이 강구된다면 결국 남과 북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불바다가 될 것이 분명하고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사막'이 되는 결과밖엔 예상할 수 없다. 그러기에 남북간 북미간 대화는 더욱 절실하다.

먼저 북한이 다시금 핵을 들고 나온 이유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북한과 미국간 1994년 10월 21일의 이른바 '제네바 합의'가 제대로 지켜져 왔는지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할 것인데, 특히 제네바합의의 주된 합의 내용이었던 올해 완공 목표의 총 발전용량 2천 메가와트의 경수로 건설 사업이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지에 대한 책임 소재를 따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수로가 완공될 때까지 대체에너지로서 공급하기로 했던 중유(重油)가 자칫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이 되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북한의 쓸데없는 갈등을 조장해온 것은 아닌지도 가려볼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반도, 운명에 관한 보고서>,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서재경 옮김 , 김영사, 1998 (원제 : Carrots, Sticks, and Question Marks)
<한반도, 운명에 관한 보고서>,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서재경 옮김 , 김영사, 1998 (원제 : Carrots, Sticks, and Question Marks) ⓒ 권기봉
다음으로 한반도 핵문제는 저 멀리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몰염치한 팔레스타인 학살이나 아프가니스탄 파괴와는 차원이 다른, 우리들의 안전에 직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러하기에 지난 94년 당시처럼 우리가 변두리에만 머물러서는 안될 일이다. 한국과 북한, 미국 등은 열린 자세로 협상 테이블에 앉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가장 중요한 당사자이기에 이 사태를 강 건너 볼 보듯 해서는 절대 안될 일이다. 부디 <한반도, 운명에 관한 보고서> 제2부가 나온다면 이번에는 한국의 북핵 담당자들이 적극적으로 이 사태에 뛰어드는 모습이 하나라도 보였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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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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