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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왕룡
나른함이 몰려오는 월요일 오후, 저녁 강의 시간까지 기다리려면 4시간이 남아있다. 차를 몰아 올림픽 대로 서쪽 끝지점을 통과, 김포 강변 제방도로에 접어든 시각이 오후 3시경. 요 며칠새 몰아친 한파가 한풀꺾인 탓인지 제법 봄햇살의 기분마저 느껴진다.

김포대교 아래부근에 차를 세우고 한강변을 바라다보았다.
어제 강화갔다 오는 길에 바라본 김포 한강변,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 강자락에 뭉텅뭉텅 끝도 없이 떠내려오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햇살에 반짝이며 제각각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늘 역시 그 장관은 변함이 없다. 아니 적당히 날씨가 풀린 지금,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빚어내는 은빛축제는 어제보다 더 강렬하다. 다시 차를 몰아 달리다 강변쪽으로 샛길이 나오길래 무작정 밀고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닥친 철망의 담벼락. 올림픽대로 끝자락부터 시작된 철책의 행렬은 서해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얼음덩어리 자락이 철망 너머에서 무심한 듯 손짓하며 지나가 버린다. 김포에서 바라보는 한강은 마치 휴전선 철조망앞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김포에 외국인이 오면 철책이 둘러처져 있는 강변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일산을, '북한이냐'고 물어본답니다" 어느 토론회에서 철책철거를 주장하며 발언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 정왕룡
철망 너머 10여 발자국 거리에 문득 흰 팻말이 보인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본다. '75년도에 간첩이 침투하다 사살된 곳'이란다. '000' 제법 친절하게 간첩의 이름까지 팻말에 써있다. 동해안 최북단에서 해안경계로 군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던 시절, 참 낯익게 보았던 팻말들과 비슷하다. "간첩 한 마리 반드시 잡자" 그시절 외쳤던 구호들이 스쳐 지나간다.

ⓒ 정왕룡
다시 차를 몰았다. 강과 함께 나란히 달리는 철책은 강변의 폭을 따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한다. 철망위에 앉아있는 철새들이 한가로이 그 위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다. 청둥오리들이 논자락에 떼지어 몰려앉아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고 있다. 여러마리의 꿩들이 푸드덕 거리며 날아간다.

얼마 안가서 철책옆으로 또 다른 샛길이 나오길래 핸들을 꺾었다. 하지만 곧바로 마주치는 육중한 철문과 자물쇠! 급정거를 한 채 우두커니 있었더니만 잠시후 초병이 총을 든채 뛰어온다. '촬영금지, 주.정차 금지'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주정차마저도 안된단다. 급한 마음에 다시 차를 몰았더니 그냥 돌아간다.

'풋' 웃음이 나온다. 나 역시 20여년전 동해안에 근무할 때 매일같이 반복하던 일인데 '지레 겁을 먹고 내가 먼저 도망가다니! 고생한다고 몇마디 말이라도 붙여볼걸.'

과거에 대한 망각일까? 단절일까? 아니면 어색함 때문일까? 후배 군인을 보고 괜히 두렵다. 똑같은 일을 했던 나도 그런데 일반인들은 어떨까? 언제일까? 군인을 친구처럼 스스럼 없이 대할 날이! 아마 그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땅에서 전쟁의 위험이 완전 사라지기 전에는.

'샘재'부근의 공터에 다시 차를 세웠다.
강변으로 나서보지만 역시 철책이 다시 길을 막는다. 아예 체념을 하고 그냥 먼 발치서 떠내려 오는 얼음덩어리의 군무를 감상한다. 얼음끼리 서로 키스하듯 부딪히고 물살위에 미끄러지며 달려나갈 때 울리는 합창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 정왕룡
집채만한 거대한 얼음덩어리 몇조각이 강기슭에 떠밀려 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긴 여행에 지친 탓일까? 피곤해 보인다. 그들은 어디까지가 목적지일까? 그들이 다시 흘러갈 때 나도 그 위에 올라타 같이 떠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얼음위에 올라타 거꾸로 바라보는 한강변 철책의 모습은 어떤 느낌을 줄까? 초병이 나를 바라본다면 간첩으로 여기고 사격을 할까? 그위에서 촛불을 켜고 한반도 평화와 자주를 외친다면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한강하류 북한쪽에 이르면 인민군은 나를 남한간첩으로 여기고 사격을 하겠지? 상상의 나래는 끝이 없다.

철새 다섯 마리가 코앞을 스치듯 지나간다.
그냥 저 철책을 예쁘게 단장해서 그대로 놔둔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함께 스친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다면 저들의 안식처가 파괴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극도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철책이 저들에게는 최고의 평안을 안겨다주는 보호막이 되고 있다. 인간들끼리의 다툼이 새들과 자연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휴식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김포강변에서 매년 이맘때쯤 얼음 축제를 해본다면?'
이뤄질 수 없는 다소 황당한 상상을 해보는데 갑자기 수십,수백마리의 철새들이 물을 박차고 날아 오른다. 무슨 일일까? 그 순간 하늘을 진동하는 소리. 위를 올려다 보니 헬기 두 대가 북쪽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나른한 오후의 평화로움을 깨뜨린 그들을 잔뜩 원망하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그냥 강너머 하늘로 사라져 버린다. 철책에 구애받지 않는 헬기가 부럽다.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같은 평안함'
새들이 순간 애처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새들과 우리의 현실이 다를바가 없다는 느낌에 비애감이 밀려온다. 언제일까? 인간들끼리의 싸움을 그치고 자연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어 진정한 평안을 선물하는 날이. 그때까지 김포는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신음해야 할 것이다. 철책이라는 유리그릇에 갇혀 불안한 평화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축복의 땅 김포'
저녁 강의시간에 쫓겨 돌아오는 길에, 김포시가 내건 표어가 무미건조하게 눈에 들어온다.

"아빠, 저건 강물에서 수영하지 말라고 세워놓은 걸 거야." "아빤 그것도 몰라?"
어제 강화에서 돌아오는 길에 철책을 보며 누리가 귀에 대고 하던 말이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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